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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우리 집은 어디에] 혹시? 신길 센트럴자이

혹시 나도? 신길 센트럴자이

by 스테이시

그러던 어느 날, 내 동생님께서 4억을 빚내서 자가를 구입했다. 부부가 대기업에 다니니 집이야 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4억이라니. 일단,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었다. (집을 사는 것은 미쳐야 할 수 있다는 말이 진짜 인 것 같다. 제정신으로는 한국에서 집을 사는 결정을 할 수 없다. 여기서 미쳤다는 표현은 정말 꽂혀 버렸다고 이해해주길 바란다.)


일단, 동생 남편이 반대했다. 나도 반대하고, 모두 모두 반대했다. 현재 자산보다 큰 빚이라니(당시는 집값의 70퍼센트가 대출로 나올 때였다.) 난 동생 부부가 이일로 이혼할 까 봐 너무 걱정되었다. 그만큼 의견 차이는 심각했다. 동생은 남편의 반대가 심하자, 매물이 나왔다는 전화에 가족 몰래 계약금을 쏴버렸다. 아, 정말 집안에서 막내를 말릴 자는 아무도 없는 것 같다. 막무가내라서 막내인가?


그런데, 반전은 그때부터 부동산 활황기가 되어서 폭주의 해가 되었다. 현재 시점으로 동생의 그 집은 자신이 대출받은 금액 이상으로 올랐다. 한 마디로 지금 팔면, 자산이 4억 증가한 것이다.


헉.. 그리고 헐이다...


직장 생활하면서 1억을 번다는 건, 몇 년을 꼬박 쉬지 않고 일해야 가능하고, 1억을 모은다는 건, 몇 백 년이 걸릴지 모르는 일이다. 아니 내게는 1억이 감이 전혀 오지 않는다. 내 통장엔 십만 원의 잔고도 유지가 되지 않는데 말이다. 참, 그래서 내가 걱정해주던 동생 부부는 잘 지내고 있다 ^^;;


그때 나는 마곡에 입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마곡의 경우 공공분양 59형 분양가가 3억 5천-4억이었고 내가 마곡에 들어올 때쯤 6억이었다. 그때도 2배 정도 올라있었고, 그때도 집값이 미쳤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59형이 10억을 넘보고 있다. 하하하. 마곡뿐 아니라, 공공분양이 시행된 단지들의 특징이 있다면, 처음에는 분양세대나 국민임대, 장전 세대나 자산이 비슷했는데, 빚을 낸 사람들은 자산이 급속도로 불어 난 것이고, 빚을 내지 않고 소득을 모아 저축했던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더 가난해지고 만 것이다.


천왕에서도 2억 5천 집이 4억으로 변모하는 것을 보면서,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는데, 당시 내 생각에는 저 가격에 집을 사는 것은 정말 미치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소셜 믹스에 많은 분들은 “그때 샀어야 되는데, 빚 안 내려고”라는 말을 정말 많은 사람들이 반복했다. 자산은 비슷했지만, 빚을 내지 않고 성실히 살아보려 했던 사람들의 외마디였다. 빚을 내지 않고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치던 사람들을 밟아도 꿈틀대는 지렁이로 표현한다면, 그 위에 소금을 뿌린 격이었다. 이런 현상들이 가속화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나도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사회가 이상하게 변해간다고 불평하고 계속 내가 올리지 않은 미친 집값에 대해 계속 원망을 할 것이냐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꿔서 자본주의 사회에 일원으로 복귀할 것이냐. (그때까지, 근로소득 외의 방법으로 돈을 번다는 것은 내게 일종의 타부였다. 그건 아마 너무 정직을 고집하고 살아오신 아빠의 영향이었으리라) 참, 어른이 돼서 이런 현상들은 목격하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큰돈을 빌려 쓴다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었는데, 그 방법이 돈을 버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니. 충격이었다. 솔직히 가정을 갖고, 이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궁지에 몰리기 전까지 나는 기호학이나 철학을 전공하고 싶어 했던 이상주의적인 사람이었고, 돈이라는 것에 크게 휘둘린 적이 없었다.


지금도 나는 돈이 인생의 1순위가 되면 안 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건 내가 돈을 엄청 많이 소유해보지 않았지만, 직접 겪어 보지 않아도 될 정도로, 사회에 많은 반면교사가 있지 않은가?) 그렇지만, 이제는 더 많은 돈을 갖게 되는 것에 대해 No Thank You라고 하지는 못할 것 아니 않을 것 같다. 어른이 된다는 것 늘 왜 이렇게 어른들은 꼰대 같은 소리만 하는지 왜 그렇게 돈. 돈. 돈 하는지 이해가 안 되었는데 이제 내가 두 아이를 책임지는 입장이 되다 보니, 피터팬 옷의 지퍼를 슬그머니 내리게 되고야 말았다. 나 혼자서는 아니 남편과 둘이서는 원룸에 식빵만 먹고살아도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우리 가족에 합류하고 나서는 그렇게 살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모성은 참 강하다.


