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 당첨, 운이 좋으면?
결론 적인 애기부터 하자면, 운(?)이 좋아서 당첨된다고 생각할 것이라면, 임대주택 준비를 하지 말고, 그 운으로 로또를 하셨으면 좋겠다. 좀 더 완화해서 말하자면, 시기적으로 더 열려있는 시기에 당첨이 되기 수월한 경우는 있겠지만, 임대 주택은 최종 목적지가 아니기에, 당첨이 되고 난 이후에도 manage 해 나가야 할 것이 굉장히 많다.
소득제한에 대한 관리, 자산제한, 자동차가액, 주민등록 유지 등 산술적인 계산으로 거취를 계속 지속해가야 하기 때문에 한 번의 운을 써서 임대주택에 들어오면 인생이 나아질 것처럼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운으로 되는 거면, 돈 많이 벌어도 운 좋게 재계약 심사에서 걸리지 않아서 계속 살 수 있는 그런 운도 있어야 될 것이다.
가장 가깝게는 우리 부모님, 내 동생도 "너네는 운도 좋다. 몇 번이나 당첨되는 거냐"라고 여러 번의 당첨을 당한 지금까지도 이야기한다. 나는 운으로 뽑기 하나 사은품 하나 걸려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애초부터 운 따위는 기대하지 않고 살아서 인지 지독히 계획적이고 속도가 빠를 뿐이다. (운이 내게 찾아오길 기다리고 앉아있지 않으니 말이다.)
나는 지금으로부터 2년 간만 더 임대주택을 이용할 예정이다. 2년 뒤 퇴거는 희망사항이 아니다. 계획했었던 것이 실현되는 것뿐이다. 인생의 어떤 시기를 만나 임대주택을 이용할 것인지 아닐 것인지는 본인의 선택이다. 요즘은 집 값이 하도 뛰니까 장기전세가 로또인 줄 알았는데, 돈을 못 벌게 한 원흉이라고도 불평하시는데 마음이야 이해가 되지만 임대에 들어가서 이제 라이프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몇 년 맘 놓고 살아볼까 하는 순간 시간과 사회는 훅 ~ 지나버릴 수 있다.
그분들을 비난하는 게 아니라 임대주택에 살면서도 (엄청 많이 벌지 않으면 딱히 쫓겨날 일도 없고 재계약 시 5% 미만으로 오르는 안정적 세팅) 에도 난 한 번도 긴장을 푼 적이 없다. 난 복지를 누리고 있다는 감사한 마음과 더불어 가격을 지불하고 이 제도를 이용하고 있다는 인식을 늘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내가 필요할 때 제도를 이용하고 탔다가 내릴 수 있어야 내 인생의 주도권이 나에게 있는 것이다
한 번의 당첨으로 임대에 들어와서 이제 한번 좋은 집에 살아봐서 이 가격으로 다른 데는 못 가요(그런데 집 산 사람들 가격 오르는 거 보니 배 아프고 화나요) 라거나, 이제 애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살아야 해요.(20년 뒤엔 서울 집값 폭락해 있겠죠?) 라거나 그렇게 임대주택에 매이기 시작하면 더 이상 감사한 마음이 들지 않을 것이다. 정부에서 정말 싼 가격에 복지를 베풀고 있는 것을 받고 있는 것인데 말이다. (시세에 비해 싸다는 것이다. 절대금액은 결코 만만한 금액은 아니다. 임대주택의 보증금은 영구임대 몇 백만 원부터 장기전세 몇 억 까지 천차만별이다.)
사실, 내가 임대주택을 2년 뒤에 퇴거하겠다고 호기롭게 이야기하고 있는 걸 보니 흙수저는 아닌가 봅네 하고 예외로 만들고 싶으실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임대주택제도를 처음 신청할 때 나는 남편이 2년째 백만 원 이하의 수입을 벌고 있었고, 어쨌든 양가 부모님이 수입이 있으셔서 부양가족으로 분류되어 기초생활 수급자도 되지 못했지만 그분들도 우리를 정기적으로 도와주실만한 형편도 아니었다. 나는 결혼 후 경단녀가 되었고, 그렇게 아이를 키우다가는 우울증이 아니라 죽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남편은 이때 이야기하는 것을 싫어한다. 자기가 욕먹는다고. 여하튼, 말하지 못할 사정이야 많지만 팩트는 팩트였다.)
