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사의 위로

휴직일기, -31일(2022. 1.28)

by 낙산우공

설 명절을 앞두고 지저분해진 머리카락을 다듬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 아들과 함께 미용실을 다닌지도 10년이 넘어가는데 언제나 만족도가 높지 않았다. 여성들이 주로 이용하는 미용실에서 남성 헤어컷은 계륵 같은 존재다. 1만 원대 후반에 형성되는 남성 커트 비용은 미용실 입장에서는 수지맞는 장사가 아닐 것이다.


그런 이유에선지 한번 단골이 되는 집들은 해가 갈수록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첫 번째 단골집은 대형 프랜차이즈 미용실이었는데 담당 미용사가 4년 정도 후에 그만두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새로운 곳을 찾아야 했다. 물론 만족도가 떨어져 고민하던 시기였기도 했다. 두 번째는 아내가 추천해 준 동네 미용실이었는데 젊은 원장이 의욕적으로 서비스를 해주던 개업 초기여서 그랬는지 적당히 만족스러워 단골이 되었다.


그렇게 5년 넘게 이용하다가 최근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이곳을 다닐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머리를 만져주는 사람이 자주 바뀌는 게 번거롭고 불편하여 참고 지냈지만 점점 불만의 수위가 높아갔다. 서비스가 갈수록 간소해지더니 급기야 아들과 나의 커트를 하는데 샴푸 시간까지 포함해서 채 30분이 되지 않았다. 커트는 거의 한 명당 5분이 걸리지 않았다. 클리퍼로 머리 아래쪽을 순식간에 밀고는 가위컷은 거의 시늉만 하다가 숱가위질 몇 번 해주고 끝이었다. 군대 시절 내무반에서 소위 깍새(비공식 이발병)를 했던 나는 일과가 끝나고 내무반에 돌아와 피곤한 몸으로 선임들이나 동기 머리를 깎아줄 때도 이렇게 성의 없지는 않았다.


꼼꼼하게 가위컷을 해주는 이발소를 다니고 싶었지만 과거 동네 이발소는 주로 안마와 면도를 해주는 옛날 이발소뿐이었고 괜찮은 곳이라고 하면 대부분 호텔 이발소였다. 대중목욕탕의 이발소를 이용해 보기도 했으나 늘 후회가 남았다. 최근에는 젊은 친구들을 타깃으로 하는 소위 바버샵이 우후죽순 생겼으나 3만 원이 훌쩍 넘는 커트 비용(심한 곳은 5만 원까지)에 천편일률적인 트렌디한 디자인 컷이 부담스러워 선뜻 예약하기가 망설여졌다. 이런저런 이유로 한 달 넘게 이발을 미뤄오다가 오늘 우연히 괜찮은 곳을 찾아내어 드디어 방문하게 되었다.


인터넷 포털에서 집 주변 바버샵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이곳은 통상 바버샵이라는 간판으로 기존의 이발소와 차별화를 시도하는 다른 업소와 달리 ‘OO이발’이라는 심플한 상호 때문에 무심코 지나칠 뻔했다. 그런데 사진 속 가게 외관이 여느 이발소와는 사뭇 달랐고 방문 후기가 9개에 불과했으나 리뷰가 충실했다. 갓 개업한 곳으로 가장 눈에 띈 건 합리적인 가격이었다. 미용실의 남성 커트 가격과 비슷한 수준이었고 투 블록이나 스타일리시한 디자인 컷을 하는 경우에도 2만 5천 원에 불과하였다. 혹시 과도한 저가로 고객을 낚는 곳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들었으나 속는 셈 치고 전화로 예약을 했다.


