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도 없는데 무슨 연애를
그렇다. 나는 무직으로 산 지 어언 1년이 넘었다. 퇴사를 결정하기 전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러 다녔을 적, 나의 할머니는 무슨 하늘의 별을 따려고 그 좋은 직장을 나오느냐고 말씀하셨다. 할머니의 걱정을 덜어드리기 위해 나는,
"더 좋은 직장 가려고요."
호기롭게 말씀을 드렸건만. 여전히 자리를 잡지 못하고 집 근처에서 아르바이트만 줄곧 하고 있는 처지이다. 이런 나의 어떤 점을 보고 여자친구는 나와 교제하기를 택했을까? 나는 그녀에게 이와 관련된 질문을 한 적이 없다. 가령,
"나는 직장도 없는데 도대체 뭘 보고 나와 만나려고 한 거야?"
라고 묻는 것 자체가 스스로의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내는 이야기가 아닌가. 언젠가 번듯한 직장에 들어가고 한참 뒤에 물어도 무방하리라.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곁에는 나와 비슷한 상황에서 새로운 인연을 시작한 친구들이 많았다. 내 오랜 벗 J는 입대 한 달 전에 연상의 여자에게 고백을 하여 전역을 한 지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 연애를 잘하고 있다. 더한 사례도 있다. 또 다른 오랜 벗 Y는 군 복무를 하는 도중에 미국에서 알고 지내던 연상의 여자와 연락을 지속하다가 진지한 만남을 시작하고, 결국 작년에 결혼식까지 올렸다. 한국과 미국의 초장거리 연애라 처음 2년은 실제로 얼굴을 본 건 딱 한 번이었나 그랬다. 그 정도로 서로에 대한 신뢰가 단단한 커플이었다.
어찌 보면 이렇게 극단적인 케이스에 비하면 내 상황은 별것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어디 먼 지역에 사는 것도 아니고, 군인도 아니니 말이다. 그녀는 나라는 사람 자체가 좋아서 만나기로 결심한 거라고 믿어야겠다. 다만 그녀가 발견한 나의 좋은 구석이 오랜 취준 기간 동안 소실되지 않기를 기도해야겠다. 성실하게 나를 지키고 내가 가야 할 길을 개척해서 그녀가 안심하고 내 손을 잡을 수 있도록 차근히 준비해야겠다.
그러니 마음 깊은 데서 불쑥불쑥 떠오르는,
"내 주제에 연애? 심지어 프러포즈까지 준비한다고? 일단 취업부터 해야 하지 않겠어?"
와 같은 따가운 질문은 굳이 답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어찌 되었든 나는 그녀의 남자친구이고 그녀는 나의 여자친구이며, 우리는 더없이 행복하다. 그렇다면 프러포즈를 계획할 수도 있지 않은가? 언젠가 나는 취업도 할 테고 언젠가는 이 사람과 결혼도 할 테니, 둘 다 지금부터 도전해서는 안 될 이유가 있겠는가.
덧.
글에서 '여자친구', '그녀'라고 지칭하기가 번거롭고 정이 없다 느껴지는데 별명을 하나 지어서 쓰는 게 나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