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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산우공 Sep 12. 2021

단단함에 대하여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2016. 9. 21)

심지가 굳은 사람이란 말을 한다. 의지가 강하고 목표의식이 뚜렷하여 주변의 환경변화에 좀처럼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추진해 나가는 사람을 말한다. 심지는 마음에 품은 뜻이다. 고로 심지가 단단한 사람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따라서 심지가 불안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일반적인 사고는 심지의 강하고 그렇지 못한 것을 나이와 경륜에 빗대어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해 사회경력이 많고 다양한 인간관계를 경험한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단단한 심지를 지니게 된다는 식이다. 이건 어마어마한 착각이다. 앞에서 말했듯 심지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당신이 살면서 만났던 심지가 강한 사람들이 비록 나이와 경륜이 있던 분들이라고 하여 그들의 심지가 삶의 경험을 통해 확대 강화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비약이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심지가 굳고 튼튼하였던 것이다.


한 사람의 심지가 단단한지 여부를 알려면 그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시련이 닥쳐야 한다. 평범한 일상의 삶 속에서는 확인할 수 없다. 자칫 심지가 굳은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심지가 강한 냥 드러내는 사람들이 대개 그렇다. 그들은 내면의 불안을 감추기 위해 소위 "센 척"을 하는 것뿐이다. 그런 식의 위장은 가벼운 위기에도 금방 들통이 나곤 한다.


보통 심지가 강한 이들은 절대로 자신의 굳고 단단한 의지를 내보이지 않는다. 심지란 말 그대로 마음에 품은 뜻이기 때문이다. 마음에 품은 것을 하찮게 떠벌리는데 하물며 그들에게 심지가 있기나 하겠는가? 마음에 품은 뜻이 깊고 진지할수록 우리의 말과 행동은 더 느려 보이고 쉽게 드러나지 않는 법이다. 이것이 심지가 단단한 것이요, 진정 무서운 것이다. 가볍지 않은 사람, 그가 심지가 강한 사람이다.


세상은 내 지식과 식견의 범위에서 움직여지지 않는다. 당신이 조금 공부를 했고 제법 전문적인 경력을 쌓았다고 치자. 그것은 기껏해야 당신이 공부한 분야, 그리고 경험한 실무에서 조금 확장된 수준일 뿐이다. 인류가 문명을 이루면서 쌓아온 엄청난 학문체계와 그 위에 만들어 낸 위대한 통찰의 세계를 당신은 발끝도 따라가지 못한다. 조금 안다고 떠벌린다면 그는 하수 중에 하수인 것이다.


낯선 환경에 처하거나 위기상황이 닥쳤을 때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현상의 인식이다. 내 오감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를 조합하여 정확하게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고 가장 합리적이고 현명한 대응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인간이 세상을 상대하는 정공법이다. 그저 위기의식과 불안감에 사로잡혀 어떻게든 그 상황을 피해보려는 이들이 취하는 가장 일반적인 행동이란 꼼수다. 일단 살고 보자는 것이다. 이들은 심지가 없는 이들이다.


모든 인간들, 아니 모든 생명체는 생명현상의 결과물이다. 따라서 자존을 지키는 것이 절체절명의 사명인 것은 자명하다. 그 자존을 지킨다는 것은 그저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정체성을 지켜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인간이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그 사실을 망각하고 정글의 법칙에 따라 행동한다. 그 순간 그들은 야생동물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지는 못할지언정 오히려 험한 세상을 더 악화시키는데 일조하는 많은 야생동물형 인간들을 만나면서 살게 된다. 자의 반, 타의 반. 슬프지만 말이다. 그런 야생동물들과 싸우기 위한 방법은 두 가지다. 더 강한 맹수가 되던지 아니면 단단한 심지를 지닌 사람이 되던지.


며칠 전 야생성이 강한 조직으로 이직했던 동료가 찾아와 슬픈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고작 3개월의 경험으로도 그의 눈은 이미 떨리고 있었다. 거기서 나는 그의 불안한 심지를 보았다. 그는 야생동물이 될 의지도 없었지만, 단단한 심지를 지킬 의지도 없어 보였다. 학창 시절 늘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그 친구는 천성적으로 굳은 심지를 타고나지 못했고, 슬프게도 심지의 단단함이 없이는 버텨내기 힘든 다소 험한 세상으로 내던져진 것이다.


그는 자신이 흙수저라 한탄하지만, 나는 좀 다른 생각을 해보았다. 금수저라고 늘 평안한 일상이 보장되는 건 아니지 않을까. 결국 심지가 굳지 못한 이는 그 어떤 좋은 환경에서도 자존감을 지키며 살아남지는 못할 것 같다. 모든 흙수저(아, 이런 저급한 표현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이 한심하지만...)에게 위안이 될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우리의 착각은 늘 물질적 풍요를 기준으로 모든 것을 바라본다는 사실이다. 정말 지긋지긋한 천편과 일률의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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