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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아 May 14. 2020

로맨스 영화보단 시트콤 같은 하루를 살래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기였다. 에어컨의 전원을 켜놓는 시간은 줄어들었어도 여전히 집에 오자마자 가장 먼저 하는 건 리모컨 찾는 일이었다. 회사에 있는 동안 착실하게 데워진 방은 보일러 온도계로는 28도, 체감 상으로는 30도쯤. 더워서 그랬나, 그즈음엔 시고 찬 게 자주 당겼다. 본가 살 땐 냉장고에 지겹게 쌓여 있던 과일은 나오고 보니 귀한 몸이셨다. 먹자고 사두면 버리는 것도 많고 뭣보다 비쌌다. 근데 오렌지 주스가, 편의점에 파는 설탕물 말고 진짜 오렌지 주스가 너무 마시고 싶었다.

 집에서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과일 가게에서 오렌지 주스를 사 왔다. 무려 무가당 100프로 착즙주스. 세상에 착즙 주스라니. 정말 가당치도 않은 사치로군. 그걸 한 모금인가 마시고선 어찌어찌하다 보니 책상 위에 둔 채로 잠에 들었다. 어찌어찌의 기억이 없는 걸 보니 뭐, 대충 유튜브 보고 딴짓하다가 까먹은 게 분명하다. 그다음 날 아침 출근 풍경은 늘상 찍어낸 듯 똑같아서, 저혈압 핑계 대며 침대 위에서 수제비처럼 퍼져있다가 생각보다 얼마 남지 않은 정시출근 골든타임에 신발 뒤축 구겨 신은 채로 지하철 역으로 뛰어가는 동안 기억 속에서 주스는 사라지고 없었다.

 회사에 도착해서야 귀하신 몸이 어제 저녁부터 내내 책상 위에 방치되었단 걸 깨달았다. 이 날씨에 내내 실온에 뒀다니. 뜨끈한 오렌지국이 됐을 건 둘째치고 상했을 게 걱정이었다. 과소비를 했으면 빨리 먹고 치워야지, 왜 그걸 두고 까먹는 거야 대체. 멀쩡하다면 얼음 넣고 후딱 마셔버리라 생각하고 퇴근을 했다. 그때까진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장면이었다.


 비가 많이 오거나 하면 싱크대에서 꿉꿉한 냄새가 타고 올라오는 일이 간혹이다. 디퓨저와 향초마저 뚫은 냄새가 코를 때리면 그게 그렇게 기분이 더러울 수 없다. 대문을 여는데 이상한 냄새가 났다. 또 싱크대인가 했는데, 그 냄새랑은 뭔가가 달랐다. 향긋보다 먼 시큼보다는 가까운 어떤 향. 이 집에서는 물론이고 태어나 처음 맡아보는 향이었다. 중간 문을 열고 방을 들어서는데 나갈 때와 뭔가 달라져 있었다. 다른 그림 찾기 하듯 방을 둘러봤다. 바닥에 점처럼 떨어진 정체불명의 액체. 중앙부가 적셔진 테이블 보. 그리고 반쯤 비워진 오렌지 주스.

 반쯤 비워진 오렌지 주스. 얼마나 소름 끼치는 문장인가. 이 집에 사는 사람은 나 밖에 없고, 나갈 때만 해도 주스는 한 모금만큼만 줄어든 채 책상 위에 놓여 있었는데, 다시 돌아와 보니 절반 이상이 없어져 있다니. 도둑이 들어와서 오렌지 주스를 반만 마시고 사라진 건가. 하긴, 이 집에서 가져갈 만한 거라곤 안락의자 정도니, 어렵게 들어온 김에 비타민이라도 충전하고 나가는 게 남는 거긴 했다. 쓸모없는 상상을 지나 건설적인 의심 단계로 넘어갔다. 테이블 보가 젖은 걸 보니 병 바닥이 깨진 게 분명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병을 들어 올렸다. 놀랍게도 그 작은 플라스틱 병엔 이렇다 할 깨진 흔적이 없었다. 가만, 근데 얘 뚜껑은 어디 간 거지? 그때, 갑자기 천장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을 올리려는 데 뼈 사이에서 끼긱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그제야 나는 눈이 마주치고 만 것이다. 하얘야 하는, 분명 그래야만 하는 천장. 내 집도 아닌 이 월셋집 천장이 오렌지색 얼룩과 과육들로 물들어 있는 그 처참한 광경과. 그랬다. 오렌지 주스 병이 폭발한 거였다.


 그때쯤엔 일이 참 많았다. 회사 일도 많았고 개인적인 일도 많았다.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긍정을 체질화시키려고 무던히 애쓰는 사람이라도 불행과 불운의 줄줄이 소시지 앞에선 맥을 못 췄다. 다음 소시지가 지나가면 다음 소시지가 나타나선, 이래도 네가 긍정을 유지할 테냐 하며 비웃음의 댄스를 췄다. 멘탈이 소시지에 들어가는 다짐육 보다도 못하게 갈려버린 상태로 마주한 오렌지 주스 폭파 현장은 그나마 붙들고 있던 인내의 줄을 끊어먹기 안성맞춤이었다.

