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테이시 Jul 13. 2024

아프다는 걸 믿어주세요

첫 백신 부작용 증상이 나타나던 그날 밤, 인생에 그토록 두려웠던 순간은 없었다. 마비증상이 내 몸에 서서히 퍼져가고 있는 느낌은 마치 뱀이 내 발부터 감아올라오기 시작해서 머리를 향하고 있는 걸 보고 있는 느낌이랄까? 혹시 이 증상이 심장까지 퍼지면 나는 즉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대학병원 응급실에 달려갔으나, 응급실 입장을 위해 먼저 코로나 검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코로나 검사 결과가 나오는 4시간 뒤까지 집에서 대기하고 있으란다. 그 사이 심장이 마비되면 책임질 거냐고 소리쳐야 했겠만 나는 죽음 앞에서도 너무 순종적이었다. 


집에 돌아와 기다린 4시간 동안 당연히 한숨도 자지 못했다. 그러나 천만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마비 증상이 몸을 딱 반으로 나눠서 오른쪽만 지배하고 왼쪽으로는 퍼지지 않았다. 이제 이 정체불명의 증상 대해서 딱 한 가지를 알게 된 것이었다. 그 뒤로도 나는 의사가 정의 내리지 못하는 이 증상에 대해 하나씩 알아가는데 정말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지금도 스스로 임상실험 중이다. 새벽 2시가 되자 '코로나가 음성이니까 응급실로 진료 와도 좋다'라는 문자가 왔다. 응급실에 입장할 수 있다는 소식만으로도 나는 살았다는 안도감에 휩싸였다. 또 반전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집을 나서는데 새벽 2시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는 것이다.


"응급실입니다. 방금 코로나 확진자가 응급실을 다녀간 것이 확인되어 지금 이 시점으로 응급실이 폐쇄 됩니다. 다른 병원을 찾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환장한 노릇이었지만, 그때는 그랬다. 확진자 1명 나오면 그 장소가 폐쇄되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격리되던 시절이었다. 새벽 2시, 또 다른 대학병원 응급실에 갈 것인가 고민만 하다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고민한 이유는 적어도 한 가지 이 녀석이 온몸으로 퍼지지 않고 우측에만 머물러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말이다. 또한 그 다음날 출근을 해야 되는 것 아닌지 엄청나게 고민을 했다. 회사가 나따위 하나 없어도 잘돌아가는 거 알면서, 고민했던 나에 대해 지금 돌아보니 무척이나 실망스럽다. 나는 왜 이렇게 나만 생각하는 것을 해야 하는 순간에도, 그것을 해내지 못하는 걸까?


그렇게 아침이 밝아오자 다행히 나는 회사가 아닌 병원에 먼저 가겠다는 판단을 했고, 아직도 잊히지 않은 번호 1339에 전화를 했다. 정부에서는 대대적으로 코로나 백신 접종 후 부작용이 있으면 이쪽 질병관리청으로 전화를 하라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정부에서 하는 말에 큰 가치를 두고 있었던 것 같다. 이른 아침인데도 모든 상담원이 통화 중이라는 멘트가 나왔던 것 같다. 나같은 사람이 많은 걸까? 결국 20번 정도 누른 후 앳된 목소리의 여자 상담원과 연결이 되었다. 나는 최대한 이성을 잃지 않고 차분히 말했다. 


"3일 전에 백신 2차 접종을 맞고 부작용이 있는 것 같습니다. 몸의 우측에만 치과 마취주사를 맞은 것 같은 마비 느낌이 있습니다. 이런 케이스가 신고된 적이 있나요? 혹시 어떤 병원에 가야 하는지 아시나요?"


그분이 의학 지식이 충만한 의사가 아닌 아침 순번을 수행하고 있는 콜센터 직원분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정부가 마련해 된 대책에 대해서 교육을 받았을 수도 있으리라, 내게 답을 주리라, 기대했던 내 마음은 그분의 답에 처참히 무너졌다. 


"아, 고객님. 그 경우 가까운 병원을 방문해 주시겠습니까?"

"네? 어떤 종류의 병원 말씀이실까요?"


그분은 한 참 말이 없었다. 우리의 통화는 그럭저럭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상담원인 입장에선 아침부터 진상고객에게 걸릴 뻔했는데 내가 이성을 잃지 않아 줘서 그날이 운수 좋은 날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정부가 부작용에 대한 대책을 상세히 마련해 두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편향이 생기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나도 내과,외과,신경과,신경외과 등 무슨 과에 가야 할지 몰랐기에 또 다른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하는 길 밖에 없었다. 


