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그럴 때가 있다. 전철을 타려고 플랫폼에 서면 내가 전철을 기다리는 것이 아닌 마치 전철이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내 앞에 와주고 하물며 그런 일이 한번이 아니라 환승 할때 마다 타이밍 좋게 맞춰서 문이 열려준다면 그날은 뭔가 복권이라도 사야 될 것 같은 기분이 들때가 있다. 나는 출근길에 그런 경험을 하면 항상 마음 속으로 '오늘 운이 좋은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는 한 명의 인물을 항상 떠 올린다. "김.첨.지" '설마' 하면서 말이다.
최근 쓰고 싶은 소설을 구상하며 예전 중학교 시절 읽었던 현대소설을 다시 읽고 있는 영향 일 수도 있지만 돌이켜보면 40 정상까지 올라오는 인생의 오르막 길에서 '운수 좋았다!'라는 경험이 별로 없었던 나에게 단순한 운도 불안감으로 찾아오는 것 같다. '운'이라는 단어와 인연이 없는 삶이였기에 평생 살면서 운에 기대어 뭔가를 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어떤 이는 매주 한다는 복권도 1년에 열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하고 추첨, 뽑기 그러한 것은 예초에 참여도 잘 하지 않지만 참여 할 지라고 결과는 언제나 꽝이였다.
사람과 인연에 대한 운도 별로 없었기에 40이라는 세월 동안 사람 때문에 상처 받고, 힘들어 하고 좌절 했으며 언제나 불안하고 울울감에 살았던 것 같다. "운칠기삼", 나의 인생에 있어 거리가 먼 네 단어이다. 그래서 난 인생의 매 순간, 매 고개마다 더욱 성실하게 주어진 내 역활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하지만 누군가 그렇게 애기 하였듯이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고, 천재적이고, 성실해도 매 타이밍마다 운이 따라 주는 사람은 결국 따라가지 못 한다는 것이 내가 40의 정상을 등반하는 길 뼈저리게 느낀 진리이다.
어쩌면 운이라는 것은 결국 확률 싸움이고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도전하고 기회를 만들어가는 것이 답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 나는 성실하기만 했을 뿐 확률 싸움이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과감한 도전은 회피하며 살아 왔을지도 모른다. 대학교 시절에 복권을 잘 하지 않는 나에게 왜 복권을 하지 않느냐고 여쭤보셨고 나는 "어차피 당첨되지 않을 것을 무엇하러 하느냐고" 대답했다. 그때 아버지가 "그래도 계속 해야 당첨될 확률이 높지 않겠니" 라는 말을 해주셨던 것 같다. 운과 성공의 상관관계가 비례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 비례가 일적선으로 곧게 올라가는 모습이면 좋겠으나 대부분은 곡선의 형태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처음에는 급격히 올라가다가 결국 일적선과 같은 운 그래프를 가진 "용두사미형", 한 없이 진척이 없다가 한번에 운빨이 올라가는 "대기만성형", 반비례 그래프로 처음부터 위에서 시작하였으나 끝 없이 내려가는 "갈택이어형 (연못의 물을 모두 말려버린 다음 물고기를 잡는다는 뜻)",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과 방법, 태도에 따라 재각기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그리고 우리는 그 1차원적인 운이라는 그래프를 따라 일희일비하며 평생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