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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이시 May 05. 2020

나의 청춘은 너의 것

Love the way you are 2019 대만


결혼 10년 차가 시작 되기 D-3 이다.


몇 밤 후 우리는 아홉 해를 꽉 채워 같이 살아 온 것에 대한 자축을 할 예정이다. 남편을 처음 만난 것은 19살 때 였는데, 멀리서 보고 내 기준에서 외모가 참 멋지다고 생각했었다. 그건 마치 연예인 잘 생겼네 이런 소감과 크게 다르지 않은 감정이었고 그렇게 시간은 자신의 일을 했다.


타인에 대한 경계심의 수위가 아주 높았던 나는 외국 교환학생을 계기로 나라는 감옥에서 탈옥을 했고, 그 뒤 돌아와서 다시 그 친구를 마주하게 되었다. 마음을 열어야 겠다고 결심하고 나서 처음 보인 남자 사람이어서 이어서 그랬는지, 마치 알에서 나온 병아리가 앞에 있는 누군가를 엄마라고 부르는 것 처럼 자연스럽게 그 친구는 내 삶의 일부가 되고 365일 곱하기 3의 시간을 보낸 후에 가족이 되기로 했다.


사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무언가 멜로스럽지만, 현실에서는 3년 뒤에 결혼을 하는 것이면 1095분의 1씩 친해지겠다고 선언한 나 덕분인지 결혼할 때 까지 다 못 친해졌고, 손도 잡지 않겠다고 난리 친 덕분인지 무언가 추억이라고 명명할 일들이 많지 않은 것이 지나온 우리의 에필로그이다.


그래서 우리는 놀이공원도 가본적이 없고, 기차여행 같은 것도 해본적이 없기에 이제부터라도 추억만들기를 조금씩 해가면 어떨까 생각을 했다. 그 중 하나는 같이 영화를 보는 것이었다. 9주년 결혼기념을 맞이하여  오늘 우리는 급 시간이 맞는 영화를 골랐고, 제목은 "나의 청춘은 너의 것(Love the way you are)" 였다.


어떤 영화인지 검색도 안하고 1:00PM에 시작하는 걸로 예매한 것이라서 큰 기대가 없었던 덕일까? 나는 엄청 깔깔 웃으면서 보았는데, 다보고 인터넷 평점을 찾아보니 실망스럽다는 평이 많다. 대만 영화의 유명한 사랑 시리즈 라는데 멜로보다는 코메디라고 생각하고 봐서인가 중간중간 빵빵 터지는 부분이 많았다.


*영화 내용에 대한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한마디로 하면 첫사랑 이야기이다. 늘 작사학원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이 컨텐츠를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어야 잘 만든 거라고 하셨다. 그런의미에서 나는 이 영화가 좋았다. 남자주인공의 외모 빼고는 볼 것이 없다는 평이 많던데 남자주인공의 외모가 열일한 것도 훈훈했지만, 아날로그 감성의 사랑이야기, 즉 요즘 흔히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말이다.


남자 주인공 팡위커(송위룡) 과 여자 주인공 린린(송운화)는 같은 고등학교에서 같은 대학교 같은 과로 진학하게 되는데 그 앞에 짧게 펼쳐지는 어린시절 장면들에 이후 이야기의 반전과 복선이 거의 다 숨겨져 있다. 나는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감정선을 따라가다가 헉! 반전인데 ... 라고 보아서 인지 더 재미있게 보았던 것 같다.


머리로 눈까지 가리고 안경까지 써서 그나마도 얼굴이 잘 안보이던 남자주인공은 어떤 사건을 계기로 얼굴을 오픈하고 자신감있는 훈남으로 변신하는데, 물론 얼굴이 밝아진것도 좋지만 갈피를 못잡던 어쩌면 자신이 없던 자신의 감정에 대해  확실한 입장을 정리한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역시 사람은 무언가에 확신이 있는게 멋진 것 같다.


여자 주인공은 남자 주인공이 다른 여자를 좋아한다고 생각해서 엄청 열심히 이어주려고 노력하지만, 어느 순간 보니 자신이 남자주인공을 좋아하게 되어버렸었다. 참, 1차원적인 캐릭터로 여자 주인공을 표현해서 오히려 좋았다. 이 영화를 칭찬하고 싶은 점은 여자 주인공의 발랄한 캐릭터가 중간에 멜로에 묻히지 않고 끝까지 유지된다는 점이다. 여자 배우가 나중에 보니 남자 배우보다 7살정도 많았다. 그건 나이를 알기 전에도 살짝 느껴져서 몰입도가 살짝 아쉽기는 했다.


반전은 마지막 10분이었는데, 남자주인공 7살 때 부터 20살 지금까지 여자주인공을 짝사랑해왔다는 것이었다. 띠용! 그러면서 지나온 장면들에서 감춰두었던 힌트를 한 번에 몰아서 다 보여주는데, 아! 이 남자주인공의 마음을 전혀 읽어내지 못한 나 같은 관객이 있다는게 이 영화 제작진의 성공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참 예뻤다. 첫 사랑이라는 소재도. 자극적이지 않은 감정의 흐름도.

한편으로는 슬펐다.


앞으로 이런 느린 감정의 전개와 풋풋한 감정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시대가 올 것 같아서 말이다. 소위 라떼는 말이야 ... 이런 아날로그적 감성 및 기다림이 기본이었는데, 지금은 이게 아주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되어버린 점 말이다.  우리 세대는 그냥 예뻤던 시간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가 있다. 어른이 되어버린 지금은 고지서에 출근길에 대출과 친구되며, 다시는 겪어보질 못할 감정들을 갈망한다.


그렇게 예쁘고도 슬펐던 영화는 끝이 났다. 말하기 민망하지만 영상을 전공한 사람입장에서는 마지막 엔딩 바닷가 장면에서 남여 주인공 얼굴이 예쁘게 살지 못한 조명과 시간 대 였던 것 같아서 조금 아쉬웠다. 영화를 보다가 갑자기 드라마로 바뀐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남편과 영화관을 나서는데 40살이 다되가는데 티셔츠에 청바지를 푸석하게 걸친 남편에 조금은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그가 20살 일 때 처음 봤을 때, 친구는 반짝 반짝 빛이 났는데, 지금은 옷에 쓸 돈 따위는 없다는 마누라 덕에 고생이 많았겠다. 남편은 내가 자신의 옷을 건조기에 넣어서 망가뜨리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하하하. 영화 속 남자주인공이 늘 범생처럼 입고다니다가 영화의 하이라이트에서 수트를 입고 등장하는데 극장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들렸었다. 수트를 입는다고 모두가 멋져지는 건 아닐 수 있지만, 남편에게도 옷 한벌 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만 했다. : )


영화 속 주인공들은 서로에 대한 마음을 고백하고 연인이 되었는데, 그 친구들의 10년 뒤는 어땠을까? 자신들을 닮은 삐약거리는 아이들과 투닥거리며 공과금을 내고 있을까? 어쩌면 행복은 이런건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의 히든카드는 토끼라는 이야기를 남기며 글을 마무리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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