응급실에 두 발로 걸어 들어간다는 것은 진짜 오묘하게 기분 나쁜 경험이다. 일단 응급실 입장 전에 마주하는 보완요원이 환자가 맞는지 스캔하는 눈빛부터, 접수받는 간호사분들의 '걸어올 정도면 응급환자' 아닌데 라는 눈빛으로 주는 구박이 명백하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그래, 그래도 응급실에 실려가는 상황보다 두 발로 걸어가는 상황이 더 긍정적인 거지라며 마음을 다독였다. 


"어디가 아파서 오셨어요?"


나는 아까 1339 콜센터 직원분께 했던 장황한 설명을 다시 했다. 그때 간호사 언니가 차트에 쓴 단어는 Numbness(감각이 없음)이었다. 그제야 내 증상을 '치과에서 맞는 마취주사를 오른쪽 온몸에 맞은 느낌이 사라지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대신에 뭐라고 지칭할지 알게 되었다. 그래, 팔다리가 움직이니까 마비라고 지칭할 순 없겠구나. 나는 최대한 이성으로 이 상황을 판단해 보려고 노력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나는 두 발로 대학병원 응급실에 걸어온 외상이 없는 환자 잘못하면 감정적으로 아픈 호소인으로 비칠 가능성이 농후했다. 나는 그때 무언가 빠른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아프다는 것을 믿어달라는 이야기를 앞으로 만날 모든 의료진에게 읍소해야 된다는 것을! 내가 지금 통증이 있어서 굴러다니는 것도 아니었고 외상이 눈에 띄게 보이는 것이 아닌 이상 의료진들도 빠르게 조치해야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 같았다. 그래도 다행히 나는 응급실 한 베드를 차지할 수 있었고, 설마 병원에 와 있는데 급사하지는 않겠다는 안심이 들어 그제야 조금씩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응급실은 스토리 텔러 작가에게 많은 서사를 발견할 수 있는 곳이었다. 옆 베드에 있는 할아버지는 맹장이 터졌는데 타 병원으로 이송해서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다만 앰뷸런스를 타고 이동하면 돈이 십만 원 이상 드니까 결정하라고 했는데 오랜 논의 끝에 결국 택시를 타고 움직이겠다고 보호자가 결정을 하였다. 와, 욕이 나올 뻔했다! 아픈 아버지가 빠르게 수술을 필효하다는데 저걸 고민한다고? 나는 마치 자연 다큐 멘터리 찍을 때 작은 동물이 잡아먹히는 것을 눈앞에 보면서도 자연의 섭리에 개입하지 못하는 상황을 마주한 것 같았다. 그 뒤, 돌 때쯤 된 아이였을까? 몇 시간을 울어대기 시작했다. 링거를 꽂고 있는 발을 보니 나도 심장이 쑤시게 아픈 것 같은데 엄마는 오죽했을까. 이번에는 술 취한 아저씨가 길거리에서 자다가 실려왔다. 응급실 의사는 그 분과 안면이 있는지 "또 술 드셨어요?"라며 고개를 저었다. 참 응급실은 인생의 스토리가 가득한 곳이었다. 


내가 이 애기를 담은 단락을 굳이 썼다는 것은 그만큼 나는 오래 동안 방치되어 있었고, 오전 9시에 입장한 내가 나에게 배정된 의사를 처음 만난 것은 오후 3시가 넘어서였다. 내가 긴급하게 아픈 게 아닌 거라고 보고되었을 것이고, 이제 나도 그들의 그 논리에 설득돼 가고 있는 것 같았다. 다만 우측 Numbeness가 평생 사라지지 않고 지속된다면 나의 삶을 어떻게 달라질지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도 심장까지 증상이 퍼지지 않고 우측에 머물러 있는 것에 감사한 것 외에 또 다른 감사할 것이 하나 있었다. 접수를 받은 간호사가 코로나 백신 부작용으로 의심된다고 보건소에 신고 해주겠다고 했다. 그 말은 복음 같았다. 혹시라도 내가 이 증상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다고 해도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말처럼 들렸다. 물론 보상을 받는 것보다 이 증상이 사라지는 것을 당연히 원했지만 말이다. 


1339에서 받은 대응에서 정부에 대해 실망했던 나였지만, 다시 한번 정부가 대책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싶어졌다. 참 마음이 간사하다. 미워했다 사랑하고, 사랑했다 미워하는 것처럼. 의사를 기다리면서 많은 서치를 해 본 결과는 이러했다. 


정부는 보상을 해주겠다고 했다, 단! 백신과 부작용의 연관성이 인정될 경우에 한해서.
나는 과연 정부가 낸 수수께끼를 풀 수 있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