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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셩 Apr 10. 2017

이별, 그 따뜻함에 관하여

할아버지 가신 그 날



앞으로의 수없이 많을 이별의 시작,

내게 하나뿐인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날이 좋아도 너무 좋아서

집 안에 있지 못해 모두가 바깥에 나와 새로운 계절을 만끽하던 날

그런 날에,

그렇게 아름다운 날에

그것도 가장 따뜻한 오후 두시 반에.


그나마

예정된 이별이었다.


한 주 전쯤,

가족 전부 다 내려오라는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KTX를 타고 달려갔다.

그때까지는 몰랐다.

노래도 듣고, 밀린 작업도 하고, 그랬다.

얼마 가지 못하실 거라 들었는데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병원 가는 길

"니 절대 할아버지 보고 울지 마래이. 알긋제"

늘 쿨한 큰이모의 한마디에

괜히 차 안에서 울컥해서 그랬는지

할아버지를 뵀을 땐 오히려 담담했지만


가슴은 놀라 쿵쾅거리고 있었다

내가 상상한 할아버지의 모습이 아니었다

가장 최근에 기억한 할아버지의 모습이 아니었다.


절망스러웠다

늦었다는 사실이 물밀듯이 밀려와

나를 쓸어다 내동댕이 치듯.


그나마 예정된 이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일찍, 좀 더 먼저 알 수 있었을 텐데

좀 더 정정하실 때 찾아뵐 수 있었을 텐데

그 후회는 아마

할아버지를 기억할 때마다 박힌 가시마냥 쿡 쑤실 것이다.


내가 모르던 사이

이미 2주 전부터 입원했던 할아버지는

그 시간동안, 고된 병원생활에 기가 다해

눈은 풀리고, 거동은 불가능한 상태로

그렇게 중환자실에 누워 계셨다.


애써 태연한 척하며

할아버지 저 왔어요 했지만

기대했던 그 목소리가 아니었다

의식은 정정하셨지만

마음대로 소리도 못 내실 만큼

기력이 빠져있었다.


이모들, 외삼촌 앞에서 도저히

울 수가 없어 애써 미소를 지었다

얼마나 고생하셨겠냐고

돌아오는 미소에 너무 많은 말들이 묻어 있었다.


다행히 그 날은 한 고비를 넘겼다

뒤늦게 내려온 우리 엄마까지

우리가 하룻밤 병원에서 자고 가서 그런지

다음날 할아버지는

한 숟가락도 채 드시지 않던 죽을

다섯 숟가락을 드시고

평소 버릇처럼 하셨던 입운동을 하시고

병원 침대를 올려라, 내려라 연신 반복했다.


하루 전까지

숨도 잘 못 쉬시고

말씀도 잘 못하셨던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 이제  기운이 도시나 보다.


서울 가는 길 그나마 마음 편히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저희 갈게요,

느그 가나,

네, 할아버지 어서 나아서 서울 같이 가요 또 올게요

오냐, 밥 잘 묵그래이.


그땐 왜 몰랐을까,

그게 마지막 말씀일 거라는 걸

알면서도 모른척 돌아선 내가 원망스럽다.


마지막이라는 걸 끌어 안고

더 그 시간을 온전히 느꼈어야 했는데

가물가물했던 할아버지의 마지막 한 마디에

더 잘 대답 해드릴걸

손 더 꼭 잡아 드릴걸

꼭 안아 드릴걸.


괜히 마지막이라는 느낌이 들까봐

안 했던 행동들이 생각나

비수처럼 가슴을 파고 지나간다


할아버지는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식사를 너무나 잘 하셔서

이모들과 외삼촌은

다시 일어나시기만을 바라고 있었던 거 같다

나도 그러기를 바랐지만,


그렇게 잘 드시고

돌아가실 힘을 마저 만들고 계셨던 거였다

잘 돌아가실 수 있는 힘.


마지막 날에는 이모가 병원 밖을 세 번이나 다녀올 만큼

드시고 싶은 게 확고하셨고


그걸 다 드시고,

어느 따뜻한 오후2 

큰이모가 병실 침대에 기대 까무룩 잠이 들려 할 즈음

숨을 크게 들이쉬면서

육신을 버리셨다고 한다.


호상 중에서도 호상이었다

향년 아흔셋.


살아계실 때도

언제나 꼿꼿한 자세로

주위에게 늘 격려와 좋은 말씀을 아끼지 않고

당신의 삶 역시 곧게 사신 분이

가실 때까지

자식들 손주들 누가 되지 않도록

그렇게 아름답게 가셨다.


장례를 치르는 3일 내내

날이 좋아도 너무나 좋았다.

장지하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까지

꽃비를 뿌려주시며

자식들 돌아가는 길 살펴 주셨다.


모두가 부러워했다.

날까지 잘 골라 가셨다며

나도 이런 날 가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5년 전 즈음

할아버지 뵈러 갔을 때였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셔야 해요

오냐, 느그들도 늘 건강해야 한다

내는 한 5년은 잘 살다가 갈 거 같다


사람은 자기가 가야 할 때를 안다는 말

나는 믿는다


우리 할아버지가 그렇게 가셨기 때문에


내 삶을 내 의지로 끝맺으며 가는

그 존엄을 지키고 가실 수 있어서

손녀는 그래도 마음이 편했어요, 할아버지.


장지에서 첫 제를 올릴 때

먼저 가신 할머니가

할아버지 마중 나오는 환영을 봤다


두분 함께 나란히

그곳에서 극락왕생 누리시옵소서


따뜻한 이별을 가르쳐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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