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하기 위해

영화 존윅 4

by 이용수

존윅은 자유를 얻고 '다정한 남편'으로 영면했다. 영원한 수식어에 이만한 게 있을까 싶다. 죽고자 하는 자 살 것이라고 스스로 예언한 대로다.


존윅은 피곤해죽겠는 표정으로 다정함이 없는 것들을 모조리 없애버린다. 이로써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진화 이론을 증명한다. 산책에 맛 들인 이후 시청각을 포기하던 차에도 존윅 완결판(버뜨, 챕터 5를 제작한단다)을 놓칠 수 없었던 보람으로 충분하다.


존윅 묘비명의 원문은 Loving husband이다. 이 표식에 꽂혀서 영영사전 풀이를 보니 'Loving'은 사랑을 많이 표현한다는 뜻이다. '다정한'의 한자 풀이도 '정 많은'이다. '다정하다'를 입 밖으로 내면 귀에 닿는 감촉 자체가 따뜻하다. 다정함을 느낀 순간들이 후광으로 떠올라서 그런가. 'Loving'의 발음도 원어민에게 그러려나.


책 제목에는 유행이 있다. 요즘 '다정한'이 그렇다. 갈구가 유행을 만들기 마련이지만 과연 '다정한 조직'이 가당키나 한가. 다정한 사람은 안일해 보였다. 다정한 표정으로 냉정했다. 그게 내 본모습인지 훈련의 결과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규칙의 층과 다정의 층은 공존한다고 믿고 싶다. 존윅의 친구였던 케인이 지령과 우정 사이를 인내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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