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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산우공 Feb 11. 2022

재주는 곰이 넘고

신묘한 타이밍?(2014.10.22)

돈은 중국 놈이 챙긴다. 소설 "토지"에서 나온 말이라는 데 왜 하필이면 중국 놈을 빗대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성과와 보상이 미스매칭 되었을 때 쓰는 말이다. 어머니께서 어렸을 적 "섵(혀) 빠지게 해 놓으면 게 눈 감추듯 먹어버린다"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 혀가 빠지게 음식을 만들어 놓으면 금세 빈 그릇이 돌아오는 혈기 왕성한 4남매를 키운 탓이다. 그렇게 고생하는 것과 대가를 받는 일은 언제나 공정하거나 정당하지만은 않다. 그래서 눈치 빠르고 이문에 밝은 이들이 득세하는 세상이다.

 

생뚱맞지만, 왜 재주넘는 곰은 돈을 챙길 수 없을까? 이 의문에서 오늘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곰은 재주만 있기 때문이다. 신나게 재주 부리는 일에 도취되어 중국 놈(왕서방?)이 제멋대로 돈을 챙기고 있는 줄도 모르며, 재주 잘 넘는다고 손뼉 치는 구경꾼과 두둑하게 배를 채워주는 왕서방의 추임새에 놀아난 것이다. 결국 재주만 믿고 까불다가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격이다. 그래서 곰이다. 우리가 곰과 여우를 사람에 비유할 때 왜 뻔한 캐릭터로 등장시키는지를 생각해 보라. 곰은 재주넘는 재주는 있을지언정 여우같이 전후 행간을 읽고 요령을 피울 영리함은 없다.

 

그래서 재주다. 재주는 재능도 아니고 능력은 더더군다나 아니다. 그저 재주다. 어릴 적 듣던 "허! 그놈 재주가 메주(?)네" 하는 말은 그놈만 한 재주는 없지만 그놈의 재주를 평가할 주제는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하는 말이다. 즉, 자기가 한 수 위라는 거만함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재주 있는 놈은 재주를 알아보는 놈을 못 당한다. 이렇게 재주는 자고이래로 저평가되었다. 자신의 비범한 재주를 깨닫고 그것을 이용하는 경지에 올라야 비로소 재주는 범접할 수 없는 능력이 된다. 누구도 그에게 "허! 그놈 재주가 좋아"하는 건방진 언사를 하지 못한다.

 

재주만 믿다가 크게 낭패를 본다는 옛말은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니다. 재주는 돈을 벌어주진 못한다. 재주는 배를 채워주고 돈은 왕서방에게 벌어준다. 무릇 재주 있는 자들이여! 당신의 재주를 능력으로 승화시킬 지어다. 창조경제 시대에 재주만 넘다가 기력이 쇠하면 어찌할 것인가?

 

참으로 불안하고 걱정되는 것은 얕은 재주만 믿고 당장의 배부름에 안주하다가 그 재주마저 쇠하는 날, 냉정하게 돌아서는 왕서방의 뒤통수만 하염없이 바라볼 순간이다. 그날이 오지 않기를 무작정 바라는 마음은 재주만 신나게 넘다가 소용이 다하면 결국 쓸개즙마저 내놓아야 하는 비련의 반달곰의 선량한 눈빛과 닮았다. 난 열심히 재주를 넘었다. 그리고 많은 칭찬을 받았다. 근데 왜 내가 쓸개즙을 빨리고 있는지 도무지 영문을 모르는 반달곰의 슬프고도 멍한 눈... 그 눈 속에 내 모습이 투영된다.

 

눈뜨고도 코 베어가는 세상에... 그 눈빛은 어울리지 않다.

 

* 단언컨대 중국인을 비하하는 발언은 아니다. 그저 속담의 표현을 충실하게 인용하였을 뿐이다. 오해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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