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정하기 너무 어려운 글이다. 단순히 책장 정리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의미가 담긴 행동이고 타이밍이었다. 방 한 칸짜리 집, 두 칸짜리 집, 세 칸짜리 집 다양한 집들로 이사 다녔지만 어느 크기의 집이든 우리 집이 약 30% 이상이 크기는 책들의 몫이었다. 아마 다른 가정들이 옷들에게 한 방을 할애하는 정도의 애정을 우리는 책들에게 주었을 것이다.
우리는 책장들에게 가혹한 주인이었다. 책장은 종종 너무 많은 책들로 입을 벌렸으며, 꾸러기 둘째는 그 책장들을 원숭이처럼 타고 오르며 놀았으니 그 책장들의 수명이 그리 길지 않았던 것도 이해를 못할 바도 아니다. 몇 년 전 타워형 복도식 집에 살 때 가장 많은 책장을 보유했었다. 120cm 책장 6개, 180cm 책장 1개, 80cm 책장 2개, 회전 책장 1개였으니, 웬만한 아파트 작은 도서관만큼은 책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시기가 3-5세 와 6-7세로 나눠지는 읽는 책의 다름이 공존했던 시기이니 버릴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커가면서 또 그다음 이사에서 더 좁은 집을 선택해야 함에 있어서 우리는 책장을 정리해야 했고 책도 한 움큼 정리했어야 했다. 90% 넘게 새 책의 세트만 샀던 우리였지만 책을 화장실을 포함 어디나 들고 다녔던 첫째 덕에 팔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었다. 지인들에게 책을 주기도 했지만 사실 그 책을 정가를 주고 산 사람만큼 애정을 갖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몇 년 전 1차 책 정리를 할 때도 느꼈지만, 책 세트 하나하나를 떠나보낼 때마다 다 그 책들을 처음 만난 순간들이 떠올랐다. "아, 이 책은 그때 샀는데, 어떤 책이랑 고민하다 이걸 골랐지. 그때 연말 상여를 받아서 현금으로 질렀어. 이 책 처음 배송 왔을 때 딸내미가 3시간 동안 박스 옆에서 다 꺼내 읽었지." 등의 추억의 조각들 말이다. 모든 책들과 헤어짐을 그렇게 음미하지는 못했지만 그 책들에 대한 고마움들은 마치 오랫동안 함께했던 베이비시터에게 이별을 고하는 마음이었다. 실제로 그랬다. 책들은 적어도 첫째가 많은 시간 엄마를 부르지 않고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육아의 동역자였다.
사실, 이 시기에 책을 정리하는 일은 그리 좋은 의견은 아니었다. 이번 집에서는 책들이 거실에 있었고, 거실에는 에어컨이 없었다. 벌 받듯이 땀을 뒤집어쓰며 책장을 정리를 시작했다. 아직 1년이 남긴 했지만 1년 뒤 이사는 지금 보다 작은 공간일 것이고, 책장을 다 데려갈 수 없다는 것이 명백했기 때문이다. 1년 남은 이사를 핑계 대긴 했지만 이제 아이가 훌쩍 커버린 탓에 챕터북들로 분야를 옮겨 탄 이유가 컸다. 해리포터에 발을 들여놓은 아이는 이제 얇은 이야기 책들은 마치 생우유를 먹기 시작한 아이가 분유를 쳐다도 보지 않듯 눈길을 거뒀다.
이 녀석들이 우리와 2차 헤어짐을 준비하고 있는 녀석들이다. 사실 늘 책을 고르는 것을 성공했던 것은 아니다. 남편이 그 책을 별로 인 것 같다며 한 번 참아보라고 할 때 지른 녀석들은 역시나 실패로 돌아갔다. 아이가 그다지 흥미를 갖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런 책들은 내가 무언가 아이에게 지식이나 정보를 주입시키려고 고른 책들이 많았던 것 같다. 아무래도 독서는 공부와는 별개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보호해 줄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아이에게 가끔 "그건 어떻게 알았어?"라고 물어보면 " 책에서 봤어."라고 대답을 하고는 했는데, 참 그럴 때 할부로 산 책 값이 아깝지 않았던 것 같다. 이렇게 2차 책 정리를 하고 나면 우리 집은 어린이 도서관 같은 느낌이 사라질 것이다. 어쩌면 내가 계획했던 시기일지도 모르겠다. 키즈 카페 같은 인테리어에서 어린이 도서관 느낌으로 옮겼다가 이제 스터디 카페 같은 느낌으로 전환 말이다.
책 정리는 많은 것을 뜻한다. 단지 공간의 달라짐이 아닌, 그 책에 살을 데고 살았던 사람들의 달라짐까지 말이다. 딸내미 말로는 이 사진에 있는 책 중에 자신이 안 읽은 책들은 없다고 하니 종이로 태어나 누군가에게 읽힘을 당한 기쁨을 우리 집에서 충분히 누렸을 것이라 생각하며, 또 사랑해주는 주인을 만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