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집 어디에 숨어있는지 알지도 못하는 수 많은 핸드드립 도구도 그때 모았던 것 같다. 1~2년 정말 커피에 진심이였다. 바리스타 학원을 다니며 자격증을 따고, 서점에서 유명하다는 커피 서적을 사다 읽으며 일주일에 한 번씩 생두를 구매해 직접 로스팅을 하고 핸드드립을 해서 커피를 마셨다. 핸드로스터를 불 앞 놓고 한 없이 돌리며 팝콘 튀는 소리와 초록색의 커피가 카라멜색으로 바뀌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고, 핸드밀에서 들리는 원두 갈리는 소리와 함께 보글보글 거리며 끓어 오르는 포트를 아무 생각없이 바라보는 그 기다림의 시간은 나의 고민과 걱정, 잡념을 잠깐이 남아 잊게 해주는 시간이였다. 차가워진 드립 도구를 뜨거운 물로 정성스럽게 데우고 필터에 분쇄된 원두를 조심스럽게 담음 후 모든 신경을 나의 손목에 집중하여 푸어링을 하는 순간 커피 필터 위로 전해주는 커피의 향은 나의 입가에 미소를 띄게 만들고 필터에서 물이 내려가 드립퍼로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는 커피를 바라보는 3분 정도의 기다림의 시간은 나에게 설레임을 주기도 했다.
여러 과정을 거치며 완성된 커피를 예쁘지는 않지만 나에게 익숙한 머그잔에 담아 식탁 위에 올려 놓고 앉아 잠시만 물끄럼이 바라본다. 심호흡을 한번 하고 드디어 들어가는 커피의 한모금은 더 이상 어떠한 말로도 문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순간으로, 시간으로 나를 인도하곤 했다. 이렇게 나의 노력, 정성(?)이 들어간 커피는 언제나 맛있던거 같다. 나의 드립 기술이 좋아서는 아니겠지만 나의 노력에 대한 만족감일 수도 있고 또 그냥 원두가 좋아서 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지금 내 앞에 있는 커피 한잔을 위해 거쳐던 모든 과정에서 겪었던 기다림과 그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 나도 모르게 느낀 순간순간의 여유가, 주변과 단절되어 오로시 커피와 나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그렇게 나의 손으로 나만의 커피를, 나만의 시간을 만들어준 그 순간순간의 기다림과 여유가 내 앞에 있는 커피를 더 맛있게 해주는 것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두 아들이 생기고 사회 생활에 허덕이며 찌는 듯한 한여름 같은 40대 정상에서 나의 커피의 열정은 식은지는 너무 오래되었다. 이제는 시간이 있어도 유명한 핸드드립 커피집을 찾기보다는 1,500원짜리 저가 브랜드 카페를 들어가고 집에서 한 시간 넘는 시간을 투자하며 원두를 직접 볶아 커피를 내려마시는 여유보다는 커피머신으로 빠르게 에소프레스를 내려 아메리카노를 후다닥 마시고 다른 일을 하기에 정신이 없다. 40 정상에 있는 지금, 그 남아 내가 틈에서 틈을 찾은 커피의 여유는 1시간 일찍 일어나 남보다 30분 먼저 출근하여 얻은 아침의 자투리 시간이다. 가끔 너무 피곤할 때는 그 30분도 포기하고 싶을때가 많다. 하지만 매일 아침 나 스스로에게 주는 30분의 커피 첫 한 모금은 하루 일과 중 내가 마시는 커피 중 가장 맛있는 커피이다. 때로는 과거 커피의 열정이 가득했던 시기 1시간의 기다림 속에서 얻은 커피보다 더 맛있을 때도 있는 것 같다.
가끔 내가 커피에 진심인 것을 아는 사람들은 나에게 어떤 커피가 가장 맛있는지를 물어보곤 한다. 그들이 원하는 대답은 어느 나라 커피가, 어느 유명 카페가, 어떤 브렌드의 커피가 맛 있는지 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항상 동일한 대답을 해 왔던 것 같다. 커피의 종류, 카페 브렌드 그러한 것들이 아니라 커피를 마시는 순간 내가 어디에서 누구와 어떠한 상황에 있는가가 가장 중요하다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내가 좋아하는 장소에서 행복한 순간에 마시는 커피라면 그 커피가 단돈 100원짜리 믹스커피 일지라고 세상에 그 어떤 커피보다 맛 있을 거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