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만담과 고요 Mar 08. 2024

공무원을 그만두고

나의 자리는 어디에

백수가 된 지 벌써 1년이 넘었다. 수능을 치고 바로 대학에 들어가 휴학 없이 졸업했다. 졸업한 해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지만 발령이 나지 않아 반년을 대기했다. 가장 무기력했던 시기였다. 번듯한 직업도 가졌겠다, 나는 이제 걱정할 것이 없었지만 마음은 공허했다. 


학창 시절 나는 공무원을 꿈꾸지 않았는데, 이대로 30년 넘게 지자체의 일꾼으로 살겠구나. 


배부른 소리일 수 있지만, 그때 나는 정말 그렇게 느꼈다. 내가 다닐 직장, 내가 할 업무에 대해 깊게 고민하지 않았으니 어쩌면 당연한 상황이었다. 방에 틀어박혀 유튜브만 보며 지내다가 가끔 멀리 사는 친구를 만나러 가고 다시 돌아와 방에 틀어박혔다. 책도 읽지 않고, 기타도 잡지 않고, 노래를 부르지도, 운동을 하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내가 지내는 알았을 것이다. 


공부한답시고 한참을 잠수 타더니 다행히 붙었구나, 축하한다. 이제 돈 모아서 결혼도 하고 그래야지.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발령이 났다. 드디어 출근하는구나. 내 생각과는 달리 나와 잘 맞는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곳에서 오래 버티지 못하겠구나.


첫 출근 날에 직감했다. 사람들은 좋았다.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이상 절대 잘리지도 않았다. 아무도 성과 압박을 주지 않았고, 그저 기한에 맞춰 필요한 일만 처리하면 되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게 주어진 일의 의미를 찾지 않는 것이다. 모든 일의 의미를 찾는 나에게는 어려운 미션이었다.


나는 이 일을 왜 하고 있지? 자료를 취합하고 오탈자를 수정하고 정리된 문서를 보고하고. 이렇게 종일 보내고, 무의미한 야근을 한 뒤에, 퇴근 후에 내 취미 생활을 영위하는 삶을 살면 되는 건가. 워라밸은 원래 이런 것인가?


반년을 채우지도 못하고 나는 면직을 했다. 평생 하지 못하겠으면 일찍 나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와도 어떻게든 먹고살 수는 있겠지. 오히려 내가 진짜 바라는 길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머리가 나쁘지 않았고, 좋아하는 분야도 있었고, 남들보다 뛰어난 점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오늘처럼 불안한 날이 찾아온다. 나보다 더 준비를 많이 한 경쟁자들, 나보다 더 절박하게 산 또래들, 나보다 더 현실적인 사람들에 가려 나는 무엇도 이루지 못한 채 늙어가지 않을까. 내 곁을 지키는 사랑하는 이들이 결국에는 지쳐 떠나지 않을까. 내가 누구에게도 힘이 되지 못할까 두렵다. 더는 너를 사랑하지 못할까 봐, 그래서 나조차 사랑하지 못할까 봐.



이전 05화 단 하나뿐인 프러포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