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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RYUN May 31. 2023

장래희망 회사원인 소년이 사업을 하게 된 이야기 (2)

그렇게 바로 일에 몰두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난 여전히 아무것도 몰랐다. 그러다 한 제품이 크라우드 펀딩에서 소소하게 성과를 거뒀다. 팀을 떠난 팀원이 다 준비해 놓고 간 프로젝트였다. 프로젝트의 성공을 보고 내가 한 건 없었지만 미약한 가능성을 보았다. 이 제품은 손톱을 갈아주는 전자 제품이었는데, 손톱 깎이로 손톱을 깎다가 실수할 수 있는 노인들이나 아기들에게 쓰기 좋았다. 특히 아기들은 손톱을 갈아주는 경우가 많은 것을 발견했다. 아기는 손이 작아 손톱깎이를 이용하다가 실수할 수도 있고, 모서리가 뾰족하게 깎이면 얼굴에 상처가 날 수 있음을 알게 됐다. 펀딩이 끝나고 제품의 포지셔닝을 유아 용품으로 바꿔 판매를 시작했다. 팔리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의도한 성과를 얻었다. 그렇다고 상황이 좋아진 건 아니었다. 매출이 크지도 않았고, 제품의 원가 구조부터 문제가 있었다. 이를 더 확장하는 방법도 몰랐다.


의도한 작은 성과를 거두고 몇 개월 뒤, 의도치 않은 성공이 찾아왔다. 가을에 접어들면서 한 시즌 제품이 갑자기 불티나게 팔려 나가기 시작했다. 우리팀에서가 아니라, 제품을 공급한 셀러 쪽에서였다. 물론 미리 셀러를 모집(내가 한 건 아님)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때 그 제품의 시즌성과 언제 수요가 폭발하는지를 알게 됐다. 우리는 바로 해당 제품을 재생산 했지만 한창 피크를 놓치고 말았다.


두 번의 성공을 맛 보았지만, 난 여전히 아무것도 몰랐다. 다시 같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다. 사업을 하며 느낀 답답함은 지식에 대한 갈망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내가 알고 싶은 것은 단단한 사람이 되는 방법이었다. 근본적인 발전 없이는 사업 방법을 알아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나는 실천할 수가 없을 것이라 느꼈다. 그래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내 자아가 단단해지는 데에 도움이 될만하다 싶으면 닥치는대로 읽었다. 철학, 습관, 시간관리, 삶을 대하는 태도, 일하는 방법, 가리지 않고 읽었다. 책을 읽으며 잊고 살던 감정의 기복을 경험했다. 삶의 진리를 깨우친 것 같은 지적 쾌감을 느꼈다. 방바닥에 앉아 자기관리론을 읽으며 오열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게 내 현실(사업)에 무슨 도움이 되는가 자괴감이 들었다. 그럼에도 계속 책을 읽었다. 내가 아는 방법은 그것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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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월 간 계속 책을 읽었지만, 우리 사업은 그닥 나아가지 않았다. 난 여전히 무슨 일을 해야할지 몰랐다. 하지만 무언가 해야한다는 사실은 알았다. 뜨거운 여름이 시작된 시기였다. 이 더위가 지나 가을이 오면 푸른 잎들도 생기를 잃고 매말라 떨어지기 시작한다. 한 시즌성 제품이 팔리기 시작한다. 당시 가전 브랜드에는 7개의 제품이 있었다. 서로 관련성이 없는 제품이라 각각 기획과 마케팅이 필요했다. 시즌 제품을 제외한 6개 제품을 가져가면서 가을을 준비하기엔 시간이 없었다. 정확히는 내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시즌 제품에 집중해 가전 브랜드를 재포지셔닝 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가전 브랜드의 재포지셔닝에는 '브랜딩'이 핵심이었다. 하지만 난 브랜드가 뭔지, 브랜딩은 어떻게 하는 건지 몰랐다. 그래서 브랜드/브랜딩과 마케팅에 관련된 책 20권을 샀다. 그리고 이 책들을 읽으며 토론하면서 기획해나갔다. 그렇게 더듬더듬 브랜드의 형태를 갖춰 나가며 가을을 맞이했다.


초가을이 됐을 때 시즌 제품의 첫 번째 예약 구매를 받았다. 매출은 크지 않았다. 우리를 기다리겠다며 예약해 주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에 의의를 두었다. 불안함이 고개를 들었지만, 광고비를 편성해 다음 예약 구매를 진행했다. 그리고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혼자 상상하던 최상의 결과보다 더 높은 성과였다. 2번의 예약구매로 준비한 모든 물량이 나갔다. 이제 막 제품 수요의 피크가 시작될 무렵인 10월 중순이었다.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둔 첫 성공이었다. 내가 팀에 합류한지 5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다시 계절이 한 바퀴 돌아 여름이 왔다. 다시 올해 가을을 준비해야 한다. 지금 돌이켜 보면 우리가 준비한 브랜드는 허술한 점도 부족한 점도 많다. 매출을 견인한 건 특정 시기에 수요가 폭발하는 제품의 시즌성이었다. 아마 올해도 그럴것이다. 하지만 브랜드로서 더 큰 가치를 제공해야함은 분명하다. 우리 사업은 언제나 그렇듯, 다시 한 번 기로에 서 있는 듯하다. 우리는 더 큰 비전과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가는 길이 표시된 지도는 없다. 목적지가 그려진 그림 뿐이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왔던 길을 되돌아 볼 수는 있다. 내가 어디 있는지 몰라 길을 잃는 일은 줄어들지 않을까.


난 여전히 사업을 한다는 것의 의미를 모른다. 하지만 지금 내 삶을 위해 해야할 일은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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