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9시 스케줄이었지만, 내가 일찍 일어나서 부스럭거리면 모처럼 늦잠을 즐기는 남편과 아이들이 깰 것 같아 6시 반 집을 나섰다.
이동 장소는 버스로 20분 정도 거리였고 7시에 여는 스타벅스서 책을 읽을 예정이었다.
작년에 다니던 회사를 갈 때 늘 타던 버스였기에 아무의 심 없이 버스정류장에 도착했건만,
무언가 이상했다.
3종류의 버스가 서는 정류장이었는데
중간에 있던 버스노선표를 제거한 흔적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이내 알게 되었다.
그것이 내가 타려던 버스였다는 것을.
그 자리에서 해야 했던 선택이 오늘 아침에 소소한 선물이 되었기에 글을 써본다.
나는 남은 2개의 버스 중 조금이라도
더 약속 장소에 가까이 가는 버스를 타고 내려서 20분쯤은
걸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정류장에 내렸다.
그런데 내린 버스 정류장에서
나의 원래 목적지에 더 정확히 가는 버스를 만난 것이 아닌가.
처음 장소에서 버스가 없어졌다고 불평을 했다면
어땠을까, 거기서 지하철역에 가야 된다고 짜증을 냈다면 하루가 어떻게 달라졌을까 생각하니 아찔하기도 했다.
걸어야 할 것이라 생각했던 시간이 삭제되었기에 기쁨도 있었지만 일단 한 발 내디뎌 보니 다음 길이 보였다는 것이 벅차올랐다.
인생도 그렇다.
솔직히 나는 두려움이 있다.
이사도 이직도 모든 선택 뒤에 나는 그다음 선택이 보이지 않거나 제한적일 경우를 경계하려고 애를 썼다.
철이 없는 고로,
바다의 물고기처럼 파닥거리며 살고 싶다.
나는 운이라는 단어를 내 언변과 기록에서 등장시키지 않는 편이다. 다만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이 생존이고, 따뜻한 물이 흐를지 차가운 물일지 비바람이 칠지 화창할지 어느 배가 쓰레기를 투척할지 거둬줄지는 내영역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해보려 한다.
이렇게 여름이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