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가 살인을 한다.
이 이야기는 픽션입니다.
1여 년 전 강남 한복판에서 벌어진 전혀 면식이 없는 피해자를 향한 끔찍한 살인사건은 잠재적 살인을 방지하는 방법에 대해 많은 사회적 고민을 안겨주었다. 2024년 3월에 발생한 고모(22세) 사건의 경우는 이전까지 발생했던 묻지마 살인하고는 다른 양상을 보여줘 많은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림과 동시에 수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전까지의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묻지마 살인 같은 경우는 대부분이 사회에 불만을 품은 사회 부적응자들에 의해 발생을 했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가정환경이 어려웠으며, 현재의 경제적 상황도 좋지 않았으며, 나아질 기미도 없었다.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고, 평소에도 반사회적 성향들을 지속적으로 내보이던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남들과는 다르게 자신만이 불행하다 생각했고, 미래조차 꿈꾸기 어려운 현실 속에 방치되어 있었다. 그 누구도 내 편이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고,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사람조차 주변에 없었다. 이들은 이러한 환경으로 인해 불안장애와 우울증, 반사회적 성격장애 등의 정신과적 질환이 있다는 진단을 받고, 이를 감형의 주된 근거로 삼았다. 사회적으로는 이러한 사회적 소외 계층이 발생하게 된 계기를 돌아보고, 환경의 영향으로 인해 누구나가 잠재적 살인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을 미워하지 마라”는 옛말이 그대로 적용되었다. 나와 당신 역시도 그런 환경이었다면 역시 살인자가 될 수도 있었으니, 그들은 미워하지 말고 용서하고 이해해야 하며, 그런 환경이 개선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대중을 향한 메시지가 되었다.
고씨의 경우는 이와는 너무 달랐다. 어려서부터 남부럽지 않은 환경에서 자랐으며, 이름이 있는 명문대에 재학 중이었다. 고씨의 가족들은 언제나 고씨의 주변에 있었고, 많은 친구들조차 이번 사건에 대해 놀라워했다. 더욱이 고씨는 현역으로 군생활을 무사히 마쳤고, 군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더욱이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3개월 동안의 유럽 배낭여행을 불과 2주일 앞두고 이런 사건이 벌어졌다는 것이 더욱 충격적이었다. 가장 충격을 받은 건 고씨의 여자 친구였다. 군대에 가기 전부터 사귀었던 둘은 3년을 만나는 동안 사소한 다툼조차 없었으며, 한 번도 고씨의 폭력적 성향에 대해 인지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많은 정신분석학자들이 고씨의 잠재적인 소시오패스 혹은 사이코패스 기질을 찾아내기 위해 다양한 검사들을 수행했으나, 정상인의 범주를 눈에 띄게 벗어나는 부분을 찾지는 못했다.
사건이 일어난 당시 고씨에게 특별히 스트레스를 유발할만한 상황이 있지도 않았다. 고씨는 당시 햇빛이 너무 눈이 부셔 사람을 죽이고 싶었다고 했다. 칼날처럼 날카롭게 햇빛이 눈동자를 파고드는 순간 사람을 죽여야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그냥 주변에 있는 부서진 보도블록을 들고 마침 옆을 지나가던 30대 남성의 뒤통수를 가격한 것이다. 고씨는 단 한차례 가격을 한 것이 아니라, 쓰러진 남성의 등에 올라타 뒤통수가 뭉개질 정도로 30여 회 정도를 두 손으로 보도블록 파편을 내리쳤다. 평소에 알던 사이도 아니고, 피해자가 특별히 고씨와 어깨가 부딪혔거나 눈이 마주친 것도 아니었다. 그냥 근처 회사에서 점심을 먹으러 나왔던 평범한 직장인이었을 뿐이다.
