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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오,보라! 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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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이시 Oct 01. 2022

1차 백신 접종

오보라 씨가 코로나 백신을 맞던 해, 오보라 씨는 한 대기업의 과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뉴스에서는 재택근무가 대세인 것처럼 보도되었지만, 오보라 씨의 회사는 대기업답게 모두에게 백신 휴가를 줄 테니 백신을 접종 후 출근을 하라고 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백신 휴가를 접종 당일과 그다음 날, 이틀이나 주는 것에 감사해야 했지만, 굳이 백신을 맞아야겠다고 결심한 적 없었던 오보라 씨도 꼭 백신을 맞아야 됨을 의미했다.


언론에서는 모두가 백신을 기다리는 듯 말했지만, 오보라 씨는 굳이 백신을 맞아야겠다는 간절함이 있지는 않았다. 나이 드신 부모님은 빨리 맞으셨으면 했지만, 아직 비교적 젊은 오보라 씨에게 코로나는 위협보다는 그냥 삶의 불편함으로 인식되고 있을 뿐이었다.


 “과장님, 백신 언제 예약하셨어요?”


옆자리에 호진 대리가 물었다.


“어, 난 아직 예약 안 했어.”


“과장님, 지금 하나 병원에 잔여 백신 있다고 나오는데 빨리 예약하세요.”


호진 대리는 마치 자기 일처럼 호들갑이었다. 오보라 씨는 호진 대리가 백신을 안 맞은 오보라 씨를 걱정하는 건지, 오보라 씨가 코로나에 걸리면 옆자리인 자신도 감염될 까 봐 걱정하는 건지 헷갈렸지만, 정보에 빠른 호진 대리에게 살짝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어, 그럴까?”


“아, 과장님 저 지난주에 목금 백신 휴가 쓰고 이번 주 월요일 연차 써서 놀러 갔다 왔잖아요. 하루만 좀 뻐근하고 이틀 째부터는 괜찮더라고요. 하나 병원에 목요일 자리 있네요. 과장님도 빨리 맞으셔야 저도 덜 걱정….”


호진 대리는 아차 싶은지 말을 멈췄다. 주변에 걱정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가득했던 오보라 씨는 호진 대리가 말한 병원에 바로 예약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아, 알았어. 알았어. 이번 주 목요일? 지금 예약할게.”


마음의 준비가 덜 된 것 같았지만, 오보라 씨는 이렇게 물 흘러가듯 백신을 맞게 되는 것을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았다.


‘어차피 맞아야 했으니.’


머리로는 납득이 되면서도 마음은 서걱거리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1차 백신 날은 다가왔다. 백신 부작용에 대한 기사가 이따금씩 보도되어서 오보라 씨는 때때로 불안해졌지만, 이내 부작용이 일어날 아주 적은 가능성을 가지고 괜히 자신이 오버하고 예민해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다다르고는 했다.


병원은 예약했지만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기다리는 사람들 모두 표정이 미묘했다. 아니 적어도 오보라 씨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모두들 이제 백신을 맞으면 코로나로부터 안전을 얻는 대신에 백신으로부터 안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는 것일까?


초등학교 졸업 이후에는 주사를 맞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백신을 맞는 상황은 마치 오보라 씨가 초등학생이 된 것처럼 느끼게 했다.


‘이렇게 단체로 말 잘 듣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을 거야.’


문진표를 쓰고 줄을 서 있는 동안 오보라 씨는 앞에서 주사를 맞는 분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3번 방에 계신 의사 분이 안 아프게 놓으시는 것 같아. 1번 방 의사 분은 너무 무뚝뚝하시네. 내 차례 때 3번 방 자리 났으면 좋겠다.’


오보라 씨의 바람대로 3번 방이 비었고, 다음은 오보라 씨가 불릴 차례였다. 그때 지팡이를 의지해서 걸으시는 할머니 한 분이 뒤에서 걸어오셨다.


“아이고 아가씨, 내가 기다리는데 다리가 아파서 먼저 좀 맞아도 되겠소?”


할머니뿐만 아니라 거기 있는 모든 분들이 오보라 씨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네, 그럼요. 먼저 가셔요.”


그렇게 할머니는 3번 방으로 들어갔고, 오보라 씨는 1번 방으로 배정받았다.

의사 선생님은 멀리서 보았던 것처럼 쌀쌀맞았다.


“ 열나실 수 있고, 무리한 운동 하지 마세요. "


주사 바늘은 순식간에 주사기 안에 용액을 오보라 씨 몸으로 뱉어내고 퇴장했다.


