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운명이 있어도 철저히 외면할 어른이 되어 버렸지만 어렸을 때는 내가 겪고 있는 모든 만남이 운명같이 느껴졌다. 우정이든 사랑이든 그때는 내 세계의 전부였고, 언젠가는 결국에는 모두 해피엔딩이 될 것이라 믿었다. 그때 그 모든 만남들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지 않은 것이 해피 엔딩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 당시에는 다시는 그만큼 사랑하고 그만큼 애절한 연인, 친구를 가질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오열했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늘 반에서 가장 작은 키로 학년보다 어려 보였기 때문에 친구들이 겪는 어페어들에 중심이 된 적은 별로 없었다. 그러다 16살이 되면서 갑자기 키가 쑥 자라 버린 탓에 갑자기 많은 관심을 받게 되기도 했었다. 그때 나는 같은 중학교 친구들이 대부분 선택하지 않는 신생고등학교를 가기로 했는데, 고등학교에 가서는 꼬맹이 이미지 말고 쏘 쿨한 언니가 되고 싶었다. 이제 키도 웬만큼 컸고 치마도 자를 만큼 잘랐고 한눈에 보기에는 나는 누구도 쉽게 말을 못 붙이는 이미지를 구축하긴 했다.
다만, 외모를 바꾼다고 나라는 인간의 본성이 변하는 것은 아녔기에 여전히 한 번 친구가 되면 나보다 그들을 아껴보려고 애를 쓰고는 했다. 친구든 연인이든 스르르 빠져들어 같이 있는 시간이 너무나 좋은 것일 거라고 생각했던 이론과 달리 실전은 수많은 노력이 필요했던 것 같다. 지금도 그렇지만 모든 것에 수많은 계산이 필요했다. 어쩌면 내가 그때 그 친구들과 지금까지 연락을 할 수 없었던 건 그 관계를 위한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일 수도 있을까?
노력으로 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나는 참 오래도록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노력으로 확실히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시험 점수 정도뿐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연인도 친구도 서로 같은 시기에 같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것 같다. 친구도 연인도 대부분의 멀어짐은 그놈의 타이밍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탓해 보고 싶기도 하다. 그래야 노력했던 내가 덜 비참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지금도 노력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때마다 조용히 마음에 방을 하나 만들고 문을 연다.
“들어가 있어.”
다시 무언가를 기대했다가 다시 누군가에 대한 마음을 거둬들이는 일은 너무 큰 에너지를 쓰는 일이 되어버렸다. 10년 전 산 컴퓨터에 어도비 프로그램을 돌리는 일 같다고 해야 될까?
누군가의 마음을 얻으려고 혹은 그 관계를 지키려고 노력했던 나는 이제 없다. 다만, 상처 받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나만 남았다. 이제는 우정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 약간 스마트함이 부족해 보이는 나이까지 된 것 같다.
도대체 나는 언제 쏘 쿨 해 져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