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히 애정이 가는 물건들이 있다.
나의 어느 시절을 함께 지내줬던 물건들이다.
그래서 또 고맙고 기특하다.
학창 시절에서는 하는 일이 공부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이런 물건들은 공부와 관련이 있다.
고등학생 시절 시험 시간에 몇 분이 남았는지 알려줬던 손목시계라든지.
나의 꾹꾹 눌러쓰는 손가락 힘을 잘 버텨줬던 0.7mm 샤프라든지.
토익 공부하면서 빠른 속도로 들었던 찍찍이.
대학 때부터 파리에 있을 때까지 나와 함께 했던 기특한 물건이 있다.
바로 삼성 YEPP MP3 플레이어. YP-MB1CW.
대학 시절 때는 아직 아이폰이 나오기 전이었고,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도 활성화되지 않았던 때였다.
그때 우리는 MP3를 다운 받아서 들었었다.
핸드폰 외에 MP3 플레이어가 따로 있었다.
MP3 플레이어가 한창 인기가 있을 때였다.
좀 늦은 감은 있지만 그 당시 전자상가에 가서 엄마가 사주셨다.
나의 첫 MP3 플레이어였다.
특별히 어떤 모델을 사야지 하고 갔던 건 아니었고 권해주시는 것을 샀다.
음악도 들을 수 있고, 영상 파일을 넣으면 동영상도 볼 수 있고, 라디오도 들을 수 있고, TV도 볼 수 있다.
그 당시 핸드폰으로 TV 보는 것은 기능이 잘 지원이 안 되었었다. 라디오는 들을 수도 없었고.
사진 저장 기능도 있고 녹음 기능도 있다.
이 아이의 기능 거의 대부분을 유용하게 사용했다.
음악도 잘 들었다.
약사고시 준비하면서 공부에 도움 될만한 음악을 들었다.
공부하다 보면 너무 지겨운데 음악을 들으면서 하니 좀 더 의자에 앉을 수 있었다.
오가면서는 라디오를 듣기도 했다.
파리에 있을 때 이 라디오 기능이 아주 유용했다.
출퇴근하면서 재즈 라디오를 듣곤 했다.
버스 타면서 재즈 음악을 들으며 창 밖으로 에펠탑을 볼 때 파리 야경을 볼 때 참 행복했다.
녹음 기능도 아주 잘 사용했다.
일본에 있을 때 이 아이를 참 잘 사용했었다.
일본어 수업에서 신문 사설 읽기를 하곤 했는 데 한자를 많이 몰랐던 내가 빨리 읽는 것은 좀 무리였다. 그때 일본인 친구가 사설을 읽어줬다. 그리고 난 그걸 녹음해서 듣곤 했었다.
그렇게 듣다 보면 신문 읽는 게 훨씬 쉬워졌다.
JLPT 공부할 때 이게 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인용구처럼 외워야 하는 구절을 일본인 친구에게 읽어달라고 부탁했다. 난 그걸 녹음했다.
그것을 반복적으로 듣다 보니 필수 구절들이 외워졌다.
또 일본어 공부할 때 지인이 단어를 외우기 쉽게 만든 사진 파일을 줬다.
그 파일을 이 MP3에 넣어가지고 다녔다.
자주 보지는 않았지만 마음은 든든해졌다.
한국에 돌아와서 약사고시를 준비하면서 MP3 활용했던 것을 그대로 또 이용했다.
약사고시를 보려면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단어들을 한꺼번에 외워야 했다.
이런 것들을 외우기 위해 약대생 똑똑이들이 암기 문장을 만들곤 한다.
그 문장들을 또 전국의 약대생들이 공유한다.
그 문장들을 목소리로 녹음해서 MP3 파일로 반복해서 듣곤 했다.
친구들에게도 공유해줬다.
그렇게 공부해서 약사고시에 합격할 수 있었다.
파리에서 가서 약사 신문 취재를 할 때 이 녹음 기능을 또 잘 활용했다.
그때는 아이폰도 썼지만 아이폰보다는 이 MP3가 더 친숙하고 작동시키기 편했다.
그 당시 서점 취재도 했기 때문에 인터뷰도 모두 이 기기에 넣었다.
파리에 있을 때는 핸드폰 도둑이 있다고 들어서 핸드폰이 있지만 집 밖에서는 거의 밖으로 꺼내지를 않았다.
또 아이폰에는 라디오 기능도 없었기에 이 MP3 플레이어를 가장 자주 들었다.
그러던 것이 한국에 와서는 거의 사용을 안 하게 되었다.
이따금씩 파리에서 들었던 라디오를 듣고 싶을 때나 녹음 파일을 가끔씩 들었었다.
무언가를 외워야 하는 일도 없었고, 아이폰에 파일을 넣어서 듣고 다닐 수 있기 때문에, 또 다양한 어플들이 생겨서 프랑스 음악도 들을 수 있어서 아이폰을 사용했다.
요즘에 머 외우고 싶은 것이 생겨서 녹음 기능을 쓰려고 이 기기를 꺼냈다.
또 파일을 백업해놓고 싶어서 잭을 연결했는데 컴퓨터에서 인식을 못했다.
나의 추억이 담겨있고 아직 글로 옮기지 못한 취재 내용이 있어서 나에게는 아직 소중하다.
전에 연결잭을 잃어버렸고, 이제는 이런 모양의 잭을 사용하는 기기가 없어서 잭을 구할 수가 없다.
휴가인 날 삼성 A/S 센터를 방문했다.
이 잭을 구할 수는 있는지, 아니면 파일이라도 백업받아놓을 수 있는지 알고 싶어서 방문했다.
기사님께서 이런 잭은 이젠 없다고 한다. 더 이상 MP3 플레이어는 만들지 않는다고. 이 잭도 유일하게 하나 있는 것이라고 한번 연결해보자고 해주셨다.
너무나 다행히 기기를 인식했다. 감사하게도 파일은 백업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기기가 너무 오래되었단다. 더 이상 배터리도 작동을 안 할 것이라고. 이 부품은 생산도 중단되었다고 하신다.
아... 이 아이를 이제 사용할 수는 없구나.
그래도 너무나 오랫동안 잘 사용했다.
모델이 나온 시기도 알려주셨다.
2009년이다.
2014년까지 아주 잘 썼다. 5년 동안 최대 기능을 발휘해줬다.
삼성이라서 이렇게 튼튼한가 하고 생각이 들었다.
글쎄... 이제는 전원을 켜도 금방 꺼져버린다. 배터리가 너무 오래되었기 때문에.
파일은 다른 곳에 옮겨두고 이제는 이별을 해야 하나.
이 글은 이 기기에 대한 헌정사이다.
나의 학업을 도와주고, 나에게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고, 함께 인터뷰를 하고, 여러 가지를 성취해줬던 기기이기에 참 고맙고 특별하다.
고마워. 나의 마지막 화이트 MP3 플레이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린 나의 MP3 플레이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