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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드 Apr 14. 2019

콘서트에서 받은 생일 선물

모자람 속에서 느끼는 꽉 찬 감동

 며칠 내내 침대에 누워서 인터파크 티켓 앱을 들락날락거리고 있었다. 2016년 11월 11일 오후. 내일 만나기로 했던 후배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언니, 몸이 안 좋아서 내일 못 만날 것 같아요. 언니 생일이라 꼭 만나려고 전부터 악속 했는데 죄송해요’ 이 문자를 보자마자 인터파크 티켓 앱을 다시 열었다. 얼마 전까지 매진이었던 공연의 취소표가 듬성듬성 보라색 네모 칸으로 나타났다. 좌석과 스탠딩을 고민하다가 ‘락 콘서트는 스탠딩이 진리지!’ 하면서 1층 스탠딩 다 구역 27번을 클릭했다. 공연 전날 예매한 것 치고 좋은 자리다. 통장에는 며칠 전 값비싼 철분주사를 맞고 보험회사에 청구한 금액이 마침 입금되어 있었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하는 건지 나쁘다고 해야 하는 건지 잠시 헷갈리는 순간이다. 재빨리 결제를 마쳤다.     


 침대에 누운 채, 심박수 측정 앱을 열고 검지 손가락을 카메라 렌즈 부분에 가져갔다. 96,89,94... 2주 전 120까지 올랐던 심박수가 떨어지고 있지만 아직 정상과는 거리가 있다. 검지 손가락으로 눈 아래 꺼풀을 뒤집어 색을 살핀다. 허연 바탕에 약간의 핑크빛이 살짝 돈다. 피부는 혈색 없이 누르스름하고 여전히 창백하다. 한 달 전 찬바람이 불면서 부정 출혈이 2주 이상 계속되었다. 43cm 슈퍼롱 오버나이트 생리대를 하루에 10개씩 흠뻑 적시는 것도 모자라 밤마다 침대 매트커버까지 흥건히 적셨다. 정상이 12-16인 Hb(헤모글로빈) 수치가 5까지 떨어졌다. 혈액 검사 결과를 보면서 놀라던 간호사의 표정이 떠오른다. 심장 쇼크가 올 수도 있으니 당분간 혼자 밖에 돌아다니지 말라는 의사의 충고가 귓가에 맴돈다. 걱정스러워하는 엄마의 눈빛도 어른거린다.     


 엄마께는 생일이라 후배를 만나기로 했다는, 오래전에 잡은 약속이라서 취소하지 않았다는 말을 정정하지 않았다. 2주간 많이 쉬었고, 빈혈 주사도 두 번 맞았으니 잠깐의 외출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설득했다. 출혈도 줄고 있으니 괜찮다고. 작년에 Hb수치가 6으로 떨어졌을 때도 나는 무사하지 않았냐며 안심시켰다. 나이 먹는 게 마뜩지 않아서 한동안 등한시했지만 이럴 때는 생일이 쓸모 있는 구실이 되었다.     


 다음날 오후, 3시 무렵. 비릿한 철분제를 두 봉지 들이키고, 갑작스러운 출혈을 대비해 슈퍼롱 오버나이트 생리대를 했다. 청바지에 회색 운동화를 신고, 접어도 잘 구겨지지 않는 검정 재킷에 하늘색 목도리를 두르고 집을 나섰다. 작은 가방에는 500ml 물통, 안경, 견과류 한 봉지를 챙겨 넣었다. 분당에서 일산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의자에 몸을 기대어 앉았다. 이어폰을 꽂고, 콘서트에서 나올 음악들을 재생시키며 눈을 감는다. 생동감 있는 현장에 있을 상상만으로도 침대에 누워 하얀 천장 벽지만 바라보던 답답함이 스르륵 풀렸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시간들이 쌓이면서 새롭게 다가오는 것들이 있다. 국카스텐 음악이 그랬다. 하루하루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내가 원치 않는 곳으로 흘러 와 있었다. 병원, 집, 헬스장을 오가다가 다시 병원과 집을 맴도는 생활이 반복되었다. 삶의 굴레에서 허덕이던 어느 날, 전에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여겼던 가사가 마음에 파고들었다. 삶이 난해해지자 난해했던 음악이 명료하게 다가왔다. 사랑타령 노래에 질려있던 내게 그들의 음악과 가사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구멍이 난 손을 벌리며/ 모든 것이 사라졌다고... (중략)... 무너져 버린/ 짙은 허상과/ 보이지 않는/ 삶을 속인 삶의 소유와/ 삼켜져 버린/ 병든 믿음과/ 사라져 버린/ 찌꺼기로 만든 손바닥 ’ (‘싱크홀’ 중에서)

손에 쥐었던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나면 당신은 누구냐고 묻는, 존재를 흔드는 질문을 던지는 시 같은 가사에 매료되었다. 내면의 불안과 결핍을 들여다보고 내지르는 음악. 자신들의 음악을 ‘도마 위의 고등어’라고 비유한 그 생생한 불안이 주는 에너지가 마음을 흔들었다. 불안이 불안을 알아보고, 결핍이 결핍을 끌어당겼다.     


