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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수 Aug 03. 2023

숲의 운명

김연수 <너무나 많은 여름이>를 읽다가

목동에 살아요 하면 으레 '거기 교육열이 엄청나잖아요' 한다. '그럼요. 아파트랑 학원밖에 없어요'라고 퉁친다. 아내가 청소년기를 보낸 곳이라 자연히 정착하게 됐다. 아이들의 교육엔 크게 신경 쓰지도 안 쓰지도 않는 어정쩡한 마음이었지만 이왕 잘됐네 싶었다. 여기는 아이들에게는 아주 큰 감옥인 셈이니까.


단지 내에 나무가 심어져 있다기보다 거대한 숲을 이루고 있다고 해야 맞겠다. 올여름에도 여러 날의 비가 지나간 뒤에 매미소리가 뒤덮었다. 나무마다 큰 줄기만 얼핏 보아도 대여섯 마리가 앉아서 온 생을 울음으로 토해낸다. 얼마 전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가 갑자기 비가 내려 집으로 속히 돌아올 때는 나무 아래에서 나무 아래로 건너가며 비를 거의 맞지 않아도 되었으니 가히 숲의 동네다.


현수막에는 재건축을 Fast Track(신속통합기획)으로 추진하게 되었다고 크게 적혀있다. 소유하는 집은 따로 있고 여기는 거주하는 집이라서 별 감흥은 없지만... 현수막 뒤로는 봄에 벚꽃으로 눈부신 빛의 우산을 만드는 나무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사 오기 전에도 일부러 벚꽃 보러 와서 그 아래에 서있었. 신속통합기획으로 사라질 미래가 아른거렸다.


두어 달 전부터 산책을 시작하면서 동네 곳곳이 새로 보인다. 작은 가게들이며 사람을 데리고 나온 강아지들이며 안양천을 따라 뛰는 사람들이며. 특히나 나무가 정말 많구나, 이렇게나 굵고 높구나. 이곳은 원래 숲 속이었는데 건물이 들어섰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나무 하나하나를 새로 발견하여선지 그들의 운명이 안타까워진다. 아내에게도 저절로 말로 뱉어지는 걸 보면.


김연수 작가의 신간인 <너무나 많은 여름이>는 아내와 주말마다 출근하는 동네 카페에서 커피 전문 잡지를 쓰윽 넘겨보다가 작품 소개를 보고 이끌렸다. 나는 소설은 거의 읽지 않는다. 몇 년 사이 <일의 기쁨과 슬픔>,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은 게 다니까. 끌린 이유는 두 가지다. 낭독회를 하며 낮의 고단함에도 저녁에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그들이 목적지로 돌아갈 때 수단이 될 이야기를 들려주어야겠다는 다짐으로 그전까지와는 다르게 소설을 쓰게 되었다는 말. 30대, 40대를 할 줄 아는 일, 잘할 수 있는 일로 가정을 건사하고 나중을 대비하며 세속적으로 그럴듯한 자리까지 왔지만 삶이 이것이 전부는 아닐 거라는 공허함이 그림자로 붙어있었던 나의 내면의 말. 문학상을 시리즈로 받은 유명한 작가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지만 그의 말과 나의 말이 만나면서 알고 보니 또래급격하게 친근한 마음이 들면서 신간을 사서 읽고 있다가, 그 소설을 본 것이다. '나 혼자만 웃는 사람일 수는 없어서'.


거칠게 요약하면, 강아지와의 추억이 깃든 나무가 잘려나갈 위험이 다가오고 아파트 단지의 나무들을 살리자는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과 함께 하게 된다. 내가 살고 있는 이 공간에도 위험이 다가오고 있다. 숲 속의 콘크리트일 뿐인 아파트를 새로 짓겠다고 숲을 없애게 될 것이다. 누군가 나무들을 이 숲을 매미들을 살리자고 나설지는 아직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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