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일기, -22일(2022. 2. 6)
디지털 환경과 모바일 기기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스마트 앱(애플리케이션 소프트웨어) 만능 세상에서, 장애인이나 노령층과 같은 정보취약계층에 대한 정보격차(digital divide) 해소 문제는 꽤 오래전부터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어 왔다. 특히나 AI의 등장 이후 우리는 크고 작은 일에서 모바일 앱과 인공지능 상담사를 감당해야 하는 또 다른 허들에 직면해 있다. 과연 정보취약계층의 범위는 어디까지이며 정보격차의 문제가 정보 접근 능력(스마트 기기 및 앱 활용 능력)의 차이만으로 볼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하였다.
MZ세대들이야 어려서부터 모든 것이 디지털에 최적화되었다고 하지만 사실 스마트폰이 대세가 된 것은 불과 십여 년 전 일이다. 따라서 IT 환경에 친숙한 나조차 전천후 모바일 앱의 등장에는 불편함을 넘어 불쾌감을 자주 느끼게 된다. 인터넷 환경에서 작동하는 모든 애플리케이션 SW는 본질적으로 에러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다. 그 오류에 노출된 사람은 스스로 그 오류를 제어할 수 없는데 빈번하게 발생하는 이런 상황에 가히 무방비 상태로 맞닥뜨리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사실이 나의 심기를 몹시 불편하게 하고 있다.
최근 내가 겪은 두 가지 사건만 보더라도 우리가 얼마나 애플리케이션(앱) SW에 무지하며 AI의 취약성에 둔감한가를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그리고 결점 투성이인 엉터리 앱을 제공하는 자들이(심지어 공공부문의) 얼마나 무식하고 뻔뻔한지를 말이다.
첫 번째 사건은 한두 달 전 주말의 외식에서 비롯되었다. 성북동에 자리한 왕돈가스 전문점을 아주 오래전부터 단골로 다니고 있는데, 코로나19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재작년 말에 이곳은 유유히 문을 닫고 몇 달 동안 리모델링을 하더니 식당 앞 주차장을 자동화된 유료주차장(온라인 키오스크 방식)으로 위탁을 주어 버렸다. 그 바람에 주차료를 따로 내야 하는 건 둘째치고 주차안내직원이 사라져 버려 식당 앞 주차면이 부족하면 돌아서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 아마도 수십 년째 문전성시를 이루는 맛집의 배짱이라고 밖에는 설명이 안되지만 아이들이 좋아하니 별 수 없이 다시 찾게 된다.
그날도 그렇게 찾아갔으나 주차면이 부족했고 별 수 없이 길 건너편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차를 7~8대 남짓밖에 세울 수 없는 그곳은 주차관리원을 없애고 모바일 앱을 통해 자율적으로 주차 신고를 하고 자동으로 결제하도록 개편되어 있었다. 문제는 구청에서 제공하는 주차관리 앱에 있었다. 주차장 옆 표지판에 간단히 모바일 앱 설치방법과 이용방법을 안내해 주고 있었으나 이런 방식에 익숙한 몇몇을 제외하면 과연 누가 그 간단한 절차에 따라 앱을 이용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 만큼 단출한 내용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앱을 설치하고 신원확인 및 차량등록 절차를 거친 후 자동결제용 신용카드를 등록하는 과정에서 무수히 에러가 발생하였다. 아내와 아이들을 먼저 식당에 들여보내고 혼자 모바일 앱 설치에 애를 먹다가 순간적으로 분통이 터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공영주차장을 이용하기 위해 구청마다 따로 개발한 주차관리 앱을 설치해야 한다는 것도 어이없었지만 그 앱의 성능이 너무나 형편없음에 결국 폭발하고 만 것이다. 모바일 앱에 익숙지 않은 분들은 고사하고 앱 성능 자체가 신뢰 수준을 훨씬 밑돌고 있었다.
