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20대, 30대 친구들이 개인 성향을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쓰는 MBTI에서는 나는 극 I에 속한다. 옛날 사람의 표현을 빌리면 트리플 A형이다. 그래서 40년 인생을 살면서 적극적으로 누군가 앞에 서서 발언을 한다던가, 주장을 펼친다던가, 리더로 이끌어나가는 행동을 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대신 그런 리더 옆에서 묵묵히 조언해 주고 밀어주고 뒷받침해 주는 역할을 많이 해 왔고 지금의 사회생활도 별반 다르지 않다. 참모형 인간, 그게 나의 삶의 전반적인 모습이었다.
학교 생활을 할 때도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거나 발표를 했던 적이 별로 없었던 거 같다. 그런 내가 초, 중, 고 12년 학창 생활을 통틀어 선생님 질문에 먼저 손을 들어 발표를 하고 학급 친구들에게 박수를 받았던 적이 딱 한번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새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은 도덕 시간에 성선설, 성악설이 나오는 단원을 배우게 되었다. 성선설, 성악설에 대한 설명을 마친 선생님은 우리에게 두 가지에 대해 어느 쪽이 더 옳다고 생각하는지 각자의 의견을 정리해서 말해보라고 하셨다. 신학기 초기라 모두가 주변 눈치를 보고 있을 때 나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손을 번쩍 들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 봐도 그때 당시 내가 어떤 발상에서 그런 대답을 했는지 알 수 없는 말을 5분 가까이 말하기 시작했다.
나의 대답은 이랬다. "사람을 태어날 때 선함, 악함 어느 한쪽만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 양쪽을 모두 가지고 태어나는 것 같다. 단적인 예로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를 보면 어쩔 때는 천사 같더라도 어느 순간에는 악마 같은 모습으로 부모를 괴롭히지 않는가. 선함과 악함을 모두 가지고 태어난 인간은 자라는 환경, 교육, 경험을 바탕으로 선함이 더 두각이 나타날 수도 악함이 더 나타날 수도 있다. 그래서 성선설, 성악설은 모두 틀린 거 같다." 내가 했던 대답은 지금 생각해 봐도 자화자찬을 하고 싶을 정도로 훌륭했던 거 같다. 그러했기에 선생님은 놀라면서 친구들에게 박수를 쳐주라고 했을 것이다.
사람의 선함과 악함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정해져 있는 것인가, 아니면 성장 과정에서 결정되는 것인가에 대한 다소 철학적인 질문은 사실 아직도 답이 없는 거 같다. 가끔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노는 모습을 보면 너무 해맑게 웃으며 곤충들의 다리를 자르는 섬뜩한 아이가 있는가 하면 그 옆에서 그 모습을 너무 괴롭게 지켜보는 아이도 있다. 20세기 들어서며 나오기 시작한 사이코패스, 소셜 패스를 보면 사람이 태어날 때 악마와 같은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들의 유년시절 기사를 보면 결국 그 본성은 태어나서 성장한 환경에 의해 결정될 수 도 있는 것 아닌가 싶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는 유년 시절 부모님, 선생님 또는 주변 어른들에게 "착하게 살아야 된다.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 죄짓지 말고 살아야 한다."라는 말을 참 많이 듣고 살았던 것 같다. 그리고 나도 나의 아들들에게 가끔 얘기한다. "남들에게 상처 주지 말고 살아라! 성실함은 언제나 중요하다. 나쁜 행동은 하지 말아라!" 그런데 나이 40 중반에 다가서며 나는 끊임없이 의심하고 자신이 없어진다. 과연 착하고 정직하고 성실하며 누군가에게 상처 주지 않는, 해를 끼치지 않는 삶이 정말 옳은 것일까? 정말 나의 인생에 꽃길을 만들어주는 토대가 되어 줄까? 정말 나는 잘 살아왔던 것일까?
물론 평생 살면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한 번도 안 줬다고 하면, 누군가에게 거짓을 얘기하지 않았다고 하면,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다고 하면 그것 자체가 이미 거짓일 것이다. 하지만 가슴에 손을 놓고 40년을 살면서 의도적으로 내 이익과 목적을 위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적도, 누군가의 것을 뺏으려고 한 적도, 누군가에게 거짓을 말한 적도 없었다. 그렇게 부유한 집의 아들도 아니고 또 엄청나게 천재도 아니고 특출 난 재능이 있지도 않기에 평생을 성실함과 노력을 기반으로 살았던 거 같다. 과연 그러했던 내 삶이 잘 살아왔던 것일까?
문장 속 단어 하나하나를 돼 짚어보면 참 잘 살아온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40년, 나를 돌아보고 내 주변을 돌오보며 그렇게 살아온 내 인생이 정말 잘 살아왔다는 생각에 의구심을 지우지 못하는 것은 왜일까? 남의 것을 뺏으려 하지는 않았으나 번번이 남에게 나의 것을 뺏기기 일쑤였다.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항상 뒤로 물러나고 말을 아껴 왔으나 항상 나는 상처를 받아왔다. 나는 그들에게 진심으로 대하려 노력하였으나 그들은 가끔 나에게 거짓을 말하고 본인들의 이득을 챙겨 갔다. 때로는 편법을 쓰고 기회를 옅보며 본인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들은 노력과 성실로 나만의 작은 집을 만들고 있는 나를 고층 건물 펜트하우스에서 내려다보며 비웃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