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껌 같은 와인 마실래요?

TAPI Sauvignon Blanc 타피 쇼비뇽 블랑


샌프란시스코 공항 벤치에 앉아있던 내 옆에 어떤 여자가 터덜터덜 걸어오더니 풀썩 엉덩이를 내려놓았다. 본인 몸보다 한참 커 보이는 백팩을 앞으로 돌려 매고 숨을 고르는 듯하더니 뭔가 꺼내 입에 넣었다. 이마에 잔털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질끈 묶은 머리가 신기하다고 생각할 때쯤, 아무리 곁눈질로 보는 거라고는 하나 계속 쳐다보고 있으면 시선이 걸릴 것 같아 다시 내 핸드폰으로 신경을 돌렸다. 그리고 어디에선가 한국어가 들려왔다.


"껌 씹을래요?"


"..한국인이시네요. 아니면 한국어를 잘하는 외국인이신가."


내가 대답 대신 질문을 해서 그런가 내 말을 수락의 표현으로 이해한 것일까 팔을 당차게 뻗어 내게 껌을 내밀었다. 바로 받지 않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한 번 더 내 얼굴을 향해 흔들어 권유의 강도를 보다 적극적으로 표현했다.


"고맙습니다."


왠지 거절할 수 없을 것 같은 분위기에 그녀의 눈을 피해 껌을 받아 들었다.


"맛있을 거예요. 왠지 어디론가 데려다줄 것 같은 그런 맛이죠. 마치 비행기처럼요."


새 껌의 포장을 딱 뜯어 입안에 넣고 씹자마자 벌어지는 맛의 순간을 기억하는가. 껌 주변에 살며시 도포되어 있던 가루들이 침에 녹아 강렬한 자극을 만들어내 혀 양 끝을 사정없이 노크하는 그 순간, 파티의 시작을 알리는 기분이 들 정도로 신날 때도 있었다.


그녀가 건네준 껌 또한 그러했다. 특이하다고 말하려는 찰나 그녀가 먼저 입을 뗐다.


"우리 친구 할래요?"


어이 없어하는 표정으로 이번에도 대답을 하지 못한 채 그녀를 바라보는 동안 내 턱은 쉼 없이 껌을 씹어대며 맛을 쥐어짜 냈다. 마치 이 미친 사람이 준 껌의 정체를 빨리 알아차려야 한다는 의지라도 생긴 것처럼 말이다.


웃기게도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나와 친구를 하고 싶어 했는지에 대한 이유는 들을  있었지만 그로부터 한참 뒤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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