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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아 Jul 10. 2020

야근 식대와 두부 반 모



 매달 지출 결의서 제출 시기가 돌아오면 회사 책상 서랍이며 지갑이며 핸드폰 케이스 뒤 같은데 여기저기 던져뒀던 영수증을 긁어모으느라 바쁘다. 평소에 좀체 뚜껑 딸 일도 없는 딱풀로 영수증을 붙이다 보면 고도화된 디지털 5G 어쩌구 시대에 어째서 이 아날로그 노동이 존재하는 것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는 거다.




[6월 야근 식대]
- 6/23 세븐 일레븐 9,300원
- 6/24 GS25 12,300원
- 6/25 커피빈 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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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생략)





 도톰한 야근 식대 영수증을 제출용 종이에 하나하나 붙여 가다 보면 문득 그날의 업무 내역들이 떠오르며 추억에 잠긴다. 그리곤 생각한다. 미친, 내가 야근을 이것밖에 안 했다고?

 아니, 이렇게 야근을 많이 했다니, 하고 기겁하는 건 야근 초심자 시절 얘기다. 체감상 야근 식대 영수증으로 팔만대장경을 써도 모자란데! 막상 가지고 있는 종이 쪼가리 수에 '애걔..'소리가 나오니 마치 초딩 시절, 포도알 스티커 5개 받을 거라 철석같이 믿었다가 3개인 걸 알았을 때의 배신감과 비슷했다. 그렇다고 내가 야근을 즐긴다거나 하는 노동 변태는 아니다. 회사 돈 만원이라도 뺏어서 저녁 식비 아껴 쓰는 일상의 소확횡(소소하지만 확실한 횡령) 실천이라고 할까.

 업 특성상 야근은 숙명이고, 그건 삶의 여러 면에 영향을 끼친다. 그중 하나가 식사다. 사람에겐 하루 세 번 행복해질 기회가 있다. 아침, 점심, 저녁. 그 세 번의 식사 기회 중 가장 큰 행복의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무래도 저녁일 거다. 아침은 거르는 일이 더 많고, 회사 점심시간에 대단히 대단한 것을 먹을 일이 적으니 저녁은 하루의 행복을 좌우하는 큰 요소가 된다. 야근은 그 행복에의 변수. 일주일에 하루 정도 회사에서 두 끼 먹는다고 당장 지구가 멸망하는 건 아니지만 그 하루가 이틀이, 이틀이 사흘이 되다 보면 삶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든다. 내가 이러려고 돈을 버나. 허기를 채우기 위해 쫓기듯 먹는, 그야말로 살려고 먹는 밥은 어쩐지 울적하다. 밥 먹으려고 사는 인간은 감당하기 힘든 시련이다.


 나가서 밥 굶고 다니지 말라고 틈만 나면 얘기하는 부모님 걱정 탓에, 그래 엄마 밥 못 먹고 다녀서 골골거린단 소린 듣지 말아야지, 하고 감히 요리에 도전장을 내밀던 시기가 있었다. 유튜브에 좀 만만하다 싶은 레시피는 일단 저장. 필요하다는 식재료를 잔뜩 이고 와선, 건강하면서도 인스타그램에 올릴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맛있으면서도 그럴듯한 식사를 만들어보려고 했었다. 꿈은 늘 크게 가져야 하고 그들 중 대부분은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지상정. 주말에 식재료를 사두면 그중 반은 늘 도마 위에 오르지도 못하고 음식물 쓰레기가 됐다. 이유는 별 거 없었다. 집에 들어와서 음식을 만들 물리적 시간과 에너지가 없었다. 평일 저녁을 집에 와서 먹는 횟수 평균 2.5회(늘 그렇듯 실제 계산은 안 해봤다). 월요일 저녁에 볶음밥을 해 먹는 데 반이 쓰인 양파는 토요일 즈음이 되어서야 다시 냉장고 밖에 나올 수 있었다. 반토막 난 양파는 이미 물러 터져 황천길을 건너기 바로 직전.

 그래도 어떻게든 요리해서 먹겠다고 도전을 멈추지 않았었다. 그 가상한 도전의 결과는 새로운 발견으로 이어졌다. <식재료가 장기간 냉장고에서 방치되었을 때 어떤 모습으로 변할 수 있는가>. 관찰 실험의 결과는 놀라웠다. 물이 생기다 못해 까맣게 변한 샐러드 믹스나 노랗게 변질되어 가는 파, 물이 생긴 사과 같은 것들. 그 생경한 모습을 보며 미지의 대륙으로 나아가던 15세기 탐험가들의 마음이 이랬을까(아니다) 가늠해 볼 수 있었다.


 6월의 마지막 주. 새 캠페인 제안에 기존 기획 업무에 월말 리포트가 몰린 그 주는 모든 것이 예쁘고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며 야근 꽃을 피워냈다. 일주일 연속 야근을 채우고 또 그다음 주 월요일 야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허기만 가득했다. 본가 살 때는 느즈막히 집에 가도 만능 주문 '엄마~'를 부르면 됐지만 혼자 사는 사람에겐 그런 호사 따윈 없다. 별 다른 게 없는 걸 알면서도 괜히 냉장고를 열었다. 예상치 못한 존재와 마주쳤다. 두부 반 모.


 전전 주에 된장찌개에 반을 쓰고 남은 두부는 밀폐용기에 담긴 채 2주간 외면당한 상태였다. 두부를 넣어둔 맑은 소금물은 콩비지와 두유, 그 사이 어느 즈음의 희뿌연 색으로 변했고 두부의 형체는 건들면 녹아 사라질 것처럼 퉁퉁 부어있었다.


 근데 그게 꼭 출근길의 내 얼굴 같았다. 잔뜩 부은 얼굴과 부은 마음으로 지하철을 타고 회사로 가는 나. 돌봐주지 못한 건 냉장고 식재료 만은 아니었나 봐.

 3년 차 때였나, 못하는 것보다 할 수 있는 것을 세는 게 훨씬 빨랐을 초보 AE는 넘쳐나는 일에 스케줄도 제대로 못 챙긴 채 허덕이고 있었다. 그 꼴을 보다 못한 팀장님은 '일에 끌려다니지 마'라고 몇 번을 얘기했었다. 그게 일 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날 혼내는 것만 같아 섭섭함에 입을 씰룩거렸지만, 그 이후로 자주 그 말을 곱씹게 됐다. 일에 끌려다니지 않고 일을 끌고 다니는 사람. 바빠지는 때면 주문처럼 그 말을 외웠다. 그랬었다. 그런데 또 금세 그걸 까먹고 있었다.



야 그래. 까짓, 일이 뭐라고 두부 반 모도 제때 해결 못하고 사냐.  



 두부 반 모를 냉장고에서 치우면서 퉁퉁이 같은 출근길의 마음도 버렸다. 설거지거리 치우기도 귀찮은데 그냥 잘까 하던 마음 대신 햇반을 데웠다. 돌돌 돌아가는 투명한 창 뒤의 햇반을 보며 생각했다. 일이 나를 해 먹지 않고 내가 일을 해 먹어야지. 그렇게 살아야지. 남은 한 주의 저녁은 지난주 보단 맛있게 보내자고, 수저를 움직이며 밥과 함께 단단한 마음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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