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 무렵이었다. 해가 한참이나 졌던 시간만 기억난다. 그날 밤 누나는 자기 방 문 앞에서 아빠에게 호되게 혼났다. 내가 크면서는 아빠에게 혼난 적이 거의 없다. 다만, 그날 어머니와 10살 형이 아버지를 붙잡고 말렸으니 그 장면만큼은 특별히 기억난다. 세월이 흘러 내 나이 30살이 넘어야 그날의 기억을 어머니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날 누나가 아래층 주인집에 가서 밤늦게까지 TV 보다가 늦게 들어왔어. 그래서 아빠가 우리 집에 TV가 없냐고 물으니 누나가 우리 집은 왜 흑백 TV냐고 따졌다가 아버지한테 혼났지."
80년대 초반은 TV 보급률이 꽤 높았다. 칼라 TV와 흑백 TV를 포함해서 보급률이 89%였다고 한다. 당시 전세살이였지만 우리 집 살림살이가 나쁜 편은 아니었다. 우리 집은 방 3개짜리였고 집안에 수세식 화장실도 있었고, 베란다도 널찍이 있었다. 아버지도 중고차지만 적갈색 포니를 끌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집에 세탁기, 가스레인지도 있었고 누나와 형도 학교에서 우유급식까지는 아니지만, 요구르트를 먹을 수 있는 형편은 되었다. 이 만한 형편에 사춘기 누나의 칼라 TV 욕심도 이해는 간다. 누나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는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밤은 지냈다.
매일 아침 우리 집 풍경은 안방 불이 밝으면 누나와 형이 쩝쩝거리며 아침밥을 늘 먹었다. 내가 잠에서 덜 깨어 한 시간쯤 지나면 누나, 형은 벌써 사라지고 없다. 이제 내가 흰쌀밥에 보리차를 부어 말아먹고 김치를 물에 씻어 밥상 위에서 젓가락으로 쭉쭉 찢어 먹을 때면 이제 아버지 출근시간이다. 사무실까지는 그리 멀지 않아 걸어 출근하시던 아버지는 단 하루로 빠짐없이 2층 창문으로 내가 큰소리로
"아빠, 빠이빠이."
하면 커다란 손을 흔들며 큰소리로
"빠이빠이."라고 외치셨다. 아버지는 그날도 그랬을 거다.
형, 누나가 집에 올 시간이 다 되었다. 점심 배불리 먹고 낮잠 자고 일어나 거실에서 뒹굴며 놀 때였다. 간유리를 끼워 놓은 현관문이 뒤로 커다란 실루엣이 비쳤고 쇠 긁히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늘 밤에 들어오는 아버지가 커다란 종이박스를 들고 오셨다. 너무나 큰 박스에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아빠 그게 뭐야? 그게 뭐야?"
라며 연신 말했지만 아무 말이 없이 아버지는 내게 저쪽으로 가라 하셨다. 낡은 검정 구두를 벗어던지고 아버지가 갑자기 옛날 흑백 TV를 떼어 내시고는 박스에서 새 TV를 꺼내셨다. 상자 속에 담긴 V자 안테나를 연결해 보시고는 알록달록한 화면만 확인하시고는 나가셨다. 어 알록달록? 칼라 TV였다. 아빠 사무실에서나 보거나 기사 아저씨 따라 들어가 봤던 다방에서나 봤던 그 칼라 TV였다. 비록 전파가 잘 안 잡혀 지지직거리는 중에도 화면조정 시간인 것은 알 수 있었다. 어머니는 유선을 연결해야 TV가 잘 나온다고 오늘은 못 본다고만 하셨다. 생각해보니 전날 누나가 대들었던 모습에 아버지가 속상하셨나 보다. 자식이 갖고 싶은 게 있는데 그것을 못 해 줄 때 부모의 마음은 나 자신이 못났구나라는 생각과 미안하다는 생각이 얽혀 있음을 내가 부모가 되고 보니 더 깊이 깨닫게 되었다.
내가 대학교 2학년때다. 외할머니 장례식장에서 아버지께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아버지는 꿈이 뭐였어요?"
대학에 입학을 했지만, 진로에 대한 방황이 깊었던 시기에서 조금씩 탈출하고 있을 때였다.
"뭔 꿈이 있어. 그냥 사는 거지."
"아니, 그래도 하고 싶은 거 있었을 것 아니에요?"
"돈 많이 벌어서 너희들하고 싶은 것 마음껏 시켜주는 게 꿈이었지. 뭐."
먹고살기 힘들던 시절 요즘 아이들처럼, 선생님이요, 축구선수요, 경찰이요, 아이돌 이요처럼 자아실현은 사치였을 수 있다. 아버지는 그저 자식들이 마음껏 자기 하고 싶은 거 시켜주는 게 꿈이었다 하신다. 자식들이 바라는 게 뭐 한두 가지겠나. 그 수많은 것들 중 하나였던 칼라 TV. 아버지는 이 칼라 TV로 당신의 꿈 한 조각을 이루셨다. 그리고 80을 바라보는 나이에 그 꿈의 범위는 이제 자식을 넘어 손자 손녀에게까지 뻗어가고 계신다. 아버지 살아계시는 동안 그 꿈 조각들이 잔뜩 쌓여 아름다운 꿈동산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나 역시 자식을 향한 꿈동산 만들기를 게을리하지 않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