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스트레스 많이 받지 않으셨나요?”
다섯 번째 찾은 병원에서 까지 똑같은 이야기를 듣자 오보라 씨는 더 이상 그녀 앞에 의사와 이야기할 의욕을 잃었다.
“직장인이 다 스트레스가 있죠. 올해 이직을 했고, 일정 강도의 스트레스는 늘 있습니다만…… "
의사는 오보라 씨의 대답이 기대에 차지 않았는지 무척 곤란해하는 표정이었다.
“엑스레이, CT, 피검사까지 특이점이 없어서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큰 병원에 가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오보라 씨는 누군가 마음의 촛불을 누군가 후~ 불어버리는 느낌이었다. 갑자기 찾아오는 오른쪽 몸이 마비되었다가 서서히 풀리는 증상에 대해 병명도 알 수 없으니, 치료법도 알리 만무했다. 그리고 큰 병원 응급실이라면 이미 수차례 다녀온 터였다. 평생 아주 건강 체질이었다고 자부할 수는 없지만 딱히 병명을 지녀본 적 없던 오보라 씨는 이 정체 모를 증상과 앞으로 평생을 함께 살아가야 될지도 모른다는 마음의 준비를 더하며 다섯 번째 병원의 문을 나섰다.
병원 문 밖을 나서자 여름 특유의 뜨겁게 젖어 있는 공기가 오보라 씨를 덮쳐왔다. 급하게 병원에 가야겠다 는 요청에 괜찮으시냐고 빨리 병원에 가고 나중에 연락 달라고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주신 팀장님께 뭐라고 연락을 드려야 할지 고민하던 오보라 씨는 폰을 꺼내다가 떨어뜨리고 말았다.
“하아~”
깊은 한숨을 내 쉰 것은 오보라 씨의 폰이 무거워서 떨어뜨렸거나 그녀가 가방에서 부주의하게 폰을 꺼냈다는 뜻이 아닌 것을 반증했다. 오보라 씨는 그 증상이 나타난 이후 오른손으로 무엇을 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오른손으로 음료수 캔 하나만 들어 올려도 팔 전체가 저리면서, 마취되는 느낌이 퍼져 가는 현상은 누구라도 겪어본다면 환영하지 않을 것이라 오보라 씨는 확신했다. 이럴 때마다 자신이 양손잡이가 아닌 것이 답답했지만, 이보다 더 오보라 씨를 더 답답하게 한 것은 팀장님께 뭐라고 설명드려야 할지 막막했기 때문이었다.
지훈 님,
라고 쓴 오보라 씨는 더 이상 이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점점 더 저려오는 팔 때문이기도 했지만, 차라리 아프더라도 원인과 결과가 뚜렷하면 적어도 다른 사람들에게 적어도 이해는 받을 수 있을 텐데 라는 생각은 저려오는 팔보다 더 오보라 씨를 서럽게 했다.
차마 거짓말을 할 수 없던 오보라 씨는 증상을 문자로 설명할 자신도 의사의 말을 문자에 구겨 넣어 정리할 자신도 없어 그 문자를 이렇게 마무리했다.
지훈 님, 병원 잘 다녀왔습니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핸드폰을 들고 있는 것은 왼손이었지만, 문자 하나를 다 쓰기 위해 오른손을 몇 번 움직이자 오른팔의 저림이 다리로 번져 가는 것이 느껴졌다. 얼른 폰을 가방에 집어넣은 오보라 씨가 할 수 있는 건 저림 현상이 심장으로 까지 번져가지 않길 간절히 바라는 것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