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새벽
8월의 무더위를 좋아한다.
장마가 지나가고 태풍이 거쳐가는 후의 푹푹 찌는 태양의 열기
여름 내 열기를 받아낸 땅이
다시 복수하듯 뿜어내는 증기
휴가가 끝날 무렵
다같이 시끌시끌 놀다 문득 맞이하는 혼자의 시간
그 시간에 나를 찾아오는 여름의 무더위는
어딘가 멈춘 시간으로 나를 데려다 놓고
찜통 덮개를 덮어놓는다.
서울숲의 코끝 찌르는 숲향기
태양 아래서 필름을 바꿔 낄 때의 두근거리는 아찔함과 필름의 향기
지금 가면 절대 먹고 자고 할 수 없을 것 같은
탈춤 전수관의 콤콤한 향기와 내리쬐는 태양
골목길 사이 그늘에서 잠시 더위를 피할 때
빛을 피할 곳 없어 그저 땀이 맺힌 코끝을 찡그리기밖에 더 할 수 없을 때
무더위 사이를 가로지르는 바람 끝에서
가을의 서늘함이 느껴지기 시작할 때면
나는 부지런히 뙤약볕을 찾아
얼마 남지 않은 여름을 쬐러 간다
에어컨이 그리 흔치 않던 몇년 전엔
오히려 더 무더위를 만끽할 수 있던 것 같다
나의 20대의 여름
선풍기와 바람과 부채로 잠시 더위를 달래곤 했던-
30대의 여름은
그때를 그리워하면서
블라인더 사이를 뚫고 들어오는 햇볕을 반기며
시원한 바람을 맞고
산책할 힘이 비축이 될 때쯤
느슨한 옷을 입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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