무인 주차장이라 문의할 곳도 없었고 이용안내 전화번호로 연락해 보려 해도 ARS로 연결되어 또 몇 단계를 거쳐야만 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일단 식당에 들어가 다시 연결을 시도했다. 그런데 문제는 앱에서 내 차량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 와중에 사달이 났다. 토요일 점심시간에 시범서비스 점검차 구청 직원이 순찰을 돌고 있었고 내 차가 등록되지 않은 것을 알고 나에게 전화를 건 것이다. 당장 모바일 앱에 차량을 등록하지 않으면 견인 조치될 거라는 협박 아닌 협박을 듣게 된 나는 너무나 황당해서 모바일 앱이 계속 오류가 난다고 해명했지만 담당자는 유들유들한 목소리로 무슨 헛소리냐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결국 여러 번의 시도 끝에 다시 앱에 접속해서 등록을 마쳤지만 이미 주차시간은 20분 이상 초과된 상태였다. 나는 정직하게 처음 주차한 시간으로 등록을 하고 싶었지만 시스템에서는 현재시간 이전으로는 등록이 안되었다. 결국 현재시간을 기준으로 예상 출차시간을 사전에 등록해야 했고 예상시간으로 자동결제가 된 후에 출차 시점에 따라 결제금액을 차감하는 방식이었다. 그것도 30분 단위로 밖에 등록할 수가 없어서 나는 이미 경과된 시간을 합산하기 위해 예상 출차시간보다 30분을 더 등록하였다.
이런 터무니없는 일을 겪으며 어떻게 이런 상황이 펼쳐졌는지 복기해 보았다. 첫 번째는 모바일 앱 만능사회의 트렌드에 정부가 덩달아 춤을 춘 탓이다. 이미 소규모 민영 주차장들은 온라인 키오스크나 모바일 앱을 활용한 자동결제시스템을 도입해 왔다. 더 나아가 카카오 같은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들은 이들을 통합하는 주차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이런 통합시스템이 아니라 구청마다 자기네 앱을 개발하는 촌극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정부가 개발한 앱의 후진성이다. 정부는 중소규모의 SW 개발업체를 지원하기 위해 정부가 발주하는 일체의 정보화 사업에 대기업의 참여를 제한하고 있다. 그 덕분에 중소사업자의 매출 증대에는 기여하였으나 이들 애플리케이션의 성능검증에는 소홀했던 것이다. 모든 SW는 건축물의 감리와 같이 개발된 제품의 성능 테스트를 의무화하고 있으나 이 제도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시민들에게 편의를 제공한다는 명분으로 다양한 정보화사업을 추진해 왔으나 이를 주관하는 담당 공무원의 비전문성 또는 직무유기에 의해 누구를 위한 서비스인지 알 수 없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다. 나는 정보화, 자동화가 주는 편의성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목적에 부응하지 못하는 탁상행정을 비판하는 것이다. 공무원을 Civil servant라고 하는데 과연 스스로를 그렇게 인식하는 공무원이 몇이나 될까 궁금해졌다.(이것은 나 자신에 대한 비난이기도 하다)
그런데 오늘 두 번째 사건을 겪으며 나는 우리가 여과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디지털 사회가 얼마나 취약한 기반 위에서 널을 뛰고 있는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미술을 전공하는 둘째가 예고 입학 전에 일요일마다 미술관의 전시회를 둘러보고 있다. 지난주부터 아이를 미술관에 데려다주고 있는데 이곳 주차장 역시 사전정산을 의무화하고 있다. 문제는 주차구역과 사전정산기 위치가 멀어 매번 번거롭다는 것이었다. 출구에서 카드결제가 가능하지만 출구의 혼잡을 예방하기 위해 사전정산을 권하는 것이라 불편함을 감수하고 미리 정산을 해 왔다.
