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밤

휴직일기, -130일(2021.10.21)

by 낙산우공

서울의 밤은 불야성이다. 코로나19 펜데믹도 화려한 서울의 밤거리를 어찌하진 못했다. 화려한 네온사인과 시끌벅적한 인파로 북적이는 서울의 밤거리는 언제 영업제한이 있었냐는 듯 예전과 다름이 없다. 올빼미족도 아니고 불타는 청춘도 아닌 내가 이렇게 서울 도심 구석구석의 밤 풍경을 목도하고 있는 것은 강남의 중심가에 위치한 아들의 학원에 날마다 들르기 때문이다. 로데오거리와 가로수길의 가운데라고 할 수 있는 그곳은 중학교 앞인데도 밤에는 취객으로 넘쳐난다.


아이의 학원 여름특강이 있었던 지난 7월, 창밖으로 들리는 취객들의 고성과 잡담으로 지루할 틈이 없다는 아이의 말이 이해가 되었다. 때때로 취객들 사이에 시비가 붙어 경찰이 출동하거나 구급차가 오는 일도 다반사라 한다. 그렇게 창문을 꼭꼭 닫아놔도 어쩔 수 없이 들리는 소음이 민망하신지 학원 원장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너희들은 커서 저러지 말라는 당부를 하신다고 한다. 무어라 둘러대도 부끄러운 어른들의 민낯을 가리진 못할 것이다.


그렇게 한밤중의 학원 앞은 아이를 데리러 온 학부형들의 차와 술에 취한 젊음이 교차하는 진풍경을 연출한다. 밤에는 자유롭게 이용 가능한 도로변 공용주차장은 이미 만원이고 길가에 일렬로 줄을 잇듯 세운 차들의 틈 사이로 대리기사를 부르거나 한잔 더 걸치자고 수작을 떠는 취객들이 무시로 지나간다. 주차된 차들 때문에 왕복 2차선 도로는 차 한 대 빠져나갈 폭만 남아있는데 밤 10시를 전후로 어김없이 그 길을 지나가는 청소차량의 기사는 날마다 진땀이 날 것이다. 이 혼돈의 현장을 발견한 뒤로 나는 멀찌감치 한가로운 곳에 차를 댔다가 아이가 나오는 시간에 맞추어 차를 옮긴다. 천성이 굼뜬 아들을 둔 덕분에 차들이 웬만큼 빠진 뒤에 나오는 아이와 만나는 일은 다행히도 수월하다.


아이를 태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또 다른 체험, 삶의 현장이다. 동호대교를 지나 약수역에서 좌회전하면 들어서는 다산로는 서울 구도심의 열악함을 그 어느 곳보다 선명하게 드러낸다. 특히 5호선 청구역을 지나 창신동까지 이어지는 서너 블록은 그야말로 연중무휴 공사장이다. 아이를 강남의 학원에 태우고 다닌 9개월 동안 이 도로에서 야간 공사가 진행되지 않은 날은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다. 이 정도면 도시의 기능이 마비되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도대체 이 도로 아래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혹시 지하세계를 관장하는 악의 무리(?)가 상하수도 배관이나 여타 시설들을 날마다 갉아먹는 것이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다. 얼마 전부터 조금 돌아오더라도 공사장의 소음과 혼란을 피해 우회도로를 이용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 성수대교를 건너 왕십리 뉴타운으로 진입하는 교차로에 대대적인 장기 공사가 시작되었다.


강남에는 불야성의 유흥업소가, 강북에는 불야성의 건설현장이 지배하는 서울… 나는 이곳에서 두 아이를 키우며 쉰 번째 해를 보내고 있다.




오늘의 감상,

아이도 공사장의 소음과 뒤엉킨 차들의 경적으로 가득 찬 다산로를 싫어한다. 한밤중에 인적조차 드문 왕십리 뉴타운의 고즈넉함을 좋아한다. 그런데 오늘은 새로 시작한 공사장을 피해 왕십리 구도심을 지나왔더니 대뜸 처음 가는 길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덕분에 여느 때보다 일찍 집에 왔지만 아이는 기분이 안좋다. 언제나 왕십리 뉴타운을 지날 때 말문이 트였던 아들은 오늘따라 돌아오는 길 내내 침묵을 지켰다. 아이가 말이 많으면 피곤하고 말수가 적으면 걱정되는 게 부모 마음이라, 오늘은 꼭 뉴타운 길로 지나가리라 마음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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