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삶을 체험한다는 망언(2013. 5. 13)
항상 소매가 길어 세 번 이상은 접은 듯 보이는 군용 야상에 만화 캐릭터에 어울릴 듯 큼직한 뿔테 안경을 걸친(아무래도 걸쳤다는 표현이 어울릴) 전직 스테디 싱어(?)와 따발총 같은 수다를 재래시장통의 억센 톤으로 토해내듯 말하는 개그우먼이 사회를 보던 방송 프로그램이 있었다. 지금도 어디선가 방송되는지 모르지만, 이름하여 체험 삶의 현장.
스타라고 말하긴 조금 쑥스러운 연예인 내지는 아침방송 전담 저명인사(?)를 출연시켜 쓰레기 청소, 오징어잡이, 벌목장 같은 온갖 위험하거나 지저분하고 고된 노동현장에서 고작 한나절 남짓을 체험시키고는 방송홍보에 혈안이 된 사장님 덕분으로 어설픈 노동질에 남의 사업장에 잔뜩 손해를 입히고도 모자라 숙련 노동자 수준의 일당을 챙기던 인기 프로그램이었다. 득의양양하게 우스꽝스러운 유니콘을 타고 양손을 번쩍 들어 흔들며 올라가 사랑의 모금함에 봉투를 넣는 장면이 이 가증스러운 방송의 하이라이트였다.
이 방송의 롱런 비결에는 뚜렷한 몇 가지가 눈에 뜨인다. 첫째, 출연진의 몸개그. 그다지 난이도 높지 않은 일에도 그들은 평생 손에 물 한 방울 묻힌 적 없는 이처럼 서툴기 그지없다. 급기야 그날 장사를 망칠 정도로 대형사고를 치고 만다. 천하에 둘도 없는 유명인사(?)도 맨땅에서 헤매니 일반인들은 배꼽을 잡는다. 둘째, 숙련공 사수의 과잉 학대. 어설프기만 한 주인공에게 일을 가르치는 허름한 차림의 사수는 매번 호통을 치고 윽박지른다. 멀끔한 주인공이 움찔거릴 때마다 시청자는 웃음꽃을 피운다. 셋째, 그럼에도 주눅 들지 않는 주인공의 배짱과 적반하장. 일반인이었으면 반나절도 못가 쫓겨날 짓을 하고도 그들은 뻔뻔할 정도로 당당하다. 그래서 더 혼이 나지만 방귀 뀌고 성내는 모습이 보는 이는 재밌다.
끝으로 모두의 장황한 설명이 모자랄 만큼 영리한 사회자. 그들은 한심할 정도로 무능한 주인공을 면박 주는 한편으로 기특하다고 추켜주면서 가지고 논다. 이렇게 출연진과 노동자와 사회자는 프로그램을 통해 비로소 한 몸이 되어 어울린다. 생활의 달인에 출연해도 될 만큼 뛰어난 현장 노동자는 슬그머니 이들과 동급이 되기는커녕 웃짱(?)으로 온갖 예우를 받는다. 냉정하게 말해 이 상황이 가능한 건 그들과 동질감을 공유하는 시청자가 이 프로그램의 타깃인 탓이다.
육체노동에 대한 존중과 기부문화에 대한 진지함이라고는 눈을 씻고도 찾을 수 없는 이 방송을 보고 있노라면 쌓이는 모금함의 액수만큼이나 허망하고 공허했던 기억이 난다.
야근 후 늦은 퇴근길, 우리가 체험하는 일상의 노동이 견디기 어려운 무게감으로 다가올 때, 그저 한나절 체험으로 일당을 받는 방송출연자라는 상상을 해보지만, 출구가 없는 노동자에게는 마약만큼이나 위험하고 해로운 망상이라는, 부정할 수 없는 정답이 숨통을 조여 온다.
체험은 레저가 되었다. 극한의 히말라야는 체험자에게는 익스트림 스포츠일 뿐이지만 그들의 생존 도구를 짊어지고 뒤따르는 셀파에게는 그야말로 유일한 생존수단이다. 그래서 삶의 현장에는 잠시 접촉할 수 있으나 체험할 수 없다. 체험했노라 함부로 지껄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