 5시 즈음 공연장 근처 버스 정류장에 내렸다. 공연 시작은 7시. 스탠딩은 1시간 반 전부터 대기를 하니까 이동시간을 빼면 20분 정도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6시부터 입장하면 공연 끝날 때까지 3시간 이상 꼼짝 않고 서 있어야 한다. 악간 어지러웠다. 심장 박동이 조금씩 빨라졌다. 앞으로 3시간을 위해 철분 보충이 필요했다. 근처 음식점을 검색하다 설렁탕 가게에 들어갔다. 평소 그리 좋아하지도 않는 설렁탕을 후루룩 먹었다. 아니 마셨다. 혀를 살짝 데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음식이라기보다는 살기 위해 먹어야 하는 보약처럼 국물까지 다 마시고 철분이 듬뿍 담긴 고기도 흡입했다. 배터리에 충전하듯이 설렁탕으로 에너지를 채웠다. 서너 시간은 끄떡없도록.   

  

 공연이 시작되었다. 처음 시도해 본 락 콘서트의 스탠딩. 나처럼 혼자 온 사람들도 많았다. 시작부터 사람들은 주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방방 뛰며 손을 흔들고 노래를 따라 부른다. 각자가 내뿜는 열기가 모여 커다란 공연장을 가득 채운다. 나도 조금씩 몸을 흔들어본다. 오른팔을 흔들다가 오른 다리를 리듬에 맞춰 쿵작거린다. 폴짝폴짝 뛰어도 본다. 땀이 흐른다. 재킷을 벗어 허리춤에 묶고서 온 몸을 리듬에 맡긴다. ‘살아 있는 시간을 지나고 있구나.’ 무대에서도 객석에서도 음악에 자신을 내던지고 있었다. 삶의 갈증을 해소하는 것인지, 각자의 불안을 잠시 망각하는 것인지 이 순간만큼은 자유롭다. 모두 가장 뜨거운 가을밤을 지나고 있었다.     


 ‘건물이 너무 많이 흔들리니 조심하래요!’ 고양 실내체육관은 팬들의 쿵쾅거림으로 흔들렸고 급기야 진행요원이 갑자기 무대에 올라왔다. 하지만 모두 그 소리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무너질 테면 무너져 보라는 듯이 뛰고 소리 질렀다. 수천 명 사람들의 에너지가 모여 단단한 건물을 흔들었고, 그 흔들림에 내 힘도 한몫했다는 사실이 짜릿했다. 내일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오늘 가진 에너지를 다 쓰고 말겠다는 국카스텐 공연도 팬들도 도마 위 고등어의 마지막 몸부림처럼 펄떡거렸다.      


앙코르 순서가 되었다. 다음 곡은 ‘사이’라고 하는 순간 나는 반사적으로하고 탄성을 내질렀다. 에이브라는 피아니스트가 작곡하고 국카스텐 보컬이 가사를 붙인 노래. 버스 안에서 반복 재생하며 들으면서 자꾸만 솟아나는 눈물을 훔치던 곡. 한 편의 시처럼 나를 위로하던 가사. 기존 국카스텐의 노래와 결이 다르고, 그동안 콘서트에서 거의 부르지 않아서 라이브는 기대도 안 하고 있었는데 그 노래를 한다니. ‘사이’의 피아노 반주가 울려 퍼졌다. ‘오늘 내 생일선물이구나!’     


공연이 다 끝났는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 않고 있다. 무대는 불이 꺼졌고 밴드는 이미 퇴장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공연장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국카스텐의 음악을 목청 높여 따라 부르면서 여전히 팔과 몸을 들썩이며 흠뻑 음악에 젖어있다. 객석이 무대가 된 것처럼 노래를 부르며 우리들만의 축제를 즐긴다. 그 분위기가 신기하고 유쾌해서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노래를 따라 부르며 그들 속에 잠시 머물러본다.     



집에 오는 길, 달뜬 표정으로 ‘사이’를 반복 재생한다.     


메마른 이길 위에/현실의 갈피 속에/ 한 자락 바람결에/ 걸음을 멈춰 뒤를 보다

나를 비껴간 봄날이/ 떨어뜨린 향기들을 / 따라가, 따라가, 따라가

잰걸음 사이에도/ 저 빌딩들 사이에도/ 도무지 어디에 있는지

모두 가지려 발버둥을 쳐도/ 작은 두 손에 잡힌 건

부스러진 욕심과/ 닳아버린 희망과/ 게워버린 상한 믿음들

잰걸음 사이에도/ 저 빌딩들 사이에도/ 도무지 어디에 있는지

긴 계단 사이에도/ 빼곡한 달력 안에도/ 찾을 수 없었던 내 모습

허공 속에서 건져냈던/ 내가 증명될 모든 것이/ 뒤를 돌아보면 어느새 사라져

먼 곳으로 떠났고/ 세상의 뒤를 밟고/ 결국 도착한 이곳은/ 나를 두고 왔던 이 자리     



 노래를 들으며 나를 비껴간 봄날이 떨어뜨린 향기를 애처롭게 따라나선다. 오랜 시간 달력 안에도 계단에도 나는 없었다. 허탈해하는 내게 말을 건다. 내가 놓친 건 허공 속에서 나를 증명하는 것일 뿐이었다고. 나를 잃지 않았으니 아무것도 잃은 건 없다고. 그러니 괜찮다고.          


 하루 동안의 작은 모험이 막을 내리고 있다. 부족한 피와 함께 공연장에서의 흥분과 벅찬 에너지, 음악이 주는 위로가 뒤섞여 심장이 쿵쿵거렸다. 그 심장 박동에 귀 기울이며 버스 의자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모자란 상황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꽉 찬 감동을 되새김질했다. 불완전한 인간이 한계 속에서  표현하는 몸짓과 목소리는 생생한 위로였다. 아, 마음 깊은 곳에 쌓아둔  미숙한 이야기들이 꿈틀거린다. 두 눈을 가늘게 뜨며 혼잣말을 내뱉는다.       

    

“글을,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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