즉, 운이 좋으면 되겠지 잘되면 뭐 새 아파트에 살게 되겠네 하고 임대주택을 신청한 게 아니라 임대주택 말고는 도저히 인생의 이 시기를 버텨낼 재간이 없어서 한 선택이 임대주택이었던 것이다. 정말 임대주택제도를 이용하지 못했으면, 이혼했거나, 살아남지 못했을 것 같다는 간절함과 감사함이 늘 내 안에 있다. 그래서 서울 집 값이 폭등하고 돈을 못 벌었네 하고 임대 이용자들이 땅을 치고 할 때도 나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나는 폭등 전에도 집을 살 수 있지 않았다. 헛헛한 자기 위로가 아니라 진심이다.
내가 임대주택을 이용한 큰 목표는 이곳에 머무는 기간 동안 건강한 가족의 모습을 회복하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은 왜 임대주택을 이용하려고 하는가?
솔직히, 나는 아이가 없는 (예비) 신혼부부에게 넓은 임대주택을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지만 59형 정도, 59형을 기다리시는 3자녀들의 대기수요가 엄청 많다는 것은 정부에서도 염두에 두셨으면 좋겠다. 임대주택 보급의 가장 큰 목적 중에 하나가 출산율을 높이는 것이라면 말이다. 신혼부부들은 작은 집에 살아야 된다는 것이 아니라, 현재 공급되는 임대주택 중에 59형이 가장 큰 크기기 때문에 하는 소리이다.) 할당하는 것에 대한 꼰대 같은 염려가 있다.
나는 신혼 첫 집이 원룸 같은 아파트에 월세를 냈다.
30년이 다 된 지상 주차장이 만차인 그곳을 겪어 냈기에 무엇이든지 견뎌보고자 하는 일종의 헝그리 정신이 있다. 간절함이 있다. 처음부터 굉장히 좋은 집 살다가, 자산 초과든, 계약 만료 든, 자동차 가액 초과든 나가야 될 때, 이미 높아진 눈을 낮추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때 가서 그 보증금으로는 생활권이 완전히 다른 곳으로 가야 할 것이다. 그때가 돼서 여전히 좋은 집에 시세에 비해 아주 싼 값으로 살았다는 감사한 마음이 들까? (더 연장해 살 수 없다는 화남만 남을까?)
나가야 된다는 좌절과 계급론만 남지 않으려면 임대주택을 준비하는 신혼부부들, 당첨되더라도 거쳐가는 곳이라는 생각을 단디하고 살아야 할 것이다. 가족계획과 재정계획 주거계획이 같이 굴러가야 된다는 것을 잊지 말고, 좋은 집에 운 좋게 살게 되었다는 생각은 지금이라도 당장 버리길 추천한다.
나의 임대주택 경험담과 제도적 이야기는 밤새 해도 끝이 없다. 천천히 하나씩 써나가려는데, 마음이 급하다. 임대주택을 비난하려는 것도 전혀 아니고 임대주택 이용자에게 훈계를 두려는 것도 전혀 아니다. 다만, 정말 가치를 알고 간절한 분들에게 정말 나의 시작처럼... 이것 아니면, 전혀 인생의 버텨내지 못할 분들이 계시다면, 어서 이용하실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리고 싶은 오지랖이다.
나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퇴거 시점을 받아놓고 있지만, 언제나 이 제도를 사랑한다. 그리고 이 제도를 통해 인생의 한 페이지를 풀어가려는 (적어도 이 글을 찾아 읽어보고 한 가정을 책임지려는 열정 있는) 그대들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