이번 백신 접종이 조금 특별하다면 접종 후 15분간 그 장소에 머물라고 했다. 15분 동안 부작용이 없으면 가도 된다고 했다. 그 장소에는 고상한 클래식이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혹시 급작스러운 부작용이 나타나 쓰러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느라 그 15분은 마치 1시간 같이 느껴졌다. 갑자기 고통이 찾아올 것 같은 두려움에 떨던 15분이 지나고, 오보라 씨는 귀가를 할 수 있었다. 주사 맞은 팔이 뻐근하긴 했지만 굳이 유난 떨고 싶지 않았다.


‘모두 이랬겠지? 굳이 나만 더 아픈 건 아니겠지? 좀 쉬면 괜찮겠지.’


한 숨 자고 일어난 오보라 씨는 약간 몸이 뜨거운 것 같아 열을 쟀다.


37.8 도


열이 오르자 살짝 겁이 났지만, 검색해보니 다들 첫날만 그렇다는 포스팅이 많았다. 오보라 씨가 미열이 나고 팔이 뻐근하다고 하자 남편은 모든 집안일을 다해주었다. 평소에 안 하던 화장실 청소까지 해주는 걸 보면서, 살짝 아픈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오보라 씨는 해열제 한 알을 삼키고 다시 잠에 빠져 들었다.


다음 날, 팔이 뻐근한 것 빼고 오보라 씨의 컨디션은 정상이었다. 호진 대리는 놀러 갔다고 했지만 오보라 씨는 그 휴가를 이용해 지금까지 미뤄 놓았던 일을 하기로 했다.


바로 이직 준비를 위해 이력서를 정비하는 것이었다.


오보라 씨의 삶을 일시 정지 버튼으로 눌러서 프레임화 한다면, 그 샷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대기업 과장이고, 남편도 남편으로써 아빠로서 백점은 아니어도 낙제점 까진 아녔으며, 7살 된 딸은 제법 똘똘한 것 같았다. 오보라 씨는 오보라 씨의 보라 다움을 잘 활용할 줄 아는 동생과 엄마가 있었지만, 엄마가 아이를 봐주셔서 아직 현역에서 일할 수 있는 것만으로 오보라 씨의 삶은 친구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엄마에게 드리는 돈과 아파트 대출금, 아이 학원비까지 지출하고 나면 저축할 수 있는 돈은 0원이었지만 그 또한 또래 친구들에게는 요지는 아니어도 서울에 아파트 있는 사람의 배부른 목소리일 뿐이었다.


즉, 오보라 씨의 삶은 한마디로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오보라 씨의 고민은 깊어갔다.


‘이렇게 사는 게 맞을까? 주어진 일만 하다 보니 점점 기업의 부속품이 돼가는 것 같아. 내가 지금도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을까? 40살 넘으면 경력직 이어도 이직 또한 쉽지 않을 텐데, 언제까지 현역에서 일할 수 있을까? 노후 자금은 어떻게 모아야 하지? 마리 곧 수학학원도 보내줘야 할 텐데…'


노력하면 안정된 삶을 가질 수 있다는 어른들의 말을 듣고 지금까지 노력해 왔건만, 그놈의 안정이라는 녀석은 잡으려고 하면 또 어디론가 도망쳐 버리는 것 같았다. 늘 그놈의 그림자만 쫓아다니는 것 같아 지쳐버린 오보라 씨였다. 노력하면 된다던 어른들을 한 명씩 붙잡고 ‘당신은 그놈을 본적 있나요?’라고 묻고 싶었다. 좋은 사람이 되면 하늘에서도 도움을 줄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오보라 씨는 아직까지 그 미련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몇십 년을 좋은 사람으로 살아왔는데, 좋은 사람이라고 인정받는 목전에 서 있는 것 같으니 계속 좋은 사람이 길을 노력해야 할 것 같은 오보라 씨였다.


‘이직해서 돈을 조금 더 벌면 안정감이 생기지 않을까?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학군지로 이사 가야 되는 건 아닐까?’


주위 사람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면 그만하면 네 인생은 나쁘지 않다고 더 힘든 사람도 많다고 훈계하듯 만족하라고 했다. 그렇지만 오보라 씨는 그때마다 과연 이들이 진심으로 이런 얘기를 하는 건지 오보라 씨가 더 잘 되는 것이 싫어서 발목을 잡고자 하는 건지 가늠하기 힘들어 마음만 더 복잡해졌다.