 20초 정도 멍했다. 울어야 하는 상황이지, 이거? 일단 소중한 테이블 보부터 좀 치울까. 로봇처럼 관절을 움직여 창문을 열고 책상 위의 짐을 다른 곳으로 피신시켰다. 빈 병을 싱크대에 던지고 의자 위에 올라가서 천장을 닦는데, 쇳소리 같은 게 콧구멍 사이로 뚫고 나왔다. 아니 진짜 개어이없네. 내 인생에 주스 폭발한 걸 보는 것도 모자라서 천장을 닦을 일이 있을 줄이야. 천장을 닦다니, 바닥도 잘 안 닦는데, 천장을 말이야.

 그게 도화선이 됐다. 그렇게 새어 나오던 쇳소리가 목구멍으로 옮겨갔다. 뭐가 목에 걸린 사람처럼 간지러웠다. 끅끅끅. 딸꾹질 같은 웃음을 토해냈다. 점점 번져가서 멈춰지지가 않았다. 아니 보세요, 세상 사람들. 내 얘기 좀 들어보세요. 주스가 터졌다니깐요, 오렌지 주스가? 큰 맘먹고 사서 딱 한 모금 마셨는데, 와, 그게 터졌다니깐요. 천장에 주스 자국 남을 거 같은데 이거 나중에 계약 끝날 때 주인집에서 뭐냐고 할 때 주스 폭발 잔해라고 하면 믿어 줄까요? 그런 오만 잡다한 생각을 하면서 실성한 사람처럼 웃었다. 와중에 착실하게 사진도 찍고 인스타그램 스토리에도 공유했다. 동네 사람들에게 다 알려야 했다. 착즙 오렌지 주스의 위험성을.




오렌지 주스 폭발 사건 현장









 
 나는 시트콤을 좋아한다. 20 내외의 짧은 런타임 동안 일어나는 어이없고 황당한 기승전결이 좋다. 일상이 소재라고는 하는데 진행 방식은 비현실적이다. 슬픔은 1분을 가지 않고, 고통스러운 사건도 5 뒤에 거진 해결이 난다. 그러면서도 인생의 메시지를 착실히 담아낸다.  중에서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요소는 대체 무슨 기준으로 넣는 건지   없는 사람들의 웃음소리. 특히나 미드는 더하다. 미국식 개그 요소를, 영어권에서 태어나지도 자라지도 않은 내가  이해할  없지만  웃음의 빈도수는  헤프다. 어디서 재미를 찾아야 할지 모르겠는 대사에 숨이 넘어갈 만큼 꺽꺽거리며 웃어댄다.  소란스러움은 종종, 픽하고 실없이 따라 웃게 만든다.

 생각했다. 만일 인생에 일어나는 모든 불운과 불행의 씬마다,  쓸데없이 헤프고 경박한 웃음소리가 배경음악으로 깔려 있다면, 그러면 나는 조금  아무렇지 않을  있지 않을까. 알고 보면 그건 되게 웃긴 장면이었던 거다. 주인공은 아직 모르지만  불운은 1 뒤엔 아무것도 아닌 일이  예정이며, 에피소드가 마무리될 쯤엔 훈훈한 메시지 하나 정도 남길 거니까. 나쁜 것들은 마주치지 않는  최선이겠지만 인생이 언제  뜻대로  적이 있나. 그러니 인생에 배경 음악 하나만 남겨야 한다면 시트콤의 웃음소리로 하고 싶다. 달달한 로맨스 영화의 서정적인 배경음악은 자주 틀기엔 버겁고 그럴수록 시들해지지만, 헤프고 정신없는  미덕인 웃음소리는 그럴 일은 없다.

 그러니 이왕 하루를   로맨스 영화보다는 시트콤 같은 하루를 살련다. 이따금씩 무능력한 스스로를 마주하는 회사에서나, 가망 없어 보이는 통장잔고를 짊어진 가난을 직면하게 되거나, 풀리지 않는 인간관계에서 마음이 상하거나, 의지만으론 해낼  없는 불가항력의 일을 만난  어느 때에라도.  멀리 어디선가 당최 이유도 모르겠는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처럼 산다면  씬만큼의 행복은 쥐고   있을  같다. 또다시 더워지는  계절, 세상 다시 없을 오렌지 주스 폭발 사건을 회상하며 스토리 하나를 구상해본다.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원룸 인생 시트콤. 주연은 모자라지만 착한 구석은 많은, 어느 철없는 삼십 . 마지막은 언제나, 그녀는 행복하게  먹고  살았답니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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