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나는 올해 내가 백신을 맞을 것이라는 생각 혹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다. 건강한 30대 사람으로서 차례가 오더라도 마지막일 것이고, 코로나라는 질병이 무섭지 않다기보다는 대부분 독감같이 지나가는 것을 보면서 누구나 거쳐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6월 어학원 근무 외국인 강사들의 집단감염이 발생하기 전 까진 그랬다. 그 뉴스 덕분인지, 어학원 근무 종사자들이
모두 우선 접종 대상자로 승격이 돼버렸고 비접종자는 근무가 어렵다는 말까지 나왔으니, 이제 우습게도 생존을 위해 백신을 맞는다는 말이 거의 맞는 말이 되었다.
딱히 백신을 거부해야겠다 맞아야겠다는 고찰을 해본 적도 없이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맞아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30여 명의 동료들 모두 별안간에 1차를 맞았고 대부분 큰 아픔 없이 지나갔다.
1차 예방접종 증명서를 앱으로 보면서 자격증을 딴 듯 뿌듯하게 느끼기도 했었다.
그런데 동료 중 한 분이 심장 쪽 이상이 생겼다며 큰 병원서 약을 타 왔단다. 그러고 나서 다른 분들도 2차 접종을 시작했는데 2차 접종하신 다음날 대부분 아파서 출근을 못하시는 게 아닌가.
이쯤 되니 코로나가 두려운 건지 2차 접종이 두려운 건지에
대한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나의 2차 접종이 다가왔고 그날은 지난 토요일이었다.
오전 11시 접종 이후, 이틀 동안 열이 심하지도 않고 근육통, 미미한 몸살 증상만 있어서 월요일 출근을 했다. 내가 쫌 건강한가 이런 자만도 부려본 날, 저녁 나는 뭔가 잘못된 것을 깨달았다.
저녁 8시 퇴근 후 얼굴에 치과 마취주사 맞은듯한 느낌이 시작되더니 팔다리까지 번져가고 있었다. 30분 만에 다리까지 도달하자 응급실로 차를 몰았다.
응급실에서는 생각도 못했지만 어쩌면 또 너무나 당연하게 코로나 검사를 하고 4시간 지나 결과를 받고 입장이 가능하단다. 검사를 받고 집에서 대기를 하다 새벽 1시에 다시 응급실에 가니 그 사이 코로나 확진자가 나와서
응급실이 폐쇄됐단다. 어이쿠.
다른 응급실을 갈까 고민하다 마취 증상이 오른쪽에 퍼진 후 왼쪽으로는 더 퍼지지 않고 있었기에 일단 아침까지 나아질지도 몰라라며 잠시 눈을 붙였으나, 아침에도 마취 느낌이 사라지지 않아서 1339에 전화를 했다. 어렵게 여러 번 만에 전화가 연결됐으나, 병원에 가보라는 말만 하실 뿐이었다.
이런 부작용은 어느 병원에 가야 하나, 신경과인가? 고민의 끝은 다시 타 병원 응급실이었다. 열이 나거나 피가 나는 것도 아닌데 너무 멀쩡하게 젊은 여자가 응급실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 좀 멋쩍은 느낌이었으나 답이 없었다.
다행히 어제 병원에서 코로나 음성을 받은 덕분에 바로 입장이 가능했다. 감사히 여러 검사들을 진행했으나 MRI까지 봐야 한다며 입원이 결정되었다. 링겔이나 하나 맞고 약이나 받아서 오후에 회사에 가겠다는 무모함은 나 혼자만의 것이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검사가 진행되기 전에도 백신 부작용은 아닐 거라며 스트레스 심하게 받으신 적 있는지 물으셨다.
회사원이 스트레스가 없을 리 만무하지만 늘 있었던 것이 갑자기 이 증상을 불러왔을까? 일단 의사 선생님도 사례가 많이 없어서 알아보시겠다고 하셨다.
입원이 결정되고도 병실을 기다리면서 응급실에 있었는데 듣고 싶지 않아도 들려오는 스토리를 듣다 보니 시간이 잘 갔다. 술을 너무 많이 드셔서 실려왔다가 의사 선생님한테 혼나고 퇴원하는 할아버지도 계셨고, 계속 우는 아가를 달래는 간호사 언니, 그리고 내 옆에 할아버지는 성실한 가장 느낌이셨는데 맹장염을 너무 오래 참아서 터지셨다고 바로 수술을 하신다고 했다. 새삼 너무 착하 게 산다고 꾹 참고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은 해봤다.
그렇게 나는 젊은 뇌경색 의심환자로 분류되어 MRI를 찍게 되었다. 의사 선생님도 교수님 아래 여러 명 있어서
때때마다 다른 선생님이셨는데 그때마다 나는 백신 접종과 상관성이 없는가를 물었지만 모두 아닐 거다 라고 하셨다.
음.
MRI는 폐쇄공포증이 있는 나에게 큰 도전이었다. 웬만하면 눈뜨지 말라는 디렉션을 지키고자 애쓰면 잠자는 것 같으려나 싶었는데, 아주 큰 오산이었다. 그때서야 왜 귀마개를 해줬는지 알게 되었다. 공포감들을 외면할 수 없으면 즐겨야 했다. 계속 바뀌는 리듬과 소리의 높낮이를 따라 작사를 해보았다. 작사는 거창하고 말 붙이기 놀이. 마지막이 되어가자 비싼 가격을 내고 기계들의 오케스트라를 들었다고 생각해보자 라는 마음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결과론적으로 뇌경색은 아니라고 하시고 백신 연관성은 아닐 것 같다고 하시고 스트레스받으신 게 분명히 많으실 거라고.
이 쯤되면 나도 "그런가?" 싶다.
백신 부작용으로 안면마비나 더 심각한 상황들을 우려했던 순간들이 무색하게 마취 증상은 풀려가고 있다. 내일쯤이면 증상 없이 퇴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스트레스가 심했거나 몸살이 심했으면 대학병원에 오지는 않았을 텐데, 병원비는 보험사에서 나오겠지만 결근에 따른 월급 차감은 나의 몫이다. 허허허.
이렇게 나의 예방접종 이야기는 마무리되는데, 앞으로 접종을 맞으셔야 하는 분들께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는 게 조금 마음이 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