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프러포즈,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남자가 여자의 손에 반지를 끼워준다. 야경이 멋진 곳에서, 가장 완벽한 타이밍에. 가끔 주위 사람들의 박수를 받기도 하지만 이는 서양의 감성이다.
전역을 하고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났을 때의 일이다. 피렌체의 야경이 보이는 언덕에 올라 은은한 조명이 비추는 성당과 거리를 감상하고 있던 중, 가까운 곳에서 한 남자가 한쪽 무릎을 꿇고 여자에게 청혼하는 모습을 봤다. 사람들의 환호 속에서 둘은 포옹하고 키스했다. 수줍은 커플은 엄두도 못 낼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자동차 트렁크를 이용한 프러포즈가 유행하는 듯하다. 드라이브를 하다가 미리 점찍어둔 장소로 이동해 밤하늘을 보다가 짜잔, 트렁크를 여니 꽃다발과 풍선과 명품 가방이 놓여 있다. 물론 이것을 준비하는 일에도 충분한 정성과 사랑이 들겠지만 나는 색다르게 하고 싶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방식으로.
누구나 할 수 있는 프러포즈 말고, 나만이 할 수 있는 프러포즈는 뭘까?
일단 나는 찹쌀이를 위한 책을 쓰고 싶다. 사귀고부터, 이 사람을 향한 내 마음을 언어로 남겨두고 싶다는 생각을 꾸준히 했었다. 기록을 모으면 한 권의 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 책을 건네는 가장 완벽한 타이밍은 언제일까. 아무래도, 청혼할 때가 아니겠는가.
몇 개월에 걸쳐 책의 구성과 목차와 제목을 구상하고 내용을 집필하는 일은 당연히 고될 것이다. 나는 책을 낸 적도 없고, 한 주제를 두고 오랫동안 글을 써본 적도 없다. 하지만 이는 분명 아름다운 일이다.
그렇게 완성된 책을 건네는 가장 완벽한 장소는 어디일까. 아무래도, 서점이리라.
가령 우리의 1주년 데이트를 상상해 보자. 우리는 서울에 갈 것이다. 평소처럼 종일 이곳저곳 들를 테고. 그러다가 우연히 발견한 독립서점에 들어가는 것이다. 찹쌀이가 좋아하는 따뜻한 분위기의 서점. 이진아나 로이킴의 음악이 흐르고 우리는 찬찬히 공간을 둘러본다. 정갈하게 진열된 도서를 보다가 한 책에 눈길이 머문다. 제목은, '언제나 만나는 사랑'. 찹쌀이와 나는 그 책을 펼친다. 머리말을 읽는 그녀는 아직 알쏭달쏭하다. 페이지를 넘기다 우리의 사진이 인쇄되어 있는 것을 본다. 찹쌀이 눈에 눈물이 고이고, 그녀는 한쪽 무릎을 꿇는 나를 쳐다본다.
"나랑 결혼해 줄래?"
식상하지만 이보다 나은 표현이 있을까. 고민을 더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