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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이시 Jul 06. 2024

밸런스 게임: 코로나 백신 접종 한다 or 안한다

내가 코로나 백신 1차를 맞을 때까지만 해도, 맞고 싶다고 맞을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었다. 어르신들이 먼저 맞기 시작하셨고, 젊은이들은 순차적으로 대상자가 되기를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구청 등에 전화해 빨리 맞고 싶다고 컴플레인하기도 했지만, 나는 솔직히 엄청 기다려지지는 않았다. 그때도 이미 부작용에 대한 소문이 많았기 때문에 이건 뭐, 헤어진 남자 친구의 결혼소식 같은 거라고 해야 할까? 여하튼 코로나라는 질병 때문인지 코로나 백신 때문인지 느끼게 된 이상 야릇한 기분이 몇 개 있다. 그중에 하나가 우습게도 코로나 백신을 맞는다는 것은 개인적인 이익이기도 하지만 공공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라는 생각에 무언가 짧지만 군복무에 참여하는 것 같은 자랑스러운 마음도 들었다는 것이다.


그 당시 코로나 백신을 맞는다는 것은 나 때문에 누군가 코로나에 감염되는 것을 막아야 된다는 한국인 특유의 민폐 끼치기 싫어하는 집단 문화가 영향을 끼쳤다. 또한 정부에서 대대적으로 접종을 강요 아니 권장하는 상황에서 누가 정부에게 반기를 들 수 있단 말인가. 초창기 코로나에 걸린다는 것은 개인의 신체적 위협일 뿐 아니라, 사회적 위협이기도 했다. 회사에서 누가 코로나에 걸리면 걱정해 주기에 앞서, 그 사람 때문에 우리 모두 위협에 노출된 거 아닌가 라는 시선이 팽배했고, 실제 회사에서 최초로 걸린 사람은 슬랙에 자신의 일주일 치 동선 공개와 함께 죄송하다는 공지글을 쓰기도 했었다. 그만큼, 코로나가 우리에게 주는 위협은 컸다. 솔직히 지금 돌아보면 신체적 위협이 컸던 건지, 사회적 위협이 컸던 것인지도 분간이 어렵지만 말이다.


실제 코로나가 닥쳐온다면 이런 위협들 속에서 무방비하게 있어야 할 때와 달리, 코로나 백신은 우리가 코로나와 아니 코로나가 창궐한 사회와 배틀하며 살아가는데 한 가지 무기가 되어주었다. 그 당시 실제로 코로나 걸린 사람들이 가져야 하는 미안함이란 실로 상당했다. 그러나 적어도 그 사람이 백신접종자라는 정보가 추가되면 적어도 난 할 만큼 했으나 운명을 피해 가지 못했다는 스토리를 완성하여 면피할 수 있었다. 내가 코로나 백신에 조금이라도 살짝 설렌 적이 있다면 바로 이 서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때였던 것 같다.


그렇게 백신 접종 차례를 기다리고 있을 때, 아니 관망하고 있을 때 뉴스에서 작은 해프닝이 보도가 되었다. 그 결과, 어떤 직종 종사자에 대해서는 나이와 상관없이 우선 접종을 하겠다는 정책이 나와버렸고, 이제 나는 내가 결사코 반대하는 사람일지라도 백신을 맞아야 하는 상황에 처해버렸다. 직장을 그만둘게 아니면 말이다. 코로나 백신 안 맞겠다고 퇴사를 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 당시에는 사람들에게 최대한 일단 맞히는 게 중요했기에 부작용에 대해 최대한 기간을 늦춘 엠바고가 되어버렸던 건 아닌지 지금 와서 의심이 든다. 만약 많은 보도와 실례가 들려왔었다 해도 직장, 먹고사는 수단을 그만두는 선택을 할 자는 거의 없었을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코로나 백신 부작용이 발생할 확률보다 내가 코로나에 걸릴 확률이 높았기에 일단 보이는 불은 끄고 보자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물론 코로나 백신을 맞았을 때, 코로나에 걸릴지 않는다는 전제를 믿었을 말이었다.


사실 코로나 백신이 코로나를 이긴다는 것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었는데, 사회에 반기를 들고 대한민국을 떠날게 아닌 이상 믿어야 했다. 그 땐 몰랐다.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 그토록 많을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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