나는 굶어도 아이들은 굶길 수 없고, 나는 찢어진 것을 입어도 아이들은 그럴 수 없다. 남편은 결혼 이후, 내가 무슨 이야기만 하면 돈으로 귀결된다며 뭐라고 했지만, 70만 원이 매달 수입의 전부였던, 그때 첫째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미치지 않은 것이 정말 기적이다.


참 순수하게도 아니 무지하게도 나는 월 200만 벌어다 주면 정말 불평하지 않고 감사하며 살 것 같다고 생각했으니 정말 돈에 대해서는 욕심 따위 없었고, 우리 신혼 때, 그 시기가 가장 집 사기 좋은 시기였다고 들 하지만, 그때 사지 못할 것을 후회해 볼 겨를도 없었다. 그때로 돌아가도 절대 못 샀을 것이다. 그런 나에게, 동생과 공공분양단지의 증언들이 또 한 번의 고민 덩어리로 다가왔다.


정말 '우리 집은 어디에'라는 단어가 인생에 참 적합한 프레이즈이다. 끝없는 고민이다.


그때 입주했던 마곡은 너무나 사랑스러운 동네였고, 집 자체 또한 Perfect! 했다. 경기도 화성으로 출퇴근을 하던 남편은 서울로 이직을 했으며, 빚도 3자리로 줄었고 아이는 단설유치원에 당첨까지 됐으니 남 부러울 것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도 끝나지 않을 고민이 나를 따라다녔으니, 우리 집은 어디에?! 였다.


나는 내 인생의 이 시기에 임대주택 제도의 혜택을 누릴 수 있어서 정말 감사했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부러워한 적도 크게 없었다. 노력해서 갖지 않은 것은 어차피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동산 활황기가 되자 솔직히 나도 로또 분양에 당첨돼야 될 것 같은 분위기에 휩쓸려 가고 있었다. 동생말로는 나 같은 아줌마까지 부동산에 관심을 갖게 되면 끝물이라고 하긴 했다.


그리하여, 마음이 편안한 것도 아니고 막 흔들릴 때 되면 좋은 건지, 안되야 좋은 건지 하는 마음으로 신길 센트럴자이 51형에 인생 첫 분양 신청을 했다. 미끼 상품처럼 방 3개짜리를 3억 6천에 내놓았으니, 추첨 물량 경쟁률은 750:1 정도 되었다.


하하하. 750대 1에서 된 사람은 누구일까. 하하하. (얼마 전에는 신촌 힐스테이스 추첨에서 8000대 1의 경쟁률이 나왔는데, 그 한 명은 누구신지, 대박 ^^!)


첫 결과는 요즘 말로 당연히 광탈이었고, 오히려 조급한 마음으로 던져본 패가 먹히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 이후로도 몇 달은 그런 불안하고 조급한 마음에 쫓겨서 지금이라도 뭐 라도 사야 될 것 같았으나, 새로 이사 온 우리 집은 The best house ever before 여서 하루 종일 고민하다 가도 이렇게 좋은 집을 두고 어디 가나 라는 마음에 애인을 두고 한눈을 판 것 같은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사실 사회적 분위기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집을 지금 구매할까 라는 고민의 사유가 되었던 것은 2가지인데, 첫째 아이가 곧 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된다는 사실과, 남편 외벌이로 연봉이 4천 미만일 때, 5억 미만의 집에 대해서 가장 저렴한 이자를 제공하는 디딤돌 대출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디딤돌 대출은 연봉 2천 미만 4천 미만 6천 미만(생애최초 7천) 미만 구간으로 금리가 다르게 책정되기 때문에, 내가 아르바이트 파트타임 혹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돈을 조금 버는 순간 구간이 달라져서, 금리가 0.1 혹은 0.2씩 올라가게 된다. 당시 가능했던 최종 금리는 2.0 퍼센트였던 걸로 기억한다. 몇 억에 대한 0.1~0.2 퍼센트는 굉장히 큰 차이가 되므로 금리를 최대한 싸게 받을 수 있을 때 뭐라도 사야 되나 생각을 한 것이다.


그 고민도 하늘 위로 날려버리게 된 계기가 있었으니, 서울이 투기지역으로 선정되면서 주택담보대출이 40%로 줄어드는 일이 발생하였다. 하하하. 5억 미만인 집이고 생애최초 구입자는 50% 퍼센트까지 대출이 된다. 그러나, 생활권을 크게 바꾸지 않으면서 그런 집을 찾는 건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는 격이었다. 아이들의 다니고 있던 교육기관까지 생각하면 집 가격이 맞는다고 쉽게 아무 곳이나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더라.


아, 이렇게 고민 강제 종료, 혹은 강제 연기될 형편에 처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았다. 난 마곡 59형 F형! 햇살이 아름답고 뷰또한 시원한 집에 월 이자 약 3만 원만 내고 조금 더 오래 살 수 있게 된 거지 ~아싸! 이렇게 말이다. 그리고 그 또한, 정말로 만족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우리 집은 어디에' 고민은 지울 수는 없지만, 멈춰 놓는 시기는 있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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