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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오,보라!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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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이시 Oct 01. 2022

보라다움의 정의

오보라 씨는 부모님이 의도하셨던 오보라의 뜻이 너무도 무거워 싫었지만,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자신이 더 싫었다. 정확히 말하면, 오보라 씨는 더 노력하면 그 이름의 뜻도 자신도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을 것만 같다고 믿었는데, 그렇게 해내지 못하는 자신에 답답해했다.


‘내가 둘째로 태어났었으면 … ‘

‘내 이름이 차라리 빨강이었으면 …’

‘기숙사가 있는 학교에 가서 가족과 따로 살아봤으면 … ‘


오보라 씨에게 주어진 운명의 무게에는 너무 많은 것들이 얹혀 있었다. 오보라 씨는 무엇이든 노력해서 얻고는 했는데, 동생은 그냥 동생이라서 무언가를 얻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도 많았다. 오보라 씨는 고1에 올라갈 때 단식투쟁을 한 끝에 핸드폰을 가질 수 있었는데, 언니만 핸드폰을 사주는 게 어딨냐고 난리를 치는 통에 오나라 씨는 중2가 되던 시점에 핸드폰을 가질 수 있었다. 이런 이야기는 매일의 일상이었고 오보라 씨는 자신은 노력에 숟가락만 얹는 동생을 아무리 노력해도 예뻐하기는 어려웠다.


첫째라는 것도, 오보라는 이름도, 오나라 씨가 오보라 씨의 동생이 된 것도 직접 선택한 것이 아녔기에, 오보라 씨는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하나라도 행사할 수 있길 기다렸고, 그 선택권을 가족을 빨리 떠날 수 있는 가장 합법적 절차에 썼다.


바로, 결혼이었다.


오보라 씨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어른들이 멀쩡한 직장이라고 부르는 대기업에 취업을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개팅을 했다. 그 남자도 소위 어른들 보시기에 괜찮을 것 같은 남자였다. 이름 대면 누구든 아는 기업에 재직 중이었고, 그의 부모님은 연금을 받아 생활하는 분들이셨기에 오보라 씨는 생각했다.


나쁘지 않다고.


오보라 씨는 나쁘지 않은 선택을 하는 자신이 때로는 위선자처럼 느껴졌지만, 미칠듯한 사랑에 휩싸여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의 친구들을 보면 쯧쯧 하며 혀를 차고는 했다. 사랑 같은 사치품 소지에 자신의 인생을 쓰는 건 너무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행태라고 생각하는 오보라 씨였다.


늘 그때까지 했던 것처럼 결혼에 있어서도 오보라 씨는 보라 했다.

가족에 대해서, 새로운 가족에 대해서……



오보라 씨는 대학에 붙고 나서는 2살 어린 동생의 무료 과외 선생님을 자처했으며, 대학생 때 알바로 벌은 돈으로 엄마, 아빠 제주도 여행을 보내 드렸고, 취업에 성공하고 나서는 동생에게 매달 용돈을 주고는 했다. 결혼 후엔, 축구 동호회에 참여하기 때문에 주말엔 항상 나가 있겠다는 안건을 승인하기도 했다. 물론 그들이 가족으로서 오보라 씨에게 소중했던 것도 있지만, 그들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은 오보라 씨 자신을 위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오보라 씨는 좋은 사람이고 싶었다. 노력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항상 누군가를 자신보다 먼저 생각한다는 것에 대해서 ……


다만 오보라 씨가 착각한 것이 있었다. 오보라 씨는 오보라 할 것을 기대하는 가족에게서 한 발 멀어지면 자신이 오보라 답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결혼 후 오보라 씨는 깨달았다.


이제 자신의 삶에서 보라 해야 될 존재가 한 명 더 늘었다는 것을. 정확히 말하면, 이후 아이가 태어나면서 두 명이 늘었다는 것을.


그래서 오보라 씨 인생은 오보라 씨의 소심한 노력들의 합산에도 불구하고, 늘 제자리였다. 나쁘지 않은 선택들의 연속. 다들 오보라 씨가 사회 구성원과 가족 구성원으로서 인간 구실을 하며 잘 살고 있다고 말해줬지만, 오보라 씨가 느끼는 바는 잘살고 있다가 아닌, 나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차라리 나쁜 삶이었다면, 혹은 지금의 삶을 버텨낼 재간이 없다는 게 명확했다면, 다른 삶을 꿈꿔볼 수도 있었겠지만, 오보라 씨의 삶은 문자 그대로 나쁘지 않았다.


오보라 씨 부모님은 오보라 씨가 태어날 때부터 순했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고는 하셨는데 동생 나라씨는 엄청나게 우는 아이였다는 이야기를 덧붙이셨다. 오보라 씨는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차라리 울어서 원하는 것을 얻어냈던 동생이 부럽고, 울지도 못했던 어린 자신이 불쌍하게 느껴지고는 했다.


