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우리 집은 어디에] 냉장고 냉동실, 확장된 집

냉장고 냉동실, 확장된 집

by 스테이시

집을 구할 때, 가격이 물론 가장 큰 요인이 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이것만은 포기할 수 없다는 부분이 다들 하나씩 있을 것이다. 우리 아빠는 그나마 그래도 그 단지 내에서는 한적한 뷰나 위치를 원하셨다. 원래 산조망을 늘 갈망하시던 분이니 이해가 된다. 교통의 요지인 신도림동이 얼마나 한적 할 수 있겠냐만은 아빠는 큰 도로에서 가장 먼 동을 고르셨다. 엄마는 현관문을 열면, 바로 주방이 보이는 구조를 못내 아쉬워하셨지만, 내 생각엔 짐이나 오래된 가구를 좀 버린다면, 우리 집은 훨씬 만족스러울 수 있었다. 사실 구조 바꾸기는 엄마의 취미이기도 했다. 나보다 이사를 훨씬 많이 다니셨을 테니 당연한 취미활동이었으리라.


그 해 겨울이 다가왔고, 확장된 내 방은 외투를 입지 않고 생활할 수 없을 만큼 추웠다. 외풍 정도가 아니라 어딘가 그냥 문이 열려 있는 것 같았다. 한번 이불에 들어가면 너무 추워서 누워서 엄마한테 “방 불 좀 꺼줘요”라고 문자 보냈다가 된통 혼난 적도 있다. 내동 생방도 내 방보다 조금 나았지만,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내 방은 냉동실, 동생은 냉장고라고 불렸다. 우리 전 주인이 아들만 둘이었는지 벽지를 온통 하늘색으로 해 놓아서 더 춥게 느껴졌다. 정말 지금 생각해도 몸이 부르르 떨릴 정도였다. 확장된 부분의 시멘트 벽은 밖의 한기를 그대로 전달하고 있었다. 너무 정직하게 말이다. 가족회의를 열어 단점이 부각되지 않는 여름에 집을 팔고 이사 가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너무 따뜻하면 못쓴다는 엄마와, 이사라면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아빠는 우리의 민원에 큰 반응이 없었다. 나중에 안 애기지만, 방이 추우니 딸들이 여기 실기 싫어서라도 빨리 시집가겠지 라는 아빠의 딸 털어 내기 전략 중에 하나였다고 한다. 아빠의 전략대로 나는 27살, 냉동실을 탈출했다


일 평생 집으로 고생하신 아빠는 집 없는 남자’와 결혼하겠다는 나의 무모함에 깜짝 놀라셨지만, 평생 시집 안 가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부모님께 얹혀살 것 같던 내가 남자 친구를 데려오자 기뻐하셨다. 나는 20대의 남자가 집을 가지고 있다는 상황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연애를 할 때 그런 조건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리하여, 내 신혼집 예산이 이러 저래 책정되었고, 그 예산에서 단 한 가지만 충족시켜보기로 했다. 신도림을 떠나지 않는 것이었다.


사실 신도림은 아파트 촌과 공장지대(다세대주택)가 공존하는 과거와 현재가 존재하는 독특한 지역이긴 하다. 예전에는 공장지대가 과거로 보였는데, 지금은 재개발 기대감으로 미래로 보이기도 하는 것 같다. 그 사이를 헤집고 다니면서 찾은 것이 신도림 미성아파트(1988년)이었다. 15평이라고 부르고 37제곱미터였는데, 우리가 오피스텔이라고 생각하면 딱 떠오르는 그런 원룸형 구조였다. 보증금에 10만 원을 매달 내는 반 전세 계약을 했다. 부동산 아주머니는 “새댁 몇 달 이체하다가 안내도 돼” 라며 그 당시에는 으레 관행적인 얘기를 하셨지만, 그러기에 난 너무 순진하고 정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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