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죽을 순 없다
(Feat. 코로나 백신 부작용)
나는 누군가의 말에 No라고 대답해 본 기억이 거의 없다. 부모님께 그러했고, 사회에 그러했다. 소심하게 살아온 끝판왕으로서 거의 모든 것에 순응하며 살아왔다. 그것은 반항 없이 순둥 순둥하게 살라고 지어주신 '선영'이라는 이름 때문이었을까? 나는 내 이름이 미치도록 싫었다. 어릴 때는 예쁘지 않은 모든 어린애들에게 하는 욕, "넌 정말 착하구나."가 칭찬인 줄 알고 더 듣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제 안다. 그건 저주다. 제발, 내 것도 지키지 못할 만큼 착하게 살라는 말은 하지 말자. 어른들의 그런 말은 공갈 협박이나 다름없다.
그렇게 어른이 되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직장에 다니고, 그 직장을 유지하기 위해 3년 전 코로나 백신을 맞았다.
그땐 모든 것이 당연했다. 코로나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은 사회생활을 할 수 없었고, 명백하게 확인되지 않은 액체를 몸에 넣는다는 것이 완전히 수긍되지는 않았지만, 거부할 만큼의 담대함도 없었기에 나는 "코로나 백신을 맞을 차례가 되었다."라는 말에 순종했다. 그땐 상상도 못 했다. 내 인생이 코로나 백신 맞기 이전과 이후로 나눠질 줄은 말이다.
사회에서 나에게 요구하는 모든 것을 하나, 하나 클리어 해가면 잘 살게 될 것이라 아니 적어도 문제없이 인생을 꾸려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학생 때는 공부하는 거고, 대학생 때는 열심히 스펙 쌓는 거고, 어른이 되면 으레 부동산에 관심을 갖는 거고, 이런 모든 것을 헉헉 대면서 얼추 따라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착각했다. 성공한 인생은 아니어도 실패한 인생은 아니라고.
하지만 이 모든 노력이 부질없어지는 일이 발생했으니, 내 몸에 코로나 백신이 투여되었다는 사실이다. 사실, 코로나 백신이 내 몸에 아니 내 인생에 한 일을 인지하게 되었을 때는 의대 공부를 다시 해서 의사가 되어 전문적으로 진실을 파헤치는 글을 써야 되나 생각도 했으나, 내 한계를 알기에 에세이로 생각을 고쳐 먹었다. 내가 코로나 백신을 맞고 부작용을 겪고 있다는 것은 코로나 백신을 맞았다는 의학적 사실보다 더 큰 범주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운명에 순종적이었던 사람으로서 후회를 하고 있다는 팩트말이다.
내가 순종적이었다고 말하는 데에는 이런 슬픔도 포함되어 있다. 코로나 백신이 내 몸이 정상 작동되지 않게 바꿔놓았던 순간 까지도 나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최근 코로나 백신 부작용으로 세 번째 입원을 하고 생명이 곧 꺼질 것처럼 가늘게 느껴지는 순간이 오자, 처음으로 억울한 맘이 들었다.
젠장. 이대로 죽을 순 없다.
나는 왜 코로나 백신을 맞아서 이런 인생의 예상치 못한 페이지를 마주해야 하는가? 코로나 백신을 맞고도 두 번이나 코로나에 걸릴 줄 알았다면 절대 맞지 않았을 텐데, 그땐 코로나 백신이 우주를 구할 것 같이 소개가 되었으니, 덜 의심한 내 잘못 크다면 크다. 의심이 가득히 살아야 하는 것인 인생이라는 것을 그때까지 정녕 몰랐다. 이제 나는 의사도 원인을 밝혀 낼 수 없다는 증상들을 몸에 가득히 담고 살아가면서, 과연 저 의사가 주는 약이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인지 의심부터 한다.
드디어, 인생의 좋은 자세를 하나 갖추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