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고작 정부에서 권장하는 백신을 하나 맞았다는 이유로 내 삶이 이토록 변했다는 것이. 부작용이라는 것이 일회적이었다거나 조금의 불편함 정도였다면 이런 주제로 글까지 쓰게 되지 않았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나에게 발생한 부작용은 아마 평생 나를 따라다니는 녀석인 것 같다.
백신을 맞고 3일 뒤, 뇌졸중 의심 증상인 편측 저림 및 감각 없음으로 입원했던 나는 결국 원인을 알 수 없다며 아스피린 몇 알과 함께 병원에서 방출되었다. 뭐, 몸 오른쪽에 치과 마취 주사를 백 번쯤 맞은 것 같은 느낌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옅어져 갔기에 방심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일상으로 돌아온 지 며칠 되지 않아 그 증상은 나를 또 덮쳐 오기 시작했다. 처음 발생했을 때처럼 턱에서 마비 증상이 시작되어 오른쪽 팔, 다리로 증상이 타고 내려오기 시작했다. 두 번째 발생했을 때까지만 해도 첫 번째 발생한 증상에 대한 잔재 같은 거라고 생각했지 애가 나와 평생 함께하려고 작정한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러나 며칠 전 대학 병원에서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고 한 마당에, 난 다른 어떤 병원에 가야겠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아파도 혼자 꾹 참았다. 이게 신경에 발생한 증상이라 아파도 누구도 내가 아픈 줄 모른다. 내가 말하기 전까진. 그래서 말인데, 내가 갖고 있는 병은 참 외로운 병이다. 어디가 부러져서 깁스를 해야 하거나 어디 피가 나거나 한다면 환자 대우라도 받을 수 있을 텐데, 내가 아픈 건 티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아플 때마다 아프다고 말하기 어려웠지만, 그것을 뛰어넘게 되는 계기가 생겼다. 일상생활에서 증상은 나를 희롱하듯 오고 또 가고는 했다. 일을 하고 몸을 혹사시킨 저녁이 오면 증상이 심해져 어느 병원이라도 갈까 고민하다 잠들었지만 아침에 오면 조금 나아진 것 같아 일상을 살아냈다. 그날이 오기 전까진. 그날은 오랜만에 창고 정리를 하고 싶었다. 워낙 정리에 진심이었던 나였기에 책이 20권쯤 든 박스를 옮기는 일을 내게 일도 아니었다. 가끔 우측 저림이 나타나고 있었지만, 내 삶에 뭐가 바뀌었는지 까지는 모르고 있었던 때였다.
우측 어깨에 책 박스를 턱 얹은 순간! 치과 마취를 초고속으로 주입한 것 같이 마비증상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어깨에서 다리로. 다리에서 이번에는 정말 심장으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숨이 안 쉬어진다는 게 이런 거구나 알 게 된 건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숨이라는 가냘픈 호흡이 끊기면 사람의 영혼은 육체를 버려두고 떠나는구나. 정신을 차리고 119를 불렀다. 모든 게 너무 혼란스러웠다. 도대체 나는 평소 하던 대로 책 박스를 내 어깨에 얹은 것뿐인데 왜 이지경이 돼야 하지? 119에 실려가면서 구조대원분들이 의식을 잃지 않도록 계속 말을 걸어주셨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나는 우측 저림에 짓눌려 있고 호흡이 비정상 적이었지만, 외상이 있는 환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서류부터 작성하라는 명을 받았다. 그때 난생처음으로 타인에게 소리를 질렀던 것 같다.
"저 곧 죽을 것 같다고요!"
정말 그 순간엔 그랬다. 응급실은 응급이라는 말과 어울리지 않지만 기다림의 공간이다. 의사 분에게 백신 맞고 처음 발생한 증상이라고 그 와중에도 열과 성을 다해 설명했건만, 의사는 그 안건에 대해서라면 나는 노코멘트하겠다는 태도로 나를 대했다. 결국 기본 검사들을 진행하는 와중에 호흡이 돌아왔고 저림은 최고치에 이르렀을 때보다는 줄어든 것 같았다. 나에게는 기본 수액이 주어졌고 의사는 공황일 수 있으니 정신과를 가보는 걸 권장한다고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얻게 된 우측 저림 증상보다 더 황당했던 것 같다. 백신 맞고 일어 난 일인데, 정신과로 가서 해결하라고? 그 뒤로부터 스스로 많은 임상 경험을 진행했기 때문에 그날 내가 겪은 일이 이제는 신경 발작이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신경 발작이 발생할 경우 대처해야 할 법도 이제는 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 의사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차라리 공황장애라고 믿어버리는 게 사회와 나를 포함한 모두에게 더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인생에 단 한 번도 예상치 못한 정신과를 방문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