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아 May 07. 2020

안락의자, 너 내 동료가 돼라



 집에 오자마자 의자에 드러누웠다. 매트리스와 이불 사이 푹신한 온기 틈으로 파고들고 싶지만 씻지 않은 발이 덜미를 잡는다. 의자에 앉았다고 안 씻은 발이 씻은 발이 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침대만큼의 죄책감은 없다. 조막만 한 집에 눈 닿은 데는 거기서 거기. 등받이에 기댄 채 벽을 메운 사진들을 훑는 시선에 규칙성은 없다. 한참을 생각 않고 앉아 있다 보면 떨어져 나간 에너지가 1퍼센트쯤 충전된다. 오늘은 뭐 먹지. 시시한 퇴근 후 루틴이다.
 
 
 이사도 아니고 무려 독립이었다. 있는 짐을 그대로 싸들고 다른 공간에 푸는 것도 엄청난 에너지가 드는 일인데, 하물며 일 인분이 새살림을 차리는 건 말할 것도 없다. 사야 할 게 많을 줄은 알았다. 예상 못한 건 아니었는데 좀 많긴 하더라. 사람의 일상을 유지하는 데엔 사소한 다양한 것들이 필요하단 걸 다이소에서 손톱깎이를 사들고 오면서 배웠다. 한 명의 몫을 지탱해주던 물건들을 그대로 가지고 나오면 될 줄 알았지만 4인 가족의 교집합 영역에 들어가 있는 것들은 내 것이 아니었다. 칫솔은 가지고 나와도 치약은 가지고 나올 수 없는 게 독립이었다.

 물건을 샀다 별로다 싶으면 인벤토리에 넣고 치우는 건 게임에서나 가능한 일. 그러니 모든 구매에 신중해야 했다. 제한된 예산 안에서 최적의 환경을 구축하시오. 시험지를 받은 학생처럼 계산기와 통장 잔고를 두드려야 했던 독립 초반은 그래서 마냥 신나지를 못했다. 가구라는 게 한참 써보고 나서야 문제가 보이다 보니 더 그랬다. 결단력 없으려면 돈이 라도 많던가. 돈 없을 거면 깡이라도 있던가. 깡이라곤 노래 제목으로만 배운 인간은 결국 필수적인 가구를 구축하는 데에만 장장 3개월을 썼다.

 그야말로 쥐꼬리 같은 월급을 회처럼 저미고 다지고 짜내어 세워 올린 원룸 되시겠다. 그러나 인간은 결코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며 소비 앞에선 더더욱 비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존재. 이 전쟁 같은 가구 쇼핑에서 가장 먼저 사들인 건 침대도, 책상도 아닌 안락의자였다. 좁디좁은 방의 정중앙에 위치해 이따금씩 늦잠으로 출근을 서두르다 발을 찧게 만드는 거대한 존재. 바로 나의 애착 의자. 엄마는 이 구매를 두고 자신의 첫째 딸이 얼마나 생각 머리가 없는지에 대해 한탄하다가 이윽고 '너희 집은 좁을 것 같으니 안산에 두고 가는 건 어떻냐'는 결론을 지었다. 지금도 종종 방이 좁으면 의자를 집으로 가지고 오라며, 한 번에 들고 올 순 없으니 분해해서 잔해를 하나씩 들고 오라는 얘기를 한다.


 가족에겐 잔소리를, 집에 처음 오는 사람에겐 의아함을 갖게 만든 문제의 의자. 아니 저거 왜 산 거야? 한 마디씩 얹으려는 기미가 보이면 일단 앉아보라고 권한다. 일단 앉아. 앉아 보고 나서 얘기해. 그러면 백이면 백, 더 이상의 소모적인 대화는 없다. 이 의자의 존재 가치는 앉았을 때 비로소 빛을 발하나니. 집을 떠날 때 쯔음 내 애착 의자에 대한 찬사로 방문이 마무리되면 좋은 식사를 대접한 호스트처럼 흐뭇한 마음이 된다.


포르투의 에어비앤비







 푹신한 시트. 몸을 다 감싸 주는 크기. 적당한 팔 받침. 깔끔한 디자인. 그런 의자에 대한 로망은 포르투 여행에서 잡은 에어비앤비 숙소에서부터 생겼다. 숙소의 거실엔 낮은 티테이블과 소파 그리고 안락의자 하나가 있었는데, 숙소에 있을 땐 틈만 나면 그 의자에 앉았다. 창가에서 햇빛을 쬐며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다 보면 의자 위는 또 다른 하나의 세계가 됐다. 몸을 구겨서 앉은 공간만큼 나는 안온하고 안전했다. 그 위에서 쓰이는 글과 읽히는 글자들은 오롯이 나만을 위한 것. 그때 결심했다. 독립을 하면 가장 먼저 안락의자를 사야지.

 그래서 집을 구하기도 전에 의자부터 검색했다. 책상과 책상 의자, 매트리스보다도 더 긴 시간을 들였다. 다른 것들은 소박한 예산 안에서 어느 정도 타협하더라도 안락의자만큼은 꼭 마음에 드는 걸 사야지. 이케아에서 만난 이 의자는 앉는 순간부터 운명인 걸 직감했다. 이렇게 크고 푹신하고 편하다니. 너, 내 의자가 되어라. 업어 모시고 온 의자는 그렇게 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 되었다.

 이 곳에서 나는 (햇빛은 쬐지 못하지만) 음악을 듣고 책을 읽는다. 요즘 쓰는 글들의 대부분도 이 곳에서 시작하고 혹은 끝을 맺는다. 침대 위에서는 게을러도 의자에서는 생산적인 뭔가를 하자는 소박한 다짐. 물론 넷플릭스를 보기도 우유에 시리얼 말아서 먹기도 하고 가끔 꽤 자주 옷걸이 대용이 되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안락의자는 애착이라는 말을 붙여주는 게 아깝지 않다.


 원룸은 모호한 공간이다. 잠을 자고 옷을 갈아 입고, 밥을 만들고 먹고, 생산적인 일을 하고 쉬는 모든 상반된 일들이 한 공간에서 일어난다. 좁으면 좁을수록 공간은 더 혼재된다. 이건 마치 옷장에서 밥을 지어먹다가 잠드는 느낌. 그러니 이 혼탁한 환경에서 한 군데 정도는 특별할 필요가 있다. 수많은 독립인들이 책장이나 파티션으로 하나의 공간을 둘로 쪼개는 지혜를 내며 살아가 듯. 없는 상황에서도 잘 살아가는 방법을 구해내는 것이야 말로 사람이란 존재의 매력이다.


 혹시 원룸에 살고 있다면, 뭐가 됐든 하나의 특별한 공간을 만들기를 제안해본다. 그게 푹신한 의자가 되었든 좋아하는 매트 위가 되었든. 개인의 공간 속에서 또다시 분리된 그 공간 안에서 쉬거나 글을 쓰거나 그밖에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약속처럼 해내 본다면 내게 그랬듯 당신에게도 위로와 에너지가 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넓이가 인격을 대신하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