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얼 없는 삶의 40_Part 1.

by 신상우

지난달 새롭게 바꾼 텀블러가 말썽이다. 분명히 가방에 넣기 전에는 최대한 마개를 닫았다고 생각하는데, 어느 순간 잠김이 풀려 음료가 새고 있는 것이다. 환불 기간도 한참 지났거니와 사용 설명서도 없는 제품인지라 제품이 문제인지, 내가 무엇인가 잘못 사용하고 있는지 알지도 못한 채 언젠가는 좋아지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나는 오늘 아침에도 텀블러를 가방 깊숙한 곳에 넣었다. 새로운 물건에 적응한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설레는 일이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상당히 불편한 과정이기도 하다. 기대하고 있었던 기능이 내 눈앞에서 곧 구현될 것이라는 설렘과 기대, 이전 물건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기능을 접해보고 찾아가는 재미는 우리가 새로운 물건을 구매하고 사용하는 이유일 것이다. 반대로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물건 때문에 이전에는 빠르고 쉽게 하던 일들에 어이없는 실수를 하고 평소보다 더디게 처리되는 불편함과 짜증은 새로운 물건을 바꾸는 데 망설이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유년 시절을 포함해서 40년 동안 나의 구매 패턴을 돌이켜보면 새로운 물건에 대해 욕심이나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는 스타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기본적으로 당장 필요하지 않고 불편함이 없다면 무엇인가를 소비하지 않는 습관을 가지고 있지만, 스스로를 조금 더 생각해보면 새로운 물건에 적응하는 시간의 설렘과 기쁨보다는 불편함을 느낀 쪽에 속하는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의 편안함을 굳이 불편함으로 이끌고 갈 필요가 없다는 잠재의식이 지난 40년의 나의 소비 습관을 지배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양한 최신 기능이 추가되어 새로운 것을 접하고 알아가야 할 시간이 많이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기보다는 현재 내가 필요한 기능 몇 가지만 잘 구현되어 단시간 내 과거의 물건보다 조금 더 편해질 수 있는 물건을 구매해 왔던 것 같다.


무엇인가를 구매하는 습관 때문이었을까, 나는 새 물건을 사면 항상 들어있는 사용 설명서를 잘 안 보는 스타일이다. 내가 원하는 기능이 잘 되는지 확인만 되면 다른 기능은 쓰면서 알면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수 개월 만에 우연히 나의 물건에 새로운 기능을 발견하며 깜짝 놀라기도 하고, 때로는 주변 지인이 나와 동일한 물건을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을 보고 감탄하기도 한다. 그리고 가끔은 나의 지인도 나의 그런 모습에 다른 의미로 감탄하기도 한다.


어쩌면 나는 메뉴얼을 보며 물건의 기능을 하나하나 찾고 배우며 느끼는 설렘과 설명에 맞춰 조작했을 때 이전 물건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기능들을 보며 기뻐하기보다는, 사용하다 우연히 발견되거나 실행되는 것에 대한 놀라움과 즐거움을 더 선호했던 것 같다. 메뉴얼을 보고 기능을 공부하여 단기간에 물건을 더 다양하고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포기하는 대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알아가고 기대하며 갖는 놀라움과 즐거움이 나의 것과 오랜 시간 함께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 주는 것 같다. 그래서 나의 많은 물건들이 작게는 5년, 길게는 10년 가까이 되는 것들이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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