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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우리 집은 어디에] 부동산에 당한 수모

by 스테이시

그래서 엄마가 만들어주셨던 주택청약종합저축을 가지고 장기안심 당첨을 확정받을 수 있었다. 뭔가 대단한 한 발걸음을 이뤄낸 것 같은 뿌듯함이 잠깐 들긴 했지만, 주거 관련 문제를 풀어갈 때는 정말 산 넘어 산이라는 표현이 딱 맞는 것 같다. 우여곡절 끝에 이제 SH에서는 우리가 1억 3천 이하의 전셋집을 직접 찾아오면 담당자를 계약현장에 보내서 진행하겠다고 했다.


이제 내 원래 보증금에 4500만 원이 더해진 금액의 집을 보러 다닐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금방이라도 지금보다 더 좋은 집에 살 것처럼 들뜨기도 했다. 어느 토요일 아기를 어머니께 맡기고, 남편과 나는 신도림부터 시작해서 대림동 신길동 주변 부동산을 돌아다녔다. 결혼할 때는 친정 근처인 신도림을 벗어나지 않는 게 목표였지만, 이제 올라버린 시세에 그런 옵션도 내게는 없었다. 최대한 갈 수 있는 멀리 까지 간다고 알아본 것이 대림동, 신길동이었으니, 지금은 신길 뉴타운 하면 10억 애기 하지만, 그때는 아직 서울에서는 저렴하게 집을 구할 수 있는 동네였다.


장기 안심제도 같은 경우는 집주인이 내야 할 복비(부동산 중개 수수료)도 SH가 내준 다니 집주인들이 더 좋아하고 전셋집을 쉽게 구할 줄 알았다. 그런데 왠 걸, 부동산 네다섯 군대에 가서 SH얘기를 하자마자 질색을 하며 ‘우린 그러건 안 해’ 라며 구걸하는 거지가 왔다는 표정으로 쫓아냈다. 어떤 곳에는 아침에도 SH 얘기하는 신혼부부가 와서 귀찮았는데, 오늘은 무슨 재수 없는 날이길래 또 이런 애들이 왔나 이런 표정이 역력했다. 부끄럽거나 창피 한 걸 둘째 치더라도, 참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정부는 굳이 예산을 들여서 하는 일인데, 현장에서는 통하지 않는 먹통 정책이었던 것이다. 사실, 지금이야 다주택자들이 자발적으로 민간임대사업자도 등록하는 상황이지만, 그때만 해도 정부와 뭔가 기록을 남겨가며 주택을 임대주는 일은 내가 집주인 입장이었어도 그리 달갑지 않았을 것 같다. 위와 같은 이유로 현재도 장기안심 주택 제도에 당첨이 되더라고 실제 그 제도를 이용해서 계약을 이뤄내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


그 날 몇 군데 부동산에서 당한 수모는 참 평생 잊히지 않을 것 같다. 부동산을 끼고 무언가 하는 것은 참 안 하고 싶은 일 중에 하나이구나. 특히 세입자 입장에서는 말이다. 정말 절대 을일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신길동에 있는 한 부동산에서 신축빌라를 하나 보여줬는데, 정말 골목골목을 누비고 안쪽으로 들어가서 있는 곳이었다.


내가 밤에 골목이 무서울 것 같다고 했더니, 부동산 사장님은 그 예산 들고 와서 이 정도 집 보여주면, 행운인 줄 알라며 비꼬며 말을 하셨다. 그렇게 거기서 나오고, 간신히 찾은 한 부동산은 대림역에 연결된 우성아파트를 보여주셨다. 정말 너무 마음에 들었다. 물론 미성만큼 오래되긴 했지만, 조금 더 넓기도 했고 전철역에 아예 연결되어 있으니 나의 아르바이트 출퇴근도 한결 편할 듯하였다. 다만,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는 환경이 될까 조금 걱정이 되긴 했지만, 보여주신 집 세입자 하고도 이사 날짜를 맞추고 부동산으로 와서 집주인을 기다렸다.


그렇게 그 늦은 오후 나는 다음 집 찾기, 우리 집은 어디에 시즌 2를 마무리하는 줄 알았는데, 집주인 할아버지가 오셔서, SH 얘기를 듣더니, 안 되겠다고 하셨다. 부동산 중개인 분은 복비도 안 내주고 보증금도 안전하니까 좋다고 설득해 주시려 하셨지만, 결국 실패하셨다. 그래도 부동산 아저씨의 따뜻한 호의를 받은 것이 그날 내가 얻은 것의 전부였다. 이내 우리에게 남은 한 가지 옵션은 원래 살고 있는 미성 주인 할머니께 부탁해보는 것이었다. 미성을 처음에 중계하신 중개인께서는 할머니가 깐깐하시다고 절대 안 될 것 같다고 하셨다.


우리는 아주 낮은 자세로 연락을 취했다 “어린 아기 엄마가 애기 데리고 이사하는 게 딱하네” 라며 SH를 끼고 하는 재계약에 도장을 찍어주셨다. 휴 ~ 이제 한 고비가 겨우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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