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에 흙이 들어와도'
며칠 전, 가족과 카페에서 수다를 떨다가 내 독립과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어머니는 지금 집보다 작은 곳으로 이사하고 싶으셨고, 이사하는 김에 나도 독립을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독립하는 김에 결혼도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네?"
"어차피 결혼할 거, 두 번 이사하느니 아예 너 독립할 때 둘이 같이 살 집을 구하는 게 낫지 않겠니?"
"그렇긴 한데, 아직 찹쌀이 부모님은 저희 사귀는 것도 모르시는데요."
어머니는 당장 찹쌀이를 우리 집으로 초대할 기세였다.
"그러면, 네가 여자친구 부모님께 먼저 가서 인사드려라. 그 뒤에 여자친구도 우리 집에 인사하러 오고."
사귄 지 5개월이 다 되어 가지만, 아직 찹쌀이는 부모님께 나의 존재를 알리지 않았다. 괜히 남자친구의 존재를 말했다가 너무 많은 관심과 간섭을 받게 될까 봐 걱정하는 듯했다. 부모님의 반응도 예상이 가지 않았다. 남자친구를 사귄 적이 없던 터라 부모님의 반응을 알 방법이 없었다.
그날 밤, 나는 찹쌀이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그렇게 됐어."
"안 그래도 2월이나 3월 중에 부모님께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내일 말씀드려야겠다!"
여자친구는 이 상황을 의외로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일이 이렇게 빠르게 진척되나? 나는 괜히 긴장되었다.
여자친구와 나는 중학교 동창이고, 그때도 몇 개월 동안 사귀고 있었던 터라 여자친구 부모님은 나를 알고 계셨다. 중학교 때 만났던 꼬맹이 남자애를 이십 대 끝자락에 다시 사귄다고? 분명 놀라실 것 같았다.
다음 날, 나는 알바를 하고 있었고 찹쌀이는 퇴근길이었다.
"잘 말씀드릴게!"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과연 찹쌀이 부모님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실까? 드라마에 등장하는 단골 멘트, '내 눈에 흙이 들어와도'나 '감히 내 딸을 그 녀석이'와 같은 대답이 나온다면 어떡하지. 온갖 시나리오를 쓰며 알바를 하던 중,
"잘 말씀드렸다!"
메시지가 왔다.
"좋아하셔!"
순간 그렇게 안심될 수 없었다. 나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다행이다."
정식으로 인사드리러 가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떨릴 일인가. 나는 역시 겉으로만 평온해 보이는 내적 호들갑쟁이가 분명하다.
아무튼 일단, 작은 언덕을 넘은 기분이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