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어른이 되면서 친구들이 그런 말을 했다.
아빠가 점점 싫어진다고.
외향적인 아빠였는데 요즘 더 말을 걸고, 또 여성스러워진다고.
그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우리 아빠가 더 좋아지는데.
그러면서 생각해 보았다.
나는 왜 우리 아빠가 좋은가.
우리 아빠는 수다스럽지 않다.
무뚝뚝한 편이다.
예전에 외할머니가 엄마에게 물으셨단다.
“O서방 집에서는 말하니?”라고.
아빠는 발령이 전국구로 나서 타지에서 생활을 많이 하셨다.
그렇지만 주말이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항상 집에 왔다.
아빠가 이번 주말은 안 온다. 뭐 이런 기억은 없는 것 같다.
일요일이면 우리 가족은 항상 교회에 갔다.
물론 오빠랑 나는 다른 시간대 예배를 드리긴 했지만, 교회 예배는 우리 가족의 가족 행사였다.
크리스마스 때 함께 예배를 드리고 12월 31일은 송구영신 예배를 함께 드렸다.
아빠는 어렸을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빠가 독자여서 그 이후론 할머니와 둘이서 지냈다.
엄마를 만나고 오빠와 내가 생겨서 아빠는 참 행복하고 기뻤을 것 같다.
자신의 가족이 생긴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그런지 아빠는 항상 우리와 함께 있는 것을 좋아했다.
엄마와 또 함께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어디에 가든 꼭 엄마와 동행하려 했다.
가족 여행도 몇 번 다녔다.
어렸을 때 가족과 함께 새로운 곳에 가서 함께 낯선 것을 경험하는 것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아빠의 새로운 모습도 종종 봤다.
아빠가 열심히 공부했던 일본어를 일본에 가서 조금씩 단어를 몇 개 써먹는 모습.
또는 잘 못 써먹는 모습.
그런 모습들이 모두 좋았다.
아빠는 항상 외국어를 끊임없이 공부했다.
그렇게 항상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이 오빠와 나에게 좋은 영향을 줬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모두 외국어를 좋아했다.
아빠는 승진 시험도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는지 입에 헤르페스 바이러스도 감염됐었다.
골프도 얼마나 열심히 연습하는지 손이 아주 부르트도록 하셨다.
요령은 없지만 항상 뭐든지 열심히 하는 모습이 난 참 좋았다.
아빠는 항상 바른말, 옳은 말을 해줬다.
그래서 그런 말을 듣고 나의 행동을 올바른 길로 택하곤 했다.
아빠는 한 번도 나에게 화를 내거나 호통을 친 적이 없었다.
내가 아빠를 꼭 닮아 나를 좋아해서 그럴 수도 있다.
아빠가 어렸을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엄격한 아버지 상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이 난 참 좋다. 아빠라고 무게 잡고, 화내는 게 자식들에게 잘 전달될 것 같진 않다.
아빠가 나에게 화를 낸 적이 없기에, 엄하게 한 적이 없기에
나는 아빠한테 마음의 앙금이 없다.
그리고 오히려 그래서 아빠가 편안하다.
아빠는 또 항상 “잘했다”라고 말해준다.
물론 무언가 잘한 일이 있을 때이다.
아빠는 항상 엄마한테 나의 학업 진행 상황에 대해서 묻는다.
그게 아빠의 애정표현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난 꼭 아빠한테 그런 것들을 말해준다.
그게 나의 아빠에 대한 애정 표현이다.
아빠는 항상 나의 졸업식마다 기쁜 마음으로 휴가를 내고 왔다.
사진기를 꼭 들고.
아빠가 항상 나보다 더 기뻐했던 것 같다.
아빠가 자랑스러워하고 뿌듯해하는 것이
아빠의 몸짓과 발걸음에서 느껴진다.
우리 아빠는 요즘 나에게 항상 저널에서 연락이 왔냐고 물어보신다.
어서 저널에 논문을 싣고,
박사를 졸업해서 아빠를 서울대 정문에 데려가야지.
이것 또한 나의 아빠에 대한 애정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