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되짚어 보면 나의 삶에는 언제나 메뉴얼이 없었던 것 같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새로운 환경에 들어가거나, 새로운 업무를 맡을 때도 나는 항상 메뉴얼을 따르려 하지 않았다. 새로운 것을 접했을 때 나에게 바로 필요한 상황, 업무, 사람이 아니라면 무엇인가를 보고 공부하고 조사하여 사전 지식을 쌓고 대면하기보다 천천히 시간을 가지며 직접 겪어 보고 물어보고 알아 갔던 것 같다.
물론 그런 나의 스타일이 나에게 루틴하게 주어진 환경, 업무, 인간관계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생기면 평소와 다르게 조금 더디고 엉성해서 주변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나 또한 스스로 몰랐던 상황과 나의 모습, 주변 사람들의 모습 때문에 나 자신과 타인에게 상처받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몰랐던 것에 대한 상처만큼이나 새로운 것을 알아가고 배우고 친숙해지는 과정 또한 즐겁고 의미 있기에, 내가 받은 상처 이상으로 소중한 것을 많이 얻었다.
어쩌면 주어진 메뉴얼, 설명서, 후기 등을 보며 무엇인가를 익히고 습득하고 알아가는 것이 모든 측면에서 효율적이고 합리적이며 편리할 수 있다. 하지만 짧은 시간에 모든 것을 다 알아버리고 이미 모든 것을 다 습득하고 파악했다는 생각에 갇혀 그 대상을 너무 빠르게 평가하고 단정하고, 너무 빠르게 지루해하고 그래서 그 대상에 정이 들기도 전에 새로운 무엇인가를 다시 찾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40대를 넘어가는 시간 동안 메뉴얼과 조금 거리두며 살아왔던 내 삶이 조금은 불편하고 다소 효율성이 떨어지고 또 누군가에게는 거부감과 당혹감을 주었을지라도, 한편으로는 그 대상을 조금 더 깊이 알 수 있고 조금 더 많이 이해하고 그래서 조금 더 오래 함께 할 수 있게 해주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40의 정상에 서 있는 지금, 나는 앞으로도 내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대상을 접해야 할 시간과 경우가 과거의 나보다 더 많을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예전과 다르게 그 대상을 알아가는 데 주어진 시간은 점점 줄어들 것이며, 내가 알아야 할 것은 더욱더 늘어날 것이다. 과연 내가 어느 순간까지 지금의 메뉴얼과 거두리기 삶을 살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어느 순간 나의 이 삶의 패턴이 과거의 나에게 득이 되었다면 미래의 나에게는 독이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아직은 메뉴얼을 펼쳐보고 싶지는 않다. 비록 메뉴얼을 펼치는 순간 그 대상이, 나의 삶이 조금 더 편해질 수는 있겠지만, 내가 너무 빨리 그 대상을 떠나보내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약간의 두려움이 내 마음 한켠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