그 고민의 정답이 정리된 건 아니지만, 이력서 정비를 마친 오보라 씨는 헤드헌터에게 이력서를 보내고 외국계 기업 쪽을 알아봐달라고 했다. 그래도 외국계 기업에 다니는 친구들은 적어도 대기업에 다니는 자신보다 이런 고민을 “덜” 하는 것 같이 보였다.


“외국계 기업에 가면 영어 이름 하나 만들어야 하나?”


앞서가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는 오보라 씨였다. 그러다 지난주 퇴사한 옆 팀 대리가 생각났다.


“어디 스타트업으로 간다고 했던 것 같은데.”


오보라 씨는 내친김에


대기업 스타트업 이직


이라고 구글 창에 검색을 해봤다. 여러 개의 잡 서칭 사이트 광고가 뜨고 그 바로 아래 뉴스 기사가 하나 보였다.


[스타트 업의 경쟁적 스카우트, 대기업은 인력 유출 우려]


대기업 사람들이 스타트업으로 많이 이직해서 대기업은 지금껏 잘 키워온 인재들을 잃게 된다는 다소 편파적인 기사였다.


“아니, 스타트업에서 돈을 더 주니까 가는 거겠지. 남게 하려면 돈을 더 주던가.”


오보라 씨는 수능점수에 맞는 대학과 전공을 선택한 거였고, 취업 후 부서 배정도 제일 무난해 보이는 경영기획부서에 지원했었기에 딱히 뭔가 재능을 찾아 일한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못할 정도의 일은 아녔기에 지금까지 해왔던 것뿐이었다.


어릴 때 오보라 씨 별명은 빵순이였는데, 유독 오보라 씨가 빵을 좋아한 것도 있고 종종 꿈이 빵집 사장님이라고 한 것도 있기 때문이었다.


한 입 베어 물 때 입안 가득히 포근해지는 슈크림빵

기분이 우울할 때 한 입 베어 물면 바스락 소리가 퍼져가는 페스츄리

버섯같이 생겨서 먹으면 배 안이 든든해지는 머핀

겉은 단단하지만 안은 소프트한 베이글

저녁에 먹어도 맛있는 모닝빵

꾸덕꾸덕해서 우유랑도 아메리카노랑도 어울리는 브라우니


오보라 씨는 모든 빵이 좋았다. 길가다 빵집을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나 오보라 씨의 부모님은 오보라 씨가 베이커가 되는 것은 무척 반대하셨다. 부모님이 오보라 씨의 행복을 이해 주지 않는 것이 무척이나 슬펐지만, 그렇다고 작정하고 부모님을 거슬려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 자신도 없는 오보라 씨였다.


그래서 오보라 씨는 지금의 오보라 씨였던 것이다. 하고 싶은 것을 빼고 직업이라는 것을 바라보니 돈을 더 주는 것만이 더 가치 있게 느껴졌다.


“스타트업이라……”


오보라 씨의 마우스는 스타트 업 잡 서칭 사이트를 향하고 있었다.


클릭

클릭

클릭

클릭

클릭


몇 개의 이름을 들어본 회사의 공고를 살펴보고 오보라 씨의 경력을 살릴 수 있는 리드 급 포지션을 뽑는 공고 몇 개에 찜하기 버튼을 눌렀다. 너무 오랜만에 잡 서칭 사이트를 보는 것이라 어색하기도 했지만 화가 나기도 했다.


급여: 협의 가능


거의 모든 회사에서 급여를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원하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경력직이기 때문에 직전 연봉을 고려하여 산정해 주리라 생각했지만, 대략적인 가늠이라도 해볼 수 있다면 선택이 더 쉬워졌을 터였다. 그 고민의 끝에 정말 돈을 많이 준다고 소문이 나있는 스타트업 하나에만 지원하기로 했다.


제출 버튼을 누르기 전 그 짧은 찰나 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그래도 네임밸류 있는 대기업인데, 버리고 가기 좀 그렇지 않아?’

‘언제까지 대기업의 부속품처럼 살 건데?”

‘스타트업에서 아무리 대기업 출신을 선호해도 워킹맘을 뽑겠어?’

‘그래도 연봉을 더 받을 수 있다면.’

‘스타트업은 복지가 약한 거 아냐?'

‘40 넘으면 이직도 못 할걸.’


마음속에 천사와 악마가 싸우는 것 같았다. 중요한 건 어느 쪽이 천사인지 오보라 씨도 분간할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오보라 씨의 휴대폰 알림이 울렸다. 이제 다미를 찾으러 갈 시간이었다. 곧 도착할 시간이었다. 오보라 씨는 제출 버튼을 클릭했다.


“되면, 그때마저 고민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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