잘되면 내 덕, 안되면 엄마 탓.

by 태림


매일 같은 것 같은데 또 다른 하루다. 비슷한 패턴으로 지내고 있어서 그런지 일상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렇게 무료해질 때쯤 밖으로 나와 쏟아지는 햇볕을 받으면 ‘아 맞다, 여기 치앙마이지.’하는 생각이 든다. 지루하게 느껴지면서도 너무 소중한 여행이다.



가고 싶었던 카페들이 다 문을 닫았다. 울며 겨자 먹기로 급하게 찾은 카페로 향하다 발견한 커피트럭이 너무 낭만이라, 사실 여기서 커피를 맛보고 싶었다. 아마 혼자였다면, 배탈을 감수하고라도 먹어봤을까?



내부에 자리가 있는 줄 알고 왔는데, 내부엔 자리가 아예 없는 카페였다. 심지어 외부에도 의자는 단 두 개뿐이었다. 그래도 자리가 있는 게 어디냐. 여기까지 얼마나 땀 흘리며 왔는데.



치앙마이 원두가 두 종류 정도 있길래 냅다 주문했다. 이번에도 엄마는 내가 속으로 고른 원두를 먼저 골랐다. 그래서 나는 또 차선을 선택했다.


웬만하면 따뜻하게 마셨겠지만, 걸어오느라 덥기도 했고, 외부 좌석이라 둘 다 아이스로 골랐다.


근데 여기서부터 비극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딱히 취향은 아니었던 커피를 마시고, 점심을 먹으러 걸어갔는데 휴무일이 아닌데 닫혀있었다. 아, 어떻게 하지? 하고 생각하는데 엄마가 갑자기 속이 아프다고 했다. 숙소까지 걸을 수 있겠냐 물었는데, 갈 수 있대서 걷다 보니 엄마 안색이 점점 안 좋다.


결국 숙소 코 앞에서 그랩을 불렀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이 와중에도 엄마를 걷게 한 나를 탓하기보다, 이 와중에 아픈 엄마를 탓했다.


나는 보통 내 탓을 많이 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는데, 엄마와의 일엔 주로 엄마를 탓하는 것 같다. 마치 인생에서 남탓할 수 있는 모든 기운을 끌어다 스스로를 탓하고, 스스로를 탓하는 모든 마음으로 엄마를 탓하는 것 같다.


배우자의 말을 빌리자면 나는 불꽃효녀가 아무래도 맞는 것 같다.



엄마를 숙소에 뉘어두고, 상태를 살피는데 괜찮으니 혼자 나갔다오라고 했다. 어차피 같이 숙소에 있는다고 답은 없다는 걸 알기에, 엄마에게 약을 챙겨 먹이고 나는 계획대로 반캉왓으로 향했다.


혼자 뭘 먹지? 고민하다가 피자를 먹으러 갔는데, 이상하게 생각보다 피자가 빨리 나왔다. 뭐, 시스템이 그런가 보지, 하고 신나게 먹고 있는데 서버가 다시 나한테 피자를 가져온다???


내가 이미 먹고 있는 걸 보더니, 다시 돌아가 직원들끼리 뭔가를 얘기했다. 책임자처럼 보이는 사람이 내게 와서 피자가 잘못 나왔다고 말했다. 바꿔줄까? 하길래 나는 이미 다 먹었기에 됐다고, 이거 그냥 먹겠다고 했다. 그리고 계산할 때 보니, 내가 시켰던 피자가 아닌 먹은 피자로 계산됐다. 내가 먹은 피자가 더 비싼 피자였기 때문이었을까.


그래놓고 심지어 화장실은 공사 중이라 사용할 수 없다고 했다.


엄마 탓을 한 벌을 이렇게 받았나 싶다. 다시 생각해도 서비스 너무하네 진짜.



떨떠름한 기분이었지만, 내가 반캉왓까지 온 이유를 잊지 않았다. 수제 노트를 사기 위함이었지. 엄마에게 연락해 어떤 노트에 어떤 각인을 하고 싶은지 물었다. 치앙마이 물가 치고는 꽤 비싼 노트였는데, 한국에 와서 사려고 보니 훨씬 더 비쌌다.


역시 사람은 어떤 환경에 있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다.



딱히 할 일 없이 다시 카페에 앉았다. 블랙이냐 화이트냐 한참 고민하다 라테로 시켰는데, 시켜 놓고도 몇 번이나 주문을 바꿀까 고민했다. 아마 한국이었으면 무조건 바꿨을 것 같은데, 치앙마이라 바꾸지 않고 그냥 마셨다.


첫날 마셨던 필터커피가 훨씬 맛있어서 아쉬웠다. 엄마랑 왔으면 서로 한 모금씩 바꿔 먹었을 텐데...




숙소로 돌아갈까 하다가 징짜이마켓에서 빈티지마켓을 한다길래 빈티지마켓으로 향했다. 개장하자마자 도착했더니, 아직 세팅 중이라 그렇게 크게 볼만한 게 없었다. 그렇다고 기다리자니 한참 걸릴 것 같아 결국 다시 올드타운으로 돌아왔다.


숙소에 들러 엄마의 상태를 살피는데 심각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괜찮아 보이지도 않았다. 미리 예약해 둔 마사지가 있어서 괜찮겠냐 물었는데 또 마사지는 간단다. 다행히 그만큼 아프진 않나 보네, 하면서도 속으로는 그럼 좀 이겨내 보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나한테나 엄격하면 될 일이지 왜 또 남까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가만 보면 나도 내가 피곤하다. 엄마는 이런 딸을 대체 어떻게 이렇게 성장시켜 놨을까.


아닌가? 엄마에게 자라서 내가 이렇게 된 걸까?



약하게 마사지를 받고 엄마는 오토바이를 불러 태워 보내고, 나는 혼자 걸었다. 자유의 시간이 나쁘지 않으면서도 외롭기도 했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이상하게 늘 양면이다. 뭐 하나 정확하질 않고 이렇게 뒤집으면 뒤집히고, 저렇게 뒤집으면 또 뒤집힌다. 그래서 사람인가 싶기도, 그래야 인간인가 싶기도 하다.


밤길을 걸으며 혼자 길거리에서 족발덮밥을 시켜 먹었다. 엄마는 절대 먹지 않을 메뉴다. 이상하게 거기서 오는 해방감, 반항기 같은 감정이 나쁘지 않았다.


엄마의 그늘에서야 이런 감정도 느낄 수 있는 거겠지. 늘 나를 걱정으로 바라봐주는 엄마가 있어야 가질 수 있는 것들이 있는 것 같다. 그것 또한 좋기도, 나쁘기도 한 양면 같은 감정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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