‘태어났던 순간에는 울었겠지?’


오보라 씨는 말을 못 했지만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전할 수 있었던 그때가 그립기도 했다. 마리가 태어난 후 오보라 씨는 친정과 가까이 살게 되는 선택을 하게 되었는데, 사람들은 이게 최고의 선택이라고 부럽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오보라 씨 더 오보라 해야만 했다.


마리를 돌봐주신다는 사실이 엄청난 일이라는 것이 자명했기에, 오보라 씨는 더 많은 마음의 소리를 삼켜야만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동생 나라씨가 결혼은 했지만 딩크족이고 강아지만 키운 다점에서 엄마를 놓고 다투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  


나라씨는 종종 오보라 씨에게 문자를 보냈다.


“언니, 나 남편이랑 금토일 2박 3일 홍콩 여행 가는데, 우리 사랑이 좀 데리고 있어 줄 수 있어?”


부탁할 때만 꼭 언니로 시작하는 문자를 보내는 나라씨에게 화도 났지만 오보라 씨는 대체로 좋은 사람이려고 노력했다.


‘아 주말에 조용히 쉬고 싶은데 …’


오보라 씨는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무시하는데 능숙했다.


“그래. 사랑이 먹을 것 충분히 싸오고.”

“아, 맞다. 언니. 그 주에 사랑이 정기 검진 주였는데 내가 깜박 잊었지 뭐야. 언니 혹시 토요일 날, 사랑이 병원에 데려가 줄 수 있어?”


정말 욕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오보라 씨는 이왕 좋은 사람 하기로 한 건 마저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래. 병원 주소랑 시간 남겨놓아 줘.”


이렇게 오보라 씨의 주말은 오보라 씨의 것이 아닐 때가 더 많았다. 엄마 또한 한 몫했다.


“보라야, 엄마 토요일에 1박 2일로 동창회 가는데, 아빠가 일요일 아침에 골프 가시 거든. 일요일 아침에 일찍 가서 아빠 아침 좀 챙겨드려라.”


오보라 씨는 거절하는 법 따위를 어디서도 배운 적이 없었다.


“네 ~”


오보라 씨의 카카오톡을 대화 전체를 엑셀 함수로 돌려보면 가장 많은 글자는 분명

‘네’가 틀림없었을 것이다. 그 대답은 회사에서도 유용했기 때문이다.


오보라 씨는 누군가에게 좋은 동생, 좋은 딸, 좋은 아내, 그리고 좋은 직원이길 노력하고 있으면서 자신은 나쁘지 않은 것을 누리기에도 합당한 지 종종 의심하고는 했다.


치킨을 시키면 목뼈부터 찾아 먹는 오보라 씨는 좋은 것을 남에게 주는 것에 유능했다.


그런 오보라 씨가 아이를 갖게 되었을 때, 오보라 씨는 아이에게는 최고의 것만 주고 싶다는 마음이 무엇인지 이해하게 되었다. 사실 그러한 마음을 느끼기 전에도 심지어 오보라 씨는 결혼도 하기 전에 미래의 자녀에게 줄 최고의 이름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 자신은 이름의 무게 때문에 힘들었던 만큼 자녀에게는 보라처럼 무거운 이름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리하여 오보라 씨가 찾아낸 이름은 순우리말로 마리라는 이름이었다. 머리라는 단어에서 파생되어 으뜸가는 인물이라는 뜻이 오보라 씨의 마음에 꼭 들었다.


오보라 씨는 마리라는 이름을 자기 자녀에게 주기 위해 성이 마 씨인 남자와 결혼해야 되는 건지 고민하기도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마’라는 성을 가진 사람이 흔치는 않았기에 오보라 씨는 제법 넓은 남편 후보들을 확보할 수 있었다.


김마리

이마리

오마리

임마리

지마리

성마리

송마리

윤마리

유마리

박마리


오보라 씨의 고민은 꽤 간단히 귀결되었다. 김마리만 아니면 된다는 것이었다. 김마리 일 경우, 학창 시절 별명은 김말이로 확정인 듯했다. 그래서 오보라 씨는 소개팅을 자리가 들어오면 가장 먼저 성을 묻고는 했고, 김 씨면 정말 만나지 않았다.


다행히 오보라 씨는 마리에게 "유"라는 성을 선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오보라 씨의 딸은 으뜸가는 인물이자, 리더가 되는 이라는 이름의 뜻을 가진 유마리가 되었다.


그것은 오보라 씨가 딸이 자신을 닮지 않길, 마리는 보라다움을 모르고 자라길 바라는 오보라 씨의 염원이자 한이었다.  


그렇게 마리는 마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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