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테이시 Jul 13. 2024

정부는 보상한다고 했다, 단!

응급실에 6시간쯤 방치된 후 처음 만난 의사는 나에게 1부터 10까지 숫자를 제시하면서 얼마큼 감각이 있는지 이야기해달라고 했다. 오른쪽 얼굴부터, 어깨, 팔, 다리까지 눌러보면서 숫자놀이를 하더니 고개를 갸우뚱했다. 일단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고 다만 환자가 애써 설명을 하니까 병명을 찾아내긴 해야 되겠는데 이런 표정이었다. 많은 과의 의사가 있지만, 신경과는 정말 극한의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신경에 일어나는 일을 환자의 증언만으로 판단해 내야 한다니. 그때 나는 백신 접종 후 처음으로 발생한 증상이라며 백신에 의한 것일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의사는

'그것은 아시다시피, 최근에 접종이 시작되어 연구 사례가 없어서......'

라며 말끝을 흐렸다. 결국 의사는 일단 편측마비가 있으면 '뇌졸중'이 의심된다고 검사를 진행하겠다고 했다. 그때 6시간 기다린 것에 조금 화가 났다. 내가 알기로 '뇌졸중'이면 시급한 처치가 필요할 수도 있는데, 그 병이 의심될 수 있는 환자를 6시간이나 방치했다고? 진짜 '뇌졸중'이면 어떡하지? 빨리 봐달라고 진상이라도 필걸! 나는 죽음이 내 앞을 스쳐가는 순간까지도 지나치게 순종적이었다.


결국 입원을 하고 할 수 있는 모든 검사를 하기로 했다. 그때쯤 '치과에서 마취주사를 오른쪽 몸에 수십대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발생한 지 24시간쯤 되었었고, 2가지 정도에 확신할 수 있었다. 왼쪽으로 퍼지지는 않는다는 것과 나를 죽이지는 않는 병인가 보다. 그 와중에 신경과 전문병동으로 옮겨진 나는 신경과 응급실로 배정을 받았다. 4인의 베드가 있었는데 안에 상주 간호사가 있는 구조였다. 갑자기 발작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모아 놓은 병실이라고 했다. 좀 우습지만 난 그 병실이 좋았다. 명칭이 신경과인 만큼 적막하고 고요했기 때문이다. 몇일의 입원동안 계속 MRI를 찍었으나 아무것도 나오는 것이 없다는 말만 들었다. 나는 어렸을 때 동생에 의해 장롱에 갇힌 적이 있었기 때문에 폐쇄 공포증이 있었는데, 그 답답한 MRI를 꾹 참고 찍어 내고야 마는 걸 보면서 모든 공포증도 죽음의 위협앞에서는 힘을 잃는 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 사이 신경과 인턴 의사 선생님들은 하루에도 몇 차례 와서 나에게 숫자 놀이를 제시하셨다. 오른쪽과 왼쪽에 자극을 주시면서 계속 1과 10 사이 중에 고르라고 하셨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숫자는 점차 조금씩 올라가기 시작했다. 감각이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정확한 표현으로는 마취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물론 치과에서 맞은 마치 주사는 3-4시간이면 풀리지만, 이 느낌은 거의 다 풀리는데 3-4일이 걸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의사들이 해결할 수 없는 것을 시간이 해결했다. 참으로 감사했다. 백신 부작용으로 나타난 현상이 일시적인 거였다니 그리고 해소가 되었다니. 구청에 보상에 대해서 신청해야 하니까 조금은 귀찮은 일을 겪긴 했지만 말이다. 사실 그때까지도 나는 이 증상이 일시적인 거라고 완벽하게 믿었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입원 당시 간호사 언니가 보건소에 백신 부작용 의심 환자가 있다고 신고해 주신 덕분에, 구청에서 안내 문자가 왔고 디테일한 서류는 이메일로 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부작용을 신고해야 하는 반면, 나는 공신력 있는 대학병원에서 직접 신고해 주신 것이니 당연히 입원 비용에 전액에 대해서 돌려받을 수 있을 거라는 것에 의심하지 않았다. 안내는 다음과 같았다.


안녕하세요, 보건소입니다. 코로나 19 백신 이상반응 보상 관련해 안내드립니다.

30만 원 기준으로 서류가 다르니 확인하시고 서류 준비하시면 됩니다.


1. 진료비 간병비 신청서 - 신청 시 작성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서식 첨부하였습니다.

2. 의료기관에서 발행한 진료확인서(이상반응 증상 및 발생일을 반드시 명시해야 함)-병원을 여러 군데 갔을 경우 각 병원마다 필요합니다.

3. 신청인과 본인 관계를 증명하는 서류(신분증 사본)

4. 진료비 영수증 원본

5. 진료비 세부산정 내역서(입원, 외래, 약제)

6. 소액 피해보상에 대한 동의서(의료기관에서 진료하셨을 때 30만 원 이하일 경우에만 작성해 주시기 바랍니다.) 서식 첨부하였습니다.

7. 의무기록 사본(초진 기록(문진, 신체검진 포함)), 입원경과, 시행한 검사 결과를 반드시 포함 - 30만 원 이상일 경우에만 필요합니다.- 병원을 여러 군데 갔을 경우 각 병원마다 의무기록 사본 필요합니다. 영수증 날짜별 의무기록사 본과 진료비 세부산정 내역서를 반드시 제출하여야 함

8. 3개월 이내의 의무기록 사본( 접종일 기준으로 3개월 이전까지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은 경우) 30만 원 이상일 경우에만 필요합니다

9. 코로나19 예방접종 피해보상 업무위탁 관련 동의서-서식에 첨부하였습니다.


서류는 준비되시면 보건소 3층 건강관리과 코로나19 이상반응 피해보상 담당자에게 하기 주소로 등기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요청하는 서류가 많았지만 100만 원이 훌쩍 넘은 금액을 봐서라도 귀찮음을 이기고 꼭 신청을 해야만 했다. 서류는 신청해도 며칠 뒤부터나 찾을 수 있기 때문에 퇴원하고 또 연차를 쓰고 서류를 찾으러 오는 번거로움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서류를 접수하고 종종 관련된 포스팅을 쓴 사람이 있는지 찾아보았으나 대부분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는 애기였고 받았다는 사람은 없었다. 그때부터 좀 불안해지기 시작했지만, 아직 받았다는 사람이 없는 걸 수있으니, 기다려 보기로 했다. 한 참이 지나 이것을 신청했다는 것을 잊어버렸을 때 쯤 정갈한 우편이 하나 왔다. 그들의 답변은 간단명료했다. 네가 겪은 일이 코로나 백신을 맞은 것과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찾을 수 없으므로 너의 요청은 기각한다라는 이야기였다.


정부는 보상을 하겠다고 했다. 거짓말은 한 건 아니다. 하지만 언론플레이를 한 것은 맞다는 생각도 들었다. 누구나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했지만 역시나 아니었다. 물론 악용되는 사례를 최대한 막고자 깐깐하게 심사를 야 했겠지만, 만약 나에게 이게 백신 맞기 전에는 없던 증상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냐고 들이대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의의가 있으면 신청하라는 친절한 리마인더가 있었지만, 나는 증상이 사라진 만으로 감사하며 인생의 해프닝이 한차례 지나간 것으로 치부하기로 했다. 그때는 증상과 평생 다시는 조우할 일이 없것이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 증상이 나에게 미련이 잔뜩 남아 술 취하면 나를 찾아오는 헤어진 연인 같은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는 데는 말이다.  

이전 05화 아프다는 걸 믿어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