뜻밖에도 전화 속 이발사는 여성분이었는데 목소리가 차분하고 진실함이 느껴져 호기심이 생겼다. 늦은 오후에 아들과 함께 예약시간보다 좀 일찍 방문했는데 의외로 두 분의 고객이 먼저 이발을 하고 있었다. 1인 바버샵이라 한 시간에 한 명만 예약이 된다고 했는데 예약 없이 온 손님이 있었던 것 같다. 한 명은 이발을 받고 있었고 한 명은 보조로 보이는 분께 샴푸를 받고 있었다. 좁은 이발소에 어정쩡하게 서서 꽤 기다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의외로 예약시간에 맞춰 이발을 받을 수 있었다. 아마도 예약 없이 온 손님에게 양해를 구한 뒤 샴푸를 빼고 이발만 서비스했던 것 같다. 예약자를 위한 배려가 느껴졌고 샴푸를 안 받으면 1만 2천 원에 이용할 수 있는 가격표도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아들과 함께 1시간 반에 걸쳐 이발과 샴푸를 받았는데 최근 10년간 겪어보지 못한 경험을 했다. 이발사는 미용사와 이용(이발)사 자격을 모두 보유한 젊지만은 않은 여성분이었다. 클리퍼를 과도하게 쓰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살짝 지저분해졌을 때 잠깐 들리시면 서비스로 정리를 해주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세심하게 가위컷을 해주며 중간중간 모발과 두상에 대해 의견을 주고 어울리는 스타일을 조심스럽게 추천해 주기도 하였다. 첫 방문이었지만 과하게 말을 걸지도 않았다.


특히 남성 헤어컷에 대한 철학이 뚜렷하였다. 미용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맞지만 이발이 과하게 디자인에 치중하는 것에는 굉장히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본인이 일본에서 오래 거주했는데 소규모 상점이 발달한 그곳은 이발소도 아담하게 운영하는 곳이 많고 업소마다 특유의 스타일이 있어서 그게 꽤 매력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바버샵은 스타일북에 나와있는 최신 유행 디자인만 고집하기 때문에 어느 곳이나 스타일이 똑같고 커트 비용에도 거품이 많이 들어갔다는 얘기였다. 한 달에 한 번씩 이용하는 이발비가 3~4만 원대라는 게 과하다는 거였다. 이발의 목적은 ‘용모단정’인데 지나치게 미적인 요소에 치중하는 세태를 못마땅해하는 눈치였다.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이발소를 찾아내어 흡족한 마음으로 가게를 나왔다. 두피 마사지를 추가했는데 고작 5천 원이었다. 평소 미용실 두피 마사지(4~5만 원씩 하는)를 좋아했던 아들을 배려해 권했으나 이발사는 단칼에 잘라버렸다. 모질이 이렇게 좋고 숱도 많은데 무슨 마사지를 받냐면서 나처럼 탈모 걱정이 시작되는 중년 남성들이나 하는 거라고… 머쓱해하는 아들을 보니 마음이 더 흐뭇하였다. 집에 돌아와 생전 처음으로 장문의 방문 후기를 남겼는데 한밤 중에 댓글이 올라왔다. 내가 왔을 때 손님이 많아서 마음이 쓰였다면서 중간에 꼭 한번 들러서 서비스를 받아달라는 당부를 덧붙이셨다.


좋은 사람을 우연히 만나는 일은 즐겁다. 오랜 고민 하나를 해결한 것처럼 마음이 가볍다. 그 흐뭇한 마음이 꽤 오래 지속되는 것 같아 복기를 해보니 말수가 많지 않았던 이발사께서 오늘 나에게 기분 좋은 립서비스를 해주었던 게 떠올랐다. 요약하면, 처음 예약전화를 받을 때 보이스 톤이나 어투에서 느낌이 너무 좋았는데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실제 풍기는 분위기가 목소리하고 매칭이 잘 되었다는 얘기였다. 그분도 나에게서 좋은 느낌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한 것인데, 흘려들을 수도 있는 상투적인 칭찬에 내 기분이 좋았던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그분의 말투나 분위기가 맘에 없는 말을 가볍게 꺼낼 것 같지 않아 말에 진정성이 느껴진 것이다.(물론 나의 일방적이고 주관적인 생각) 둘째, 그동안 자존감이 떨어질 때로 떨어져 있었는데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진정성이 느껴지는 칭찬을 들으니 나도 모르게 감동을 받은 것이다. 그 분의 말이 설령 영업적인 립서비스였다고 하더라도 나에겐 뜻밖의 위로가 되었다. 마음이 황폐하고 쓸쓸할 때 위로받을 수 있는 이발소 하나 갖게 된 것이 나는 기쁘다.




오늘의 감상,

가게를 나오며 영업시간을 확인해 보고는 그 이발소의 하루 매출을 대략 계산해 보았다. 결론은 염색이나 펌, 디자인 컷을 하는 고객이 얼마 안 되고 나처럼 기본 커트만 하는 사람이 주로 온다면 그 곳의 운영이 빠듯할 것 같은 불안감이 찾아왔다. 나의 계산이 틀렸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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