고씨의 살인사건의 경우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다. 살해 동기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평소 사회적 불만을 표출하거나 적응에 문제가 있지도 않았고, 트라우마로 남을 만한 사건조차 없었을 만큼 행복하고 여유로운 환경에서 살아왔다. 사건이 일어나는 그 순간까지도 고씨와 함께 있던 고씨의 여자 친구는 고씨가 그런 일을 벌이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전혀 일면식이 없는 피해자를 대상으로 우발적으로 1회의 폭력적 행동이 아닌, 잔인할 정도로 반복적인 폭력을 행사했고, 피해자의 사망이 확실시되고 나서야 그런 행동을 멈추었다. 그리고 5분도 채 안돼 나타난 경찰에게는 아무런 저항도 없이 순순히 체포에 응했다. 지금까지의 조사에서도 단지 햇빛이 눈부셔 죽이고 싶었다는 말 이외에는 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스스로도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관련된 많은 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이번 살인이 환경적 요인이 아닌 고씨의 유전적 요인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는 의견이 대두되었다. 고씨의 몸속에 있는 특정한 유전자가 이유를 알 수 없는 이유로 발현되어 살인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수렵이 가능해진 신인류가 등장한 순간부터 인간은 조금 더 많은 먹을 것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때로는 힘을 합쳐 큰 동물을 잡기도 했지만, 잡은 동물의 고기를 나눌 때는 동료가 더 많은 고기를 가져가는 것이 불편했다. 심지어 더 많은 고기를 가져가지 않더라도 조금의 고깃덩이를 나누는 것조차 아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러한 마음들이 적극적으로 표출되면 그 동료와 고기를 나누는 것을 거부하게 된다. 그러면 싸움이 벌어지게 되고, 내가 이기면 다행이지만 내가 지면 내가 갖기로 한 고기조차 빼앗기는 경우도 생겼다. 이러한 일을 방지하고 더 많은 고기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동료의 것을 완벽하게 빼앗을 수 있어야 했고, 그 완벽한 방법이 바로 살인이었다. 살인을 통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음을 깨닫게 된 인간은 그 살인의 기술들을 점점 발전시켜갔다. 동료를 안심시키기 위한 거짓된 표정과 행동을 하게 되었고, 살인의 과정이 더욱 수월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냈다. 동물을 잡기 위해 만든 돌로 만든 날카로운 창이 인간을 향해서도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음을 깨달았고, 짧은 시간 안에 완벽하게 죽이기 위해서는 심장과 머리를 노려야 한다는 것도 학습이 되었다. 많은 살인을 통해 경쟁자들을 줄여나간 인류가 살아남게 되었고, 이러한 일종의 습성은 유전자에 각인되어 후세에 전달되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면서 경쟁자를 죽이는 것보다 협력을 하는 것이 더 많은 고기를 지속적으로 얻을 수 있음을 알게 되었고, 인류는 살인의 유전자를 깊숙이 감춘 채로 살게 되었다. 하지만 한번 각인된 유전자는 여전히 일부 인간들에게 유전이 되었고, 다시금 발현될 시기만을 숨죽여 기다리고 있었을 뿐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많은 학자들은 우리는 누구나 잠재적 살인자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상황에 환경이 살인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사회적으로 불우한 환경에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하고, 보다 평등한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동일하게 불우한 환경과 어려운 상황에 처하더라도 모두가 살인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직장인의 경우 하루에도 수십 번씩 상사를 죽이는 꿈을 꿀 수는 있겠지만 모든 직장인이 실행에 옮기지는 않는다. 친구들과의 일상적인 다툼 속에서 죽여버린다는 말을 쉽게 내뱉지만 이 역시 실제 살인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매우 드믈다. 결국은 개인에 따라 살인을 결정짓는 보이지 않는 요소가 있다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유전자라는 것이다.
유전자가 살인을 통제한다. 주어진 환경과 상황에 상관없이 살인을 할 사람은 살인을 하고, 그런 유전자가 없는 사람은 동일한 환경과 상황 하에서도 살인을 하지 않는다. 20세기 후반부터 가속화된 생명과학 기술의 발달은 살인을 유발한다고 의심이 되는 몇 가지 유전자들을 찾아내기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고혈압이나 암에 걸릴 확률을 미리 알 수 있듯이, 간단한 검사를 통해 살인을 할 유전자가 있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선천적인 살인자를 판별하는 것이다. 사회적 반향이 커졌다. 검사를 통해 살인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은 취업 등에 불이익이 따랐다. 스펙보다 유전자가 더 우선시되었다. 살인 유전자가 없는 사람들끼리 커뮤니티를 이루고 살인 유전자가 있는 사람들끼리 커뮤니티를 이루며 새로운 양극화 현상이 발생했다. 정부에서는 암이나 고혈압처럼 평소에 관리를 잘하면 살인 유전자가 발현되지 않도록 관리할 수 있다고 지속적으로 홍보를 했지만, 사람들은 귀를 닫아버렸다.
기술의 발달은 문제를 제기했지만, 해답도 함께 제시했다. 유전자 가위를 통해 살인 유전자를 바꾸는 것이 가능해졌다. 간단한 진단을 통해 살인 유전자를 가지고 있음이 밝혀지면, 정부의 보조로 그 유전자를 치환하는 시술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들은 교도소로 가기 전에 유전자 검사를 하고, 유전자 치료를 받게 되었다. 일부의 과실치사를 제외하고는 모든 살인자들이 이러한 검사와 치료를 받게 되었고, 이를 통해 재범률이 낮아졌다. 사회 전반적으로 살인사건의 발생률도 현저히 낮아졌다. 다만, 여전히 일부 폭력조직 등에서는 살인 유전자의 유무를 가입조건으로 하고 있고, 자랑스러워하기도 했다.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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