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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이시 Jul 06. 2024

심장에 치과 마취 주사를 맞는 다면

2021년 8월 14일, 날씨는 맑았다. 붐비지 않을까 걱정했던 그곳 앞은 생각보다 한산했다. 오늘을 날로 잡은 것에 내가 마치 운이 좋은 것처럼 느껴졌다. 아마 나는 평생 그날을 잊지 못할 것이다. 내 인생이 그 날짜를 기점으로 나뉘었으니까. 마치 B.C 와 A.D처럼. 다음 날은 8월 15일이었고, 혹시 백신을 맞고 열이 나거나 몸살이 와도 쉴 수 있었기에 INTJ로 살아온 내 계획은 언제나처럼 완벽했다. 그때까지 인생을 살면서 소소한 실패들을 경험하기도 했었지만 내 인생에 내가 컨트롤이 안될 정도로 일이 발생할 수 있을 것을 생각하지 않았던 걸 보니, 나는 실로 교만했다.

1차 백신을 맞았을 때 조금의 미열 정도만 있었고, 딱히 부작용은 없었기에 2차 백신에 대해서는 경계심이 많이 누그러진 상태였다. 1차를 정상적으로 접종한 모두가 그랬을 것이다. 1차를 맞기 전까진, 극심한 우려를 했지만 아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을 나름 내 몸으로 직접 증명해 낸 것이니, 2차는 감흥이 없었다. 아, 그래도 2차를 맞으러 갈 때 마음을 잠깐 말해보자면, 마리오 게임에서 마리오가 별을 먹는 것 같았다. 마리오가 별을 먹은 동안에는 아무리 적과 부딪혀도 데미지가 없는 것처럼, 코로나 백신 2차도 날 그러게 만들어 줄 것이라 믿었다. 이제 코로나가 와도 나는 끄떡없는 무적이 될 터. 두려울 게 없었다.

따아끔!

그 3초 사이에 내 운명이 결정되었다는 것을 모른 채, 난 나에게 초능력이 부여된 것 같다며 좋아했다. 15분 정도 의자에 앉아 쉬다가 이상이 없으면 집에 가도 좋다고 안내를 받고 강당에 앉아 여유롭게 흘러나오는 클래식을 즐겼다. 1차 백신 접종 바로 후에는 이러다 갑자기 픽 쓰러지는 거 아냐, 마비가 오는 거 아냐 이런 걱정이 머릿속에 팽배했기 때문에 세상 초긴장했던 15분이었지만, 이번에는 일상의 한 조각으로 스쳐갔다. 같이 앉아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면서 '다들 괜찮네. 역시 백신 부작용은 기우였어, 백신 부작용이 발생할 확률이 무지하게 낮을 텐데 아무렴 그게 내가 될 리 없지.' 되뇌었다. 그리고 감사했다.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온 백신을 맞을 수 있는 기회와 전 국민을 이토록 생각해 주는 정부에게도, 백신을 만든 회사에게도.


하루 쉬고 그 다음 날은 정상 출근을 했고 퇴근을 마치고 자리에 누웠다. 시끄러운 하루를 뒤로 하고 나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던 그 시간을 만끽하던 그때, 내 인생 처음으로 느껴보는 이상한 신체 증상이 나를 찾아왔다. 어려운 용어는 집어치우고, 가장 실감 나게 표현하자면 치과에서 마취 주사를 맞은 것 같은 느낌이 오른쪽 턱에서 시작되었다. 뭔가 싸했다. 코로나 백신 부작용 중에 안면 마비가 있다는 기억이 퍼뜩 떠올라 폭풍 검색에 들어갔다.


설마, 설마, 설마 하는 사이!


오른쪽 얼굴에 있던 증상은 팔로 퍼지기 시작했다. 이제 내 검색어는 '코로나 백신 부작용 전신 마비'가 되었다. 하지만 내가 수많은 정보에 파묻혀 헤매고 있을 동안, 마비 증상은 오른쪽 다리를 타고 내려가기 시작했고 나는 직감했다. 죽음이 가까이 찾아왔다는 것을! 꽤 이른 나이부터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준비해 왔다고 자만했건만 그렇게 실감 나는 죽음 앞에서 나는 속수무책이었다. 이제 조금만 시간이 더 지나면 누군가 내 심장에 치과 마취 주사를 바로 꽂은 효과를 목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응급실로 가야겠다고 판단했다.


응급실에 가는 사이 죽지는 않겠지? 코로나 백신 부작용이겠지? 이렇게 한쪽이 마비된 상태로 평생 살아야 되는 건 아니겠지? 그럼 나는 타이핑을 칠 수 없을 수도 있을까? 그럼 회사는 다닐 수 있을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평소에 잘했나? 부모님 보다 먼저 죽으면 불효인데......


그렇게 대학 병원 응급실에 도착한 나에게는 2가지 큰 충격적인 사실이 남아 있었다.


최근 며칠 내 받은 코로나 검사 결과가 없으면 응급실에 들어가 수 없다는 것과 내가 곧 죽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호소하고 있는 것과 달리, 응급실 프런트에 있는 직원에게 나는 적어도 들 것에 실려 오지 않고 스스로 찾아온 경증 환자라는 것이었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코로라는 상황으로 병원에 제 때 방문을 못해서 죽던지, 코로나 백신 부작용으로 죽던지 둘 중 한 케이스가 될 운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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