그런데 매번 이 주차장에 들어설 때마다 카카오 T의 자동결제 서비스 안내 문자가 뜬다. 오늘따라 날이 너무 추워 사전정산을 하러 가기 귀찮았고 이 주차 결제시스템에 등록된 주차장이 꽤 많았던 것이 떠올라 자동결제 신청을 했다. 구청의 형편없는 주차관리 앱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믿음도 한몫을 하였다. 문제는 출차 시점에 발생하였다. 이 앱은 별도로 출차시간을 등록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입출차 시간을 인식하기 때문에 아무 거리낌 없이 출구로 나갔으나 차단기는 열리지 않았고 자동결제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살짝 당황한 나는 번호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을까 하여 차를 카메라 쪽에 더 가깝게 이동하였으나 계속해서 결제하라는 자동안내가 떴고 내 얼굴도 자동으로 인식을 하였는지 마스크를 착용하라는 소리까지 나왔다.
순간적으로 당황하여 허겁지겁 마스크를 쓰고 창문을 내려 신용카드로 결제를 하는 순간 그때서야 휴대폰에는 카카오 T 자동결제 메시지가 떴다. 중복 결제가 된 것이다. 같은 차량번호로 동일한 주차장에서 동일한 시간에 중복 결제가 이루어졌으니 나는 당연히 시스템에서 오류를 인식하고 결제를 취소할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올 때까지 30분이 넘는 시간 동안 결제 취소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제내역을 확인하고 취소를 시도하려 했으나 결제 취소는 고객센터로 문의하라는 안내가 있을 뿐 고객센터 연락처는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비슷한 사례가 있을 것 같아 인터넷 포털을 검색해 보니 전화로 결제 취소하기는 하늘에 별따기보다 어려우니 앱에서 카카오 T 에이전트(상담사) 연결 항목으로 들어가(이 과정도 몇 단계를 거친다) 채팅을 시도하라는 것이었다. 채팅의 첫 단계는 주요 문의사항에 대해 다섯 글자 이상으로 요약한 메시지를 보내야 하고 그 내용을 상담해 주는 상대는 인간이 아니라 AI 챗봇이었다. 이 장황한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했던 이유는 하나다. 예전에는 한양에 가서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눈뜨고 코베이는 일을 당한다고 하였는데 이제 우리는 전국 어디에서건 이런 일을 당할 수 있고 그것도 사람이 아닌 AI와 모바일 앱이 당신의 상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들은 아무 잘못이 없다. 그 시스템을 만든 인간이 문제다. 언제나 문제는 인간에서 시작하고 인간으로 끝난다.
오늘의 감상,
기계가 인간을 대체한다는 것은 찰리 채플린의 1936년 영화 ‘모던 타임스’에서 이미 예고되었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기계가 아니다. 그 기계를 작동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애플리케이션 SW를 포함하는)이 인간을 가지고 논다. 물론 컴퓨터 프로그램이 우리를 조롱하려고 그런 것이 아니다. 기계의 오작동은 말 그대로 기계적으로(반복적인 작업 과정에서 물리적인 또는 화학적인 원인에 의해) 발생한다. 그런데 SW의 오류는 예측할 수 없고 원인을 알 수 없다. 모든 컴퓨터 프로그램은 특정한 기능을 수행할 목적으로 개발되지만 그 구현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은 기능이 발생되기도 한다. 문제는 충분한 시현 과정을 통해 오류를 최대한 줄이는 작업(이를 debugging이라고 한다)이 필수적인데 우리는 점점 더 이에 둔감해지고 있다. 일단 제 기능만 하면 돌리고 보자는 식으로 말이다. 그 결과가 우리에게 어떤 재앙을 가져올지 그저 섬뜩할 뿐이다.(특히, SW는 내부적인 문제 뿐만 아니라 통신환경이나 기타 외부요인에 의해 예기치 못한 오류가 생기기도 한다)
* 며칠 전 기사에서 성북구청이 카카오 모빌리티와 공영주차장 자동정산 업무협약을 맺었다고 한다. 아마도 나와 같은 불만이 폭주했으리라 짐작된다. 그럼 기존 시스템 구축 비용은 고사하고 새 시스템 구축에는 또 얼마나 추가 비용이 소요될지 궁금해졌다.