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공동경비로서의 식량 = 세금
그런데 공동체의 안전을 위한 문제에서 이렇듯 자기가 먹은 음식만큼 값을 치르는 방식은 애초에 적용될 여지가 없다. 자신은 힘이 센 편에 속하므로 공동체가 절반 가량만 도와주면 나머지는 알아서 스스로 외부 위협을 해결할 수 있으니 다른 사람들이 내는 돈의 절반만 내겠다는 주장은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세금으로 50만 원을 낸 사람 김 씨와 100만 원을 낸 사람 박 씨가 있다. 김 씨는 세금으로 박 씨의 절반만 냈으므로 전쟁 시 절반 정도의 보호만을 받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총탄이 적군으로부터 쏟아지고 있는데 아군더러 50%만 막아달라는 요구가 가당키나 하겠는가?(별 의미도 없는 이야기를 장황하게 끈다고 불평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의미가 없지 않다! 세금의 정의를 이야기할 때 다시 이 문제를 살펴보기로 한다.)
본래의 논의로 돌아와 당신은 ②의 방식을 선택했을 수도 있다. 그 이유는―①과 마찬가지로―②가 공평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 해 소득으로 10억 원을 버는 사람과 100만 원을 버는 사람에게 각각 마이크를 들이대고 “당신에게 있어서 10만 원이란?”이라고 묻는다면, 각자에게 10만 원의 실질적 가치가 같을 수 없다. 따라서 정액을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소득에서 일정한 비율로 부담하는 방식이 오히려 더 공평하다고 느낄 수 있다.
10억을 버는 사람에게 10만 원은 0.01%의 비중을 차지하나, 100만 원을 버는 사람에게 10만 원은 10%의 비중을 차지한다.
자, 이제 ①과 ② 중 어느 안이 더 공평한지를 밝히고 나면 드디어 오늘 저녁 특식인 보리빵을 맛볼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서 두 가지 어려운 문제가 등장한다.
첫째, 불행히도 공평의 척도를 재는 객관적인 도구는 없다. 이를 두고 공평은 ‘주관적 가치판단의 영역’에 있다고 한다. 위 ①과 ② 중 어느 것이 더 공평한지는 각자의 판단에 따를 문제라는 것이다.
둘째, ②의 방식은 누구든지 다른 사람의 소득을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음을 전제로 한다. 누군가 채집한 곡식의 양을 거짓으로 말한다면, 이를 밝혀낼 수 있어야 ②의 방식이 현실적으로 유효하다. 단지 양심에만 맡겨야 한다면 이 방식은 결코 지속될 수 없다. 설사 집안에 들어가 남의 재산을 들여다볼 수 있다 하더라도 소득을 다른 곳이나 방법으로 은닉할 길이 있다면 ②의 유효성을 담보할 수 없다.
블루헤븐의 주민들은 이와 관련해서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곡식 100kg을 부담하는 ①안을 선택하였다. 지금의 블루헤븐은 인류의 역사에서 보자면 원시사회와 다를 바 없으므로 부의 격차가 거의 없다. 그런 상태에서 공평한 방법은 ①안, 즉 인두세와 같이 똑같이 세금을 부담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