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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이시 Jul 20. 2024

백신 부작용 마저도 내 탓인것 같았다

물론 정신과에 방문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아무리 요즘 정신과 방문이 흔해졌다고 하지만 내가 가볼 일이 있을 것이라고 받아들이기까지 쉽지 않았으며, 실제 몇 번의 발작이 더 있은 후에야 예약을 잡게 되었다. 정신과 라면 어떤 의사를 만나는지가 중요할 것 같았는데, 인터넷엔 후기가 난무하여 도무지 고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회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가기로 했다. 


응급실 의사의 조언에 따라 정신과를 방문한 것이긴 하지만, 나는 응급실 해프닝 뒤로도 몇 번의 호흡곤란 사태를 겪었기 때문에 그 의사에 말에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 이직으로 인해, 새로운 회사 적응과 업무에 대한 우려와 심리적 위축이 심하게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새로운 업무에는 전화를 받거나 걸어야 하는 업무가 많았는데, 유독 1인 폰부스에만 들어가면 우측 마비가 심해지며 호흡곤란으로 이어졌다. 

나는 MBTI로 대문자 TJ인 사람으로, 솔직히 아주 긍정적인 편은 아니다. 인사이드 아웃 2편에 등장한 '불안'이가 마음의 계기판을 잡고 있다고 해야 할까? 그랬기 때문에 공황장애와 친한 우울증에 대해서도 자유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몸이 아파서 인지, 마음 아파서 인지 나는 일상에서 에너지가 심하게 다운되어 있었고, 정신과에 방문하여 한 첫 테스트에서 거의 낙제점을 받게 되었다.


정신과는 카페같이 밝고 예쁜 인테리어와 달리 공장 같은 곳이었다. 의사는 15분마다 예약된 환자를 만나야 했기에 무슨 애기를 진지하게 해보려고 하면 다음 환자분 때문에 여기서 종료하겠다는 말을 했다. 무엇이 문제이냐고 묻는 의사에게 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최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려고 애를 썼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갑자기 우측 저림이 발생하기 때문에 항상 긴장해 있는 애기, 회사 업무가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이야기 그리고 늘 마음에 간직하고 있던 나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애기. 의사는 백신부작용에 대해서는 딱히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얼마나 치료가 필요한 사람인지에는 확신을 갖게 되신 것 같았다. 


정신과는 약국에서 약을 받지 않고, 병원에서 직접 약을 준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왜일까 너무 궁금했지만, 그 고요한 분위기 속에 약을 받을 때쯤엔 난 늘 울고 있었기에 물어보지 못했다. 그때 어떤 약을 처방해 주신 것인지 다 알지는 못하지만 간헐적으로 마비가 발생하는 우측 마비를 위한 약은 아닌 듯했다. 과연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걷어내면 나는 이 운명의 장난같은 증상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까, 기대를 안 했다면 거짓말이다. 


의사를 또 만나러 갔을 때는 어린 시절 가족에게 받았던 서러움까지 거슬러 올라가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의사는 이런 말을 했다. 


"그런데, 지금 그 많은 일들에 대해 자책하고 계신 것은 알고 계신가요? 거의 자학 수준입니다." 


나는 백신 부작용 나타나는 우측 저림에서 시작하는 발작의 원인을 찾고자 정신과에 간 것이었는데, 이건 혹은 떼려다가 더 붙인 꼴이 되었다. 어쩌면 의사 말이 맞았다. 나는 백신 부작용이 발생한 내 인생의 페이지까지도 '나만 참으면'이라는 말로 포장해주고 있었다. 몇 년이 지난 지금에야 나는 많이 억울해하고 있지만, 그때는 부작용이 발생한 것 마저도 내 탓인 것만 같았다. 의사는 하얀색 약의 용량을 늘리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나는 약을 열심히 먹었지만 어떤 약의 효과가 있는지는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우측 저림은 여전히 기세 등등 했고, 약 몇 개 먹는다고 진지하고 우울한 성향이 외향적이고 긍정적으로 변할리는 만무했다. 나는 병원을 그만 가기로 했다. 마지막 상담에서 상담시간은 너무 짧아서 다 이야기할 수가 없으니 자신이 쓴 책을 사서 읽어보라고 은근히 책 팔이를 하셨던 것도 정이 뚝 떨어지는데 한 원인이 되었다. 이건 핑계고, 차도가 없었기 때문에 그만 가기로 했다. 


이제 정신과적인 문제도 아니라면, 나는 대